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웃는 남자’의 오필영 무대디자이너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웃는 남자’의 오필영 무대디자이너에게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18.08.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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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이구동성(異口同聲)은 이럴 때 해당되겠죠? 뮤지컬 ‘웃는 남자’의 작품평은 갈려도, 무대에 대한 칭찬은 모두 한결같더군요. EMK의 첫 번째 창작뮤지컬 ‘마타 하리’에서도 무대는 돋보였습니다.

당신은 ‘길’이라는 키워드를 설정하고, ‘삶과 죽음’을 그려내고 있었죠. 물랑루즈와 사형장이 마타하리의 기억으로 연결되고, 관객들도 그런 기억들을 함께 따라가게 됩니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또 어떠했나요? 4중 회전무대는 거실, 정원, 무덤, 기차역으로 장면이 바뀌면서 드라마틱한 전환을 만들어냈습니다. 무대가 ‘드라큘라의 분신’임을 증명했습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상처와 터널’을 키워드로 삼아서 전개하고 있더군요. ‘웃는 남자’의 얼굴 상처를 잘 이미지화했고, 그것은 원형을 바탕으로 한 원근감이 느껴지는 ‘터널’과도 잘 연결되었습니다. 작품과 연관해서 ‘부자’과 ‘빈자’의 두 축을 잘 드러냈습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본 후, 영화 ‘웃는 남자’를 뒤늦게 봤습니다. 로버트 요한슨(대본 및 연출)은 영화에 무척 반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당신은 기존 영화가 갖고 있는 색감을 비롯한 미장센을 충실히 살리면서, 그것을 뮤지컬무대로 잘 풀어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게 뮤지컬과 영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뮤지컬입니다. 뮤지컬에서 영화보다도 훨씬 더 느낌이 잘 살아있는 두 개의 씬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회 씬입니다. 영화에선 뒷모습이 보이는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의회씬이었죠. 뮤지컬에선 의원들의 모습이 모두 보이면서 ‘웃는 남자’의 상처를 확대한 듯한 ‘곡선적이고, 입체적인’ 장면으로 거듭나면서, 관객에게 묘한 웃픔(웃기면서도 슬픔)을 무대 자체로 전달해주었습니다. 당신은 능력자입니다.

아주 극찬하고 싶은 것은, 뮤지컬 마지막 장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물에 가라앉는 ‘현실적 허무’였다면,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려낸 ‘환상적 결합’이었습니다. 영화도 그렇지만, 특히 뮤지컬에서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장면마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뮤지컬에서는 그간 작품 속에서 쓰지 않았던 보라색의 느낌이 잘 살아있죠. 보라는 알다시피 빨강과 파랑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이 작품의 앞에 등장하는 선(線)의 이미지를 잘 살리면서, 가난한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따스한 선(善)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오필영이라는 무대디자이너의 마음마저 읽을 수 있는 듯 했습니다.

아쉽게도, 제 칭찬은 여기까집니다. 이제 ‘개인적 취향’을 전제로 해서, 당신 작품이 갖는 아쉬움을 얘기하렵니다. 당신의 무대는 너무 드러납니다. 무대를 ‘또 하나의 배우’라고 하지만, 여기서의 배우는 분명 주인공은 아닐 겁니다. 배우 중에서는 많이 나오거나, 많이 드러나진 않지만, 한 작품 속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배우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무대도 이런 배우였으면 합니다. 당신의 무대를 보면, 마치 무대에 또 하나의 배우가 있고,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당신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무대가 ‘매우 정교하고, 역동적이다’에 동의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높고, 크고, 강(剛)한’ 것을 지향하기에, 때론 부담스럽습니다. ‘낮고, 작고, 유(柔)한’ 가운데서 그걸 ‘슬쩍’ 느끼게 할 순 없을까요? 많은 분들의 칭찬을 받았던 ‘잃어버린 얼굴 1985’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진틀을 통해서 ‘압도하려는’ 무대가 ‘너무도 직접적이어서’ 부담스럽습니다. ‘무대가 너무 의도를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쌍화별곡’ ‘해를 품은 달’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조각보’를 잘 살린 ‘해를 품은 달’은 조금 예외였습니다. 왜냐하면, ‘해를 품은 달’이란 뮤지컬 자체의 ‘대본’과 ‘연기’면에서 꽤 취약한데, 그나마 무대에 눈길을 돌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내 눈에 비친 당신의 무대디자인은, 무대를 주인공처럼 보라는 듯, 과합니다. 무대디자이너로서의 적절한 혹은 적정한 무대는 소극장 무대에서 돋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한동력’, ‘라스트 로얄 패밀리’가 그렇습니다. 특히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무대는 너무도 작은데, 장소는 여러 곳인데, 인물의 등퇴장도 상당한데, 격자무늬를 바탕으로 한 무대에서 ‘문’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더군요. 무대디자인이 연출에 얼마만큼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필영님! ‘보여 지는 것’과 ‘느껴지는 것’은 다릅니다. 당신의 무대가 보임을 넘어서 더욱더 ‘느낌’을 행해가길 바랍니다. 무대를 통해서 보여주는 ‘직유’ 차원이 아니라, 느껴지는 ‘은유’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소극장 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로기수’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작품에선 무대를 드러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분명 알 겁니다. 이 작품에서도 당신의 꼼꼼함이 좋은 무대를 만들게 해 주었다는 것을. 전반적으로 당신의 무대에선, 조금은 비어있고, 조금은 덜어냈으면 더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대디자이너 박동우의 무대에 끌립니다. 과거 이 분의 무대를 너무 ‘차갑다’ ‘단순하다’면서, 박동우 무대의 가치를 때론 간과했던 것이 아닌지 반성도 합니다. 나는 그저 이 분이 “‘가성비’에 매우 충실한 현명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더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분의 무대디자인은 많은 면에서 ‘연출과 배우에게 뛰 놀수 공간 또는 여지를 배려한 무대 디자인이었습니다. 무대 디자인으로서의 적정선을 늘 아름답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이제는 박동우의 무대에서 ‘비어있는 충만’을 경험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무대는 배우가 아니다”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에겐, 꼭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젊고 열정적이고, 당신만의 스타일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치 무대가 주연배우처럼 존재하는 것을 자제한다면, 오히려 당신의 무대는 ‘보고 또 보고’ ‘느끼고 또 느끼게’ 될 겁니다. 당신이 마치 무대를 배우처럼 보게 하려는 생각이 바뀐다면, 가능할 겁니다. 당신이 지금 대본에서 찾아낸 무대를 만들기 위한 키워드가 서너개라면, 이젠 한두개로 줄여서 집약적으로 형상화시켜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무대디자인의 논리와 변주를 만들어내셔야겠지요.

당신이 만드는 무대가, 작품 속에서 덜 보였으면 합니다. 꼼꼼함은 답답함과도 통하고, 압도하는 스케일은 때론 오버 혹은 낭비일수도 있죠. 무대가 변화무쌍하다는 건, 때로는 한 가지 주제(소재)를 소신있게 밀고 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과도 통할 수 있습니다. 비우면 채워진다. 이건 뮤지컬 무대에도 해당되고, 당신의 작품에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무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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