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미인’의 이희준 작가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미인’의 이희준 작가에게
  •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8.07.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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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암담했습니다. 암담합니다. 뮤지컬 ‘미인’을 보고 나왔을 때 그랬습니다. 이 글을 써야하는 지금의 제 상태가 그렇습니다. 그동안 많은 뮤지컬을 보고, 이렇게 ‘뮤지컬 레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렇더군요. 정말 좋은 뮤지컬을 못 썼고, 그 반대는 안 썼습니다.  전자는 ‘굳이 내가 또’, 후자는 ‘굳이 이딴 걸’. 부지불식간 내 마음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다섯 음절이 튀어나오더군요. 

이희준 작가님. 나는 당신을 실제 모릅니다. 뮤지컬관련 글을 쓰면서, 늘 ‘업계’와는 거리를 둡니다. 어떤 변수가 개입해서, 작품의 질적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경계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어렴풋이 기억은 합니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가 정말 좋아서 몇 번을 보러 갔는데, 주변서 누군가 그러더군요. “저 분이 작가에요” 나는 먼발치의 당신을 우러러봤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이 확 드네요. 당신이 집필한 ‘마마 돈 크라이’도 좋게 본 작품인데, ‘그 때 뭔가 쓸 걸’. 

거론하고 싶지 않음에도 거론하는 건, 이 작품이 한 시대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 관한 실제적인 작품평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뮤지컬 ‘미인’은 신중현이라는 한국대중음악의 거장이 만든 명곡을 바탕으로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그 노래가 갖고 있는 ‘당대적’ 가치와 ‘현재적’ 의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앞의 두 작품을 쓴 작가와 같은 분이 쓴 대본인가 하는 의아함 마저 갖게 됩니다. 뮤지컬 ‘미인’은 1970년대를 전후로 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신중현의 노래를 통해서, 1930년대란 시대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스토리가 너무도 도식적이고 상투적”이기에 도저히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 겸연쩍고 무의미하게 생각됩니다. 

그동안 대중음악 작곡가로는 이영훈과 오태호, 가수인 배호, 김광석, 서태지의 노래를 바탕으로 ‘주크박스 뮤지컬’ 형태의 작품이 꽤 나왔었죠? 작품의 완성도와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뮤지컬의 스토리와 음악을 통해서 ‘시대’와 ‘사람’을 입체적으로 존재케 하려는 의지와 성과는 있었습니다. 대중음악의 거장 신중현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이런 맥락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부각하려 했나요? 

뮤지컬 ‘미인’의 카피인 ‘모두가 사랑한 그 남자’가 참으로 무색해지더군요. “한 시대의 유의미한 노래를 이렇게 ‘초보적’ 단계로 배치하고 엮어낸 뮤지컬은 다시는 나와선 안 된다!” 이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목적입니다. ‘초보적’이란 말이 섭섭한가요? 분개하게 되시나요? 내겐 정말 그렇습니다. 

유비(類比, analogy)라고 하지요? ‘비례적 관계의 닮음’을 뜻합니다. 영화 ‘서편제’(1993)나 뮤지컬 ‘그날들’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건, 바로 거기에 ‘유비’의 개념을 대입시킬 수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서편제’에 나오는 ‘심청가’의 대목은 단지 심청의 얘기가 아닙니다. ‘서편제’의 두 주인공인 송화와 동호와 연관해서 기존의 얘기와 병치되고, 가치와 감동을 증폭시켜줍니다.

뮤지컬 ‘그날들’도 마찬가지죠. 김광석을 들으러갔던 관객들은 그의 노래를 엮은 뮤지컬을 보러갔다가 ‘또 다른 김광석’이라고 불러도 좋은 무영과 정학을 대면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와 그 사람들을 통해 ‘그 시대’ 혹은 ‘힌 시대’가 갖고 있는 당대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뮤지컬 ‘미인’도 그러했나요? 만약 그랬거나, 또 다른 작품적 가치가 있다면, 꼭 내게 말해주십시오. 지금 나의 이 글을 아주 무색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신중현이란 한국대중음악의 거장에게 오히려 죄송한 심정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그의 노래를 그저 가사의 몇 줄과 ‘억지로’ 맞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뮤지컬을 통해서 원곡이 갖고 있는 가치와 매력을 ‘재음미’하기 힘듭니다. ‘서편제’와 ‘그날들’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사와 곡조가 스토리 속에서 ‘확장’되었고, 이들 통해서 (뮤지컬을 떠나서) 원곡이 갖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뮤지컬 속에서 ‘리듬 속에 그 춤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뮤지컬작품이 한 시대를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뮤지컬 ‘미인’은 이 노래를 포함해서 한 시대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거나, 깊지 못합니다. 

뮤지컬 ‘미인’은 한마디로 참 허술합니다. 좋은 노래를 가지고, 한 시대에 깊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연관해서도 그렇고,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가요의 ‘명곡’의 쓰임새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노래를 통한 스토리의 연결도 미흡하기에, 그 노래의 ‘가치의  재생산’은 아예 기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병연’이 참으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에는 민족주의, 아나키즘, 페미니즘 혹은 로맨티시즘과 연관해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존재하는데, 이 작품 속의 ‘병연’은 내게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새롭지도 않고, 깊지도 않습니다. 
 
뮤지컬 ‘미인’은 무성영화관이라는 공간과 변사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조선의 노래와 연관하려 하지만, 오늘의 관객이 1930년대와 1970년대를 넘나들기에는 ‘텍스트(대본)의  한계“가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배우의 힘! 이 작품을 보면서 뮤지컬 ‘미인’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의 역량에 감탄합니다. 작품이 갖는 총체적 한계를, 그들을 통해서 그나마 상쇄하게 되니 다행입니다. 주연배우를 비롯해서 앙상블까지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살리겠다는 의지와 실제적 역량이 돋보이더군요. 

사실 대한민국 뮤지컬배우의 팬들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미인’을 작품으로 크게 보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서 매우 우호적 태도를 취하게 되죠.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혼신을 담은 열연으로 인해서, 이 작품에 갖는 ‘작품성’을 얘기하지 않거나 얘기하지 못하는 되는 겁니다. 이 작품의 기획과 극본과 연출에 연관된 분들은, 이런 사실을 매우 절감해야하지 않을가요? 

‘배우’에 의존하는 대한민국 뮤지컬의 한계가 아쉽기도 하지만, 뮤지컬 ‘미인’은 작품의 흥행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배우와 관객’의 끈끈한 유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미인’에 관객이 찾아오는 건, 신중현의 노래를 들으며 지냈던 그 시대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여러 한계가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작품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에 충만해 보이는 배우들의 열정과 실력 덕분입니다. 

이희준 작가님, 뮤지컬 ‘미인’의 엔당이 참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작품은 작곡가 신중현과 관련한 전해지는 에피소드와 연관이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는 신중현에게 ‘건전가요’를 작곡하기를 원했지만, 신중현은 군부독재 시대에 이런 요구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강산’이란 명곡을 만들었다고 하죠.

뮤지컬 ‘미인’에선 이런 에피소드를 그대로 일제강점기로 옮겨서 엔딩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예술작품에서의 ‘유비’를 생각합니다. 여기에 과연 ‘유비’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술작품에 있어서 유비의 매력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이 작품에서의 이런 설정은 그저 ‘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신중현이란 인물의 삶의 자세와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의 가치,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시대와 상황과 연관해서도 크게 뭉클함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신중현의 노래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한 마디 하고 싶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로서 이 말이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정서’ 혹은 ‘복고적 취향’울 더욱 원하는 것으로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신중현의 노래’를 사랑하기에 그 노래가 2018년에도 의미가 있길 더욱 바랍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히려 그 시대를 그린 것이 아니라, 1930년대로 설정했다는 자체에 무척 찬동하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시대적 이해’와 ‘작품적 깊이’입니다. 뮤지컬 ‘미인’은 1930년대, 1970년대, 2010년대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그렇고, 그런 시대를 연결해서 볼 때는 더욱더 가치와 감동을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이 드러나지만, 그 기본적 문제점은 역시 대본(텍스트)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더욱 선명히 밝힙니다.

또 다른 뮤지컬레터를 기다립니다. 대본가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대본가를 옹호하는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그게 지금 이순간의 이런 암담함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주고, 대중음악계의 거장 신중현 선생에 대한 존경과 연관된다면, 내가 오히려 더욱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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