해부학 전시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해부학 전시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7.20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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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 19일부터 시작한 기획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이하 <나는 몸이로소이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을 소개하는 기획특별전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6년 간행 초간본인 제중원 <해부학> 1~3권 전질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한다는 것이 전시 소개의 핵심이다.

하지만 <해부학> 전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박물관은 <해부학>과 함께 18개 기관의 소장유물 127건 213점을 공개한다고 했다. '몸에 대한 전통의 생각과 서양 의학의 만남'.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이 소개한 전시의 주제다.

▲ 조선시대 검시 지침서

<나는 몸이로소이다>는 소개글만 보면 '해부학'을 소재로 한 전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혹여 전문적이고 어려운 전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한글박물관에서 웬 해부학?'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몸이로소이다>가 보여주는 것은 '몸'과 '정신'을 하나로 본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서양 의학과의 충돌 속에서 서양에서 들어온 말들을 우리의 언어로 살리려했던 노력, 그리고 몸에 대한 우리 글의 다양한 표현들이다.

개화기 서양 의학이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외과 치료였다. 사람의 몸을 열어 아픈 부위를 고치고 다시 꿰매는 서양의 의술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맞지 않았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여기고 있기에 죽은 시신조차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살인사건이 났을 때도 부검이나 해부를 하지 않고 시신을 그대로 보전한 상태에서 '검안'을 했다. 전시는 이 차이를 먼저 보여주면서 '몸'에 대한 동서양의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시대별로 달라졌다. 한글 창제부터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우리말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이 전시에 있다. 특히 개화기 두 가치의 충돌은 우리말 몸의 이름과 뜻풀이를 바꾸게 했다. 다양한 말의 변화 과정이 흥미를 갖게 하고 특히 '뱁새눈, 실눈, 매부리코' 등 다양한 신체 표현을 실제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다.

몸을 마음과 똑같이 여기는 우리의 생각은 다양한 말로 표현되어 왔다. '머리가 비었다', '간이 콩알만해졌다', '배알(장)이 꼬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등등. 해부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심지어 사진기가 처음 도입됐을 때 '영혼을 뺏는 기계'라며 겁을 먹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 실제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다양한 '눈'의 표현

그리고 이제 국립한글박물관이 자랑하는 제중원 <해부학>을 만난다. 1885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은 조선인 의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필요했다. 제중원 의학교 교수 에비슨은 한국인 조수와 함께 그레이의 <아나토미>를 한글로 번역하지만 조수의 죽음과 함께 완성된 원고도 사라진다.

이후 의학생 김필순을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06년 이마다 쓰카누의 <실용해부학>을 번역하면서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탄생한다.

제중원의 등장과 교과서의 등장으로 다양한 학문의 교과서가 한글로 등장했고 이는 우리 의료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이 교과서가 나오기까지에는 우리말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도 있었다. 서양에서 나온 생소한 말을 우리식의 말로 바꾸려 노력했고 정말 어려운 글은 한자를 차용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말로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전시는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마무리된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일본의 한자어를 사용했지만 서양의학의 낯선 개념을 우리말글로 쉽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어떤 것은 우리식 한자어로 바꾸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자를 함께 적으며 우리말로 서양의 지식을 받아들이고자 수차례 고민하고 노력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전하는 오늘날 110여년 전 그들처럼 한글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우리말을 풍성하게 만들려는 열정과 노력을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

가치관의 충돌이 도처에서 일어난 개화기, 하지만 그 충돌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우리의 모습이 이번 <나는 몸이로소이다>에 나타나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우리말의 특징. 그것을 몸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가 <나는 몸이로소이다>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