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센터, 무용계 문제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일까?
국립무용센터, 무용계 문제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일까?
  • 이은영 기자/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8.0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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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건립’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돼, ‘동상이몽’도 우려된다

"우리는 우리 무용예술의 모든 측면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큰 틀거리로 국립무용센터의 건립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돌입했다. 문화선진국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는 국공립무용센터는 실상 오래 전에 만들어졌어야 할 무용발전의 터전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문화력, 그리고 국제적 지위 등 모든 것을 감안할 때 국공립 무용 전용공간/기관이 전무다하는 사실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음악이나 연극 등 다른 무대예술에 비해 무용의 지위는 너무나 초라하다".

지난 25일 서울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100여명의 무용인이 모인 가운데 박인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무용계 현실에 대한 격정을 토로했다.

▲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박인자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왼쪽)

'국립무용센터 건립 추진단'이 주최한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추진단은 국립무용센터의 건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실 국립무용센터는 무용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왜 이제서야'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정부가 무용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점이 이제야 국립무용센터 건립 논의가 나왔다는 점에서 드러난 것이다.

축사를 하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단군 이래 무용인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이날 공청회에는 다양한 장르의 무용계 인사들이 총출동해 무용계의 큰 관심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을 보면 국립무용센터 건립이 전 무용인의 염원이며 이를 통해 무용계가 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국립무용센터가 있어야 무용계 과제가 해결된다"

이날 참석자들은 국립무용센터 건립의 필요성과 함께 국립무용센터가 건립되어야 무용계가 발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광열 비평가는 '유럽 22개국 댄스하우스 연합회(EDN)'의 사례를 들었다. EDN이 설립된 후 '차이나 무브스', '코리아 무브스' 등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인들이 중국, 한국 등에서 공연하며 새로운 관객을 개발했고 초대형 프로젝트 '모듈 댄스'를 통해 다문화 협력과 예술 작품의 질 개선 등이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장광열 비평가는 "코리아국립댄스하우스(국립무용센터)는 무용예술의 커뮤니케이션 창구, 양질의 무용작품을 위한 배양 및 유통을 위한 창구, 무용예술 국제교류의 창구, 지역 무용계 활성화의 창구, 무용예술 대중화의 창구가 될 것이다. 한국 무용계의 총제적인 힘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고, 한국 무용계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이 무용예술을 통한 전지구화의 중요한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립무용센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경숙 (사)한국무용협회 문화예술정책연구실장은 "창작활성화, 무용교육, 진로교육, 무용가 지원 등을 포함해 무용진흥을 위한 새로운 운영체계의 기관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유일한 방안이 국립무용센터 건립"이라면서 문화예술교육과 콘텐츠교육, 아동 청소년 등이 창의적 예술을 경험하고 창작하는 문화예술교육 전용 공간 '꿈꾸는 예술터'의 조성 및 운영, 예술대학과 문화시설이 연계해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연구 개발하는 '창의예술교육 랩' 도입 추진 등 대표과제들을 국립무용센터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숙 실장은 "프랑스의 무용진흥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립무용센터 CND라는 존재다. 96개의 일자리가 있고, 400개의 무용단이 연습실을 사용하며 2천여명이 춤교육을 받고 1만여명이 공연을 관람했다"면서 우리나라도 국립무용센터가 설치되면 춤을 위한 다목적 공간, 춤정책 입안을 위한 교두보 역할, 무용계 인력 고용 창출, 무용인들의 균등한 기회, 일반인의 접근성 증가 등으로 인식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의 전문무용수센터는 '무용인복지센터' 기능을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

이어진 토론에서 조흥동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은"연극계와 다른 단체들은 이슈가 생기면 하나가 되어 문제해결을 위해 단합하는데, 우리 무용계는 그것이 안된다"고 지적하고 "국립무용센터라는 명칭에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이 있다. 자칫 관료들의 순환 보직자리로 전락할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무용 전용 극장이 없다. 무용 공연에 최적화된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 전용 극장으로 만드는데 우선적으로 무용인들이 힘을 모아야한다"고 말했다.

장승헌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는 "장광열 평론가의 유럽의 EDN센터와 지금 만들려고 하는 국립무용센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절대절명의 기회이며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져야한다"며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 아울러 "충청, 경북, 호남, 제주 등 지역을 나누어서 국립무용센터가 하나의 빅텐트로 자리매김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조기숙 이화여대 공연문화연구센터 소장은 "세상은 춤에 열광하는데 무용은 죽어간다. 센터가 반드시 지켜야할 철학이 무엇인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한다. 교수가 아닌 예술가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덕 한국무용협동조합 춤에든 이사장은 "주무부처가 어디인지에 따라 예산이 적용되는 것이 다르다. 문체부가 소속기관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밝혔고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끝나는 현상을 벗어나 멀리 떨어진 문화 거리를 줄여 지역과 서울을 묶는 장치가 되어야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설진 무버 예술감독은 "무용과가 없어지고 있는 이유는 원서를 넣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할 것이 없어서 석사 박사를 따고 그러고도 할 것이 없어서 시간강사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무용계 생태계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을 전했다.

이어진 플로어 질의응답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면서 무용인들이 국립무용센터 건립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변우균 민족춤협회 학술위원은 "우선 무용센터의 기능이 공간적 개념인지, 거버넌스 기관인지 성격이 모호하다"라고 지적하고 국가예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 등 기본과정이 필요하기에 문체부 고위간부를 이 자리에 참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의 김윤규 운영위원은 "나도 추친단 실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센터 건립이 사실 온 무용인의 염원이었는지 궁금하다"라고 센터건립에 대한 전체 무용인들의 바람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 한자리에 모인 무용인들

공청회는 무용계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전하고 국립무용센터 설립을 적극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일단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우려가 도사리고 있었다.

무용계 문제 생겨도 "센터가 생겨야 해결된다"고 넘어간다면?

가장 큰 걱정은 국립무용센터가 과연 '만병통치약'인가라는 점이다. 물론 센터가 무용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내세우며 국립무용센터에 '올인'하려는 모습은 썩 좋게 보이지 않았다. 센터와는 별개로 무용계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하는 모습이 보여져야하는데 이날의 모습은 '센터만이 최선이요, 센터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만 확인한 셈이 됐다.

물론 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이기에 당연히 센터 건립이 중심이 되어야하지만 자칫 이를 통해 무용계의 문제를 '센터 건립' 하나에 집중시키고 문제가 생겨도 '그건 센터가 건립이 되어야 해결돼' 이런 식으로 넘어가버린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센터 건립이 결정되고 센터가 만들어지는 시간에도 무용계의 문제는 계속 생긴다. 이를 같이 해결할 지혜가 필요하다.

두 번째 걱정은 무용인들의 '동상이몽'이다. 건립에는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센터의 운영과 목표, 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이 목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담아내는가에 센터 건립의 성패가 달려있다. 만약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센터가 또 다른 '싸움의 장'으로 바뀔 우려가 분명히 있다.

이제 논의가 시작됐고 이제 막 의견 제시가 나왔다. 앞으로도 많은 공청회와 많은 의견 수립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런 걱정도 사그라들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과연 '국립무용센터' 건립만이 최후의 목표인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무용인들이 한 번 쯤 생각해야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