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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의 문화읽기]신무용가 조택원의 행적을 찾아서(1)
뮤즈와의 접신, 신무용 명작 ‘만종’의 탄생
2018년 08월 11일 (토) 00:21:25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ctoday@hanmail.net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기록적인 폭염에 휩싸인 한여름 서울을 떠나 지구 반대편 파리를 찾았다. 비행기 양 날개가 드골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는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덩달아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짜릿함을 맛본다. 무덥지만 상쾌한 공기, 푸른 창공에 떠있는 구름마저도 반갑게 맞이하는 듯 싶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박물관 탐방, 그리고 신무용가 조택원(趙澤元 1907~1976)의 활동 궤적을 따라가 보자는 취지에서 구상되었다. 조택원은 누구인가? 그는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층적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한국춤을 무대무용으로 승화시킨 춤의 선구자이다.

돌이켜 보건대, 69년의 생애를 산 조택원이 한국에 머문 세월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한·일 두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였고, 해방직후 1947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불행하게도 이후엔 영영 귀국길이 막혀버렸다.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것이 치명적 이유였다. 아마도 조택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원조가 아닐까 싶다.

지구촌을 떠돌며 유랑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타고난 보헤미안적 기질과 긍정적 사유방식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조택원은 국외자 신분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춤을 목숨처럼 지켰다. 한국무용가로는 최초로 미국 제이콥스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하였고, 미 전역을 순회공연하는 등 일찍이 춤 국제화의 활로를 개척했다.

유럽에서의 활동은 더욱 눈부시다. 기메아시아박물관을 비롯 유네스코와 카톨릭 전문잡지 『미시(Missi)』지 후원으로 약 2,000여회의 공연활동을 펼쳤다.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유럽인들이 조택원의 공연을 관람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쯤이면 가히 한류 열풍의 선두주자라 해도 손색이 없다.

조택원, ‘뮤즈’의 천국 파리로 향하다

조택원은 함흥 명망가 출신으로 휘문보고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법대를 졸업한 지적 엘리트였다. 상업은행 정구선수로 활동하던 중 1926년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접하고 그에게 매료되어 동경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서 서양 모던댄스를 체득한 그는 서양 본토에 가서 직접 서양춤을 배우겠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1927년 11월 6일, 20세의 조택원은 청운의 꿈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그의 파리행은 한국무용가로는 최초로 기록된다. 파리에서 조택원은 특별한 일이 없는 여유 시간엔 주로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소일하거나 음악회, 박물관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루브르박물관, 기메아시아박물관, 로댕박물관, 현대미술관 등은 그의 특별한 아지트였다.

   
▲세느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오르세미술관 전경

어원적으로 볼 때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은 뮤즈(muse)에서 기원되었다. 뮤즈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을 말한다. 공교롭게도 조택원은 자서전 『가사호접』(1973)에서 무용공연을 개최한 기메아시아박물관을 ‘뮤즈기메’로 표기해 놓고 있다. 뮤즈에 사로잡힌 조택원의 영혼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밀레의 「만종」과 접신하여 화려하게 만개한다.

자연스럽게 조택원의 ‘만종’을 잉태한 밀레의 그림 「만종」이 소장된 오르세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르세미술관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때 호텔과 기차역으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다. 기차역이 폐쇄되고 호텔영업마저 종료되자 오르세는 철거될 위기에 놓여진다. 다행히 1977년부터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건축물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술관 기능으로 최적화한 오르세미술관은 재생건축물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한 해 약 3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았다.

루브르와 오르세를 잇는 세느강의 카루젤교를 건너 조택원 ‘만종’의 시원이 된 밀레의 그림 『만종』을 찾아가는 여정은 기대감 때문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오르세에 도착하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뮤지엄카드 덕을 톡톡히 봤다. 뮤지엄카드 소지자는 별도의 창구로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파리에 있는 15개의 뮤지엄을 하나의 카드로 입장할 수 있다기에 드골공항 안내소에서 뮤지엄 카드를 구입했는데 이렇게 긴요할 줄이야.

검사대를 통과하고 마주한 오르세의 내부는 바닥부터 천정의 유리지붕까지 막힘이 없이 시원스럽게 뚫려 있다. 우선 드가의 발레그림과 조각상을 보기위해 5층으로 올라갔다. ‘무용수들의 화가’로 불리는 드가는 발레리나들을 즐겨 그렸다. 오르세에는 실제 발레 수업장면을 배경으로 한 작품 ‘발레수업’을 비롯 드가의 발레그림 3점이 나란히 걸려있다. 휴식을 취하는 무용수, 등을 긁고 있는 무용수 등 발레리나들의 다양한 포즈가 인상적이다. 움직이는 예술인 발레를 정지된 화폭에 담아낸 드가는 아마도 ‘순간과 영원의 공존’을 꿈꾼 것은 아닐지... 

   
▲오르세미술관 내부 모습

그런데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드가의 유일한 발레 조각상 ‘14세의 어린댄서’ 는 보이지 않았다. 안내원에게 문의하니 2층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1881년에 제작된 청동조각상 ‘14세의 어린댄서’는 드가가 시력을 잃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졌다. 조각에 최초로 옷을 입히고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경 미국 서부 패서디나에 있는 노턴사이먼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아트숍에서 우연히 드가의 ‘14세의 어린댄서’ 조각상을 소재로 한 상품, 아니 작품과 마주했었다. LA 롱비치에서 활동하는 젊은 화가의 작품인데 묘한 이끌림으로 주저 없이 구입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르세미술관과 밀레의 ‘만종’

오르세미술관의 컬렉션은 인상주의 명작을 비롯 사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관학파의 걸작들로 유명하다. 진정한 근대성의 시초이자 전위예술의 서곡으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반 고흐를 비롯 모네, 르누아르, 드가, 밀레 등 인상주의 걸작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밀레의 그림들은 1층 좌측 아트숍을 지나 마주하는 갤러리 초입에 걸려있었다. 발디딜 틈 없는 인파를 뚫고 밀레의 명화 「만종」 과 조우하는 행운을 누린다. 한 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기억하건대, 1960~70년대 전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이삭 줍는 여인들」, 「씨 뿌리는 사람」, 「만종」 등 주로 농촌의 목가적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밀레는 우리에게 낯익은 화가다. 그런데 한국무용사에 각인된 밀레와의 친연성은 훨씬 그 이전으로 소급된다. 1935년 조택원이 ‘만종’을 선보이면서 밀레의 「만종」이 간접 소개되었음은 퍽 흥미롭다.

알다시피 밀레는 프랑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세기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화가다. 밀레가 활동하던 19세기 초 프랑스는 정치적 혼란과 산업화, 급격한 도시화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은 정신적 안식처로 자연을 갈망하였다. 그는 일평생 빈곤한 농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렇다고 밀레가 전원의 목가적 풍경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씨 뿌리는 사람」은 평범한 농부가 화면의 중심에 등장해 혁명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내포해 사회주의자들이 칭송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오르세미술관에 걸려있는 밀레의 「만종」은 근대 프랑스 농촌과 농부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바르비종파 회화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오르세의 「만종」 그림 주변은 수많은 인파로 혼잡을 이룬다. 「만종」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루브르의 「모나리자」 못지 않다. 인파의 홍수 속에 밀레의 그림 주변에서 약 2시간을 머물렀다. 원화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고 화가의 예술혼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기 위함이리라.

다시 오감을 열고 오르세의 밀레 「만종」 곁으로 살며시 다가선다. 황혼에 붉게 물든 석양을 배경으로 두 젊은 농촌 부부가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저녁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마주하며 덩달아 경건해진다. 대지를 벗 삼아 흙 속에 묻혀 성실하고 경건한 믿음으로 내일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숭고한 삶의 여정이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오르세미술관 에 전시된 밀레 _만종_ 그림 앞에서

신무용 명작 ‘만종’의 탄생

조택원이 밀레의 「만종」을 무용화한 배경은 무엇일까? 조택원은 1938년 프랑스 유학 중 밀레의 「만종」 그림이 탄생된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살았던 퐁텐폴로를 직접 찾아간다. 바르비종은 밀레의 인상주의 걸작이 탄생된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파리 근교 밀레가 살았던 곳을 찾아간 조택원은 여기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무용가로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그곳은 古宮으로 유명한 퐁텐블로 근처였다. 파리에서 고속도로로 2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그림 『만종』에서와 똑 같은 교회가 그때도 똑 같은 모양으로 서 있었고, 주위는 그 옛날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답지 않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림에서와 같은 기도하는 두 농부만 없을 뿐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그 두 농부가 섰을법한 그 자리에 서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러지며 정말 기도라고 드리고 싶은 경건한 마음이 우러나오면서 나는 더 한층 큰 희망과 용기를 깨달았다”

파리 외곽에 위치한 퐁텐블로 지역을 방문한 조택원은 그때의 감흥을 자서전 『가사호접』에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그는 자연과 대지를 벗 삼아 노동에 열중하는 농부들의 진솔한 삶의 목가적 풍경을 캔버스가 아닌 무대 위에, 붓놀림이 아닌 몸짓의 변주로 그려냈다.

초연 당시 ‘만종’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림의 주제를 내면화한 독창적 몸짓에 당시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서양음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피아노곡인 쇼팽의 야상곡을 엘만의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음악을 사용했는데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애절하고 잔잔한 느낌의 바이올린 음색은 ‘만종’의 안무의도를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2인무의 공연형식도 화제를 낳았다. 누가 조택원의 파트너가 될 것인가는 늘 관심사였다. ‘만종’은 공연 때마다 여성파트너가 바뀌었다. 초연 때는 스승 이시이 바쿠의 여동생 이시이 에이코가 맡았다. 그후 최승희 제1호 제자 김민자,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아내이자 시인 마종기의 모친으로 이화여대 무용과를 창설한 박외선, 월북무용가 장추화·이석예 등과 호흡을 맞췄다.

미국 공연에서는 헐리우드 무용스타 엘로이즈 올소와 추었고 유럽공연에서는 조택원의 오랜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인 오자와 준코가 맡았다. ‘만종’의 최다 출연자는 역시 오자와 준코였다.
  밀레의 원작 그림에 형상된 프랑스 농촌 풍경이 조택원의 ‘만종’에서는 조선의 농촌 풍경으로 묘사되었다. ‘한국화’를 시도한 것이다. 의상도 한국화하여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착용하고 여자는 치마저고리 차림에 넓은 앞치마를 둘렀다. 춤사위도 한국적 몸짓을 차용하여 노동의 일상을 고단함이 아닌 흥과 신명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청교도적 경건함과 숭고함 또한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미덕으로 강조되었다.

시인 정지용은 조택원의 ‘만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원근법의 구도와 종교적 생활감정의 표현이 거장의 원화(原畵)에 조선의 바지와 치마를 입혀 독특한 무대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했다. 휘문고보 1년 선배인 정지용은 조택원의 과외선생을 지냈으며 그의 정신적 지주였다. 월북할 때 조택원의 외동아들을 동행하고 갔을 정도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다.

‘만종’은 국내외에서 약 2천회의 공연을 갖는 등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조택원은 세계인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한 서양의 명화를 모티브로 빛나는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말하자면, 조택원이 안무한 ‘만종’은 일평생 농촌 풍경을 주제로 농부들의 소박하고 진실된 삶을 숭고하고 평화로운 목가적 정취로 그려낸 장 프랑소아 밀레에 대한 오마주의 소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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