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게, 솔직하게, 꾸미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정직하게, 솔직하게, 꾸미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7.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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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박이소:기록과 기억>

스팅은 'English Man In New York'이란 곡에서 '뉴욕에 있는 영국인'인 자신을 '에일리언', 즉 외계인이라고 표현한다. 그 뉴욕에서 외계인, 소수자를 자처했던 한국인이 있었다.

'박모(某)'라는 이름으로 실험적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를 만들고,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추수감사절 다음날 단식 퍼포먼스와 함께 밥솥을 끌고 다리를 건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예술가. 그림이건 설치미술이건 퍼포먼스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던 예술가.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나간 예술가. 박이소가 돌아왔다.

▲ 브루클린 다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박이소
▲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이소:기록과 기억>은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뉴욕의 미술현장을 이끄는 미술담론과 전시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여러 전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두 미술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박이소(1957~2004)를 집중 조명한 전시로 2014년 작가의 유족이 대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전시됐다.

이 전시는 엄밀히 말하면 박이소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것을 보는 전시가 아니라 박이소가 '어떤 예술가'였는지를 알려주고살펴보는 연대기다.

전시를 주관한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이 전시의 중심은 박이소의 작가노트"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전시는 박이소가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내놓기까지 고민하고 탐구하던 그의 흔적을 봐야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전시된 작가노트는 21권. 1984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졸업부터 2004년 작고 직전까지 작업과정이 모두 담겨있다. <'무제'를 위한 드로잉>, <'바캉스'를 위한 드로잉> 등은 입체, 설치로 장르를 넓히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드로잉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 '전시의 중심'인 작가노트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생각나는대로' 표현을 한 작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박이소의 위치는 어딘가 어중간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한국미술사에게 그의 이름이 한동안 희미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는 돌아왔다. '전통, 장르 그런 거 생각 안 한 작품도 한국에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말이다.

그는 종이에 아크릴 물감으로 '자본=창의력'이라고 적고 '내가 번역했음'을 강조한다. '창의력은 곧 자본'는 요셉 보이스의 말을 뒤집은 <자본=창의력>이다. 패러디도 모자라 그는 '내가 번역했어'라고 자화자찬을 한다. 거침없다.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 <자본=창의성>
▲ 박이소의 문인화

<쓰리 스타 쇼>는 어떤가. 흐릿하게 별 세 개가 그려져있다. 종이에 커피와 '코카콜라', 간장으로 별을 그린 것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검다'는 것. 하지만 그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는 이 세 소재로 '삼위일체'까지 이뤄낸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그는 거침없다. 선 하나만 그리고 '풀'이라고 적으면서 '이게 문인화야'라고 뉴욕 사람들에게 소개했다는 그다. 전통이나 '메이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소수자로 여겼고 그렇기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한 것이 박이소의 작품 세계였다.

그의 본명은 박철호다. 하지만 브루클린에서 작품 활동을 했을 때의 이름은 '박모'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을 때 '박모씨'라고 언급하는, 바로 그 이름을 그는 예명으로 썼다. 그가 1995년 귀국한 후 붙였다는 지금의 이름 '이소(異素)'는 '낯설고 소박하다'는 뜻이 있다. 삼성디자인교육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작업했던 그는 미술교육의 대안을 찾는데도 집중을 했다.

이런 그에게 쉼을 준 것이 바로 재즈다. 그는 생전에 약 200여개의 재즈 테이프를 직접 편집하고 만들었으며 '남은 생애 동안 이것만 들을 생각'이라고 했다고 한다. 재즈 선율을 들으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마 재즈 매니아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그가 직접 부른 노래 '정직성'이다. 빌리 조엘의 'Honety'를 번안한 곡인데 노래방 반주에 번안한 가사를 붙여 녹음을 했다. 이 노래도 물론 전시장에서 들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녹음을 했던 테이프를 이용한 <정직성>이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 박이소가 번안한 '정직성'
▲ 박이소가 편집한 재즈 음반

미술관 측은 "'어떻게 무엇을' 그릴까에서 '왜' 그리는가의 질문으로 초점을 바꿨다"고 박이소를 평하고 있다. 어쩌면 '왜 그리는가'라는 자문에 그는 '정직성'이라는 자답을 하는 듯하다. 자신의 생각을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그는 생각하는 듯하다. 

<박이소:기록과 기억>은 작품을 싹 훓고 지나가는 그런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자료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봐야하는 전시다.

물론 그렇게 되면 많은 시간을 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이소의 행적을 따라가다보면 그의 솔직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오랜 시간 전시를 보는 수고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솔직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이 전시의 한 줄 평이다.

전시는 12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