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근대공연 예술사의 거장-조택원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근대공연 예술사의 거장-조택원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8.08.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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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111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무더위인 요즈음에도 무용공연은 날마다 쉬지 않고 올라가고 있다. 극장만큼 시원하고 쾌적한 곳도 많지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공연의 다양성과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 이유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매년 보게 되면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젊은 세대 무용수들의 패기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무용가들의 활동반경은 이미 전 세계로 뻗어나가 있고, 일찌감치 세계무대에 도전했던 무용가들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한국무용사를 넘어서 근대공연예술사에 남은 조택원(1907-1976)이라는 거목이 있다. 김호연의 <한국 근대 무용사. 2016>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근대 시기, 사회 여러 부분이 그러하듯 무용도 여러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었다. 전통춤은 아직까지 공연예술로 정립이 안 된 상태였고, 근대적 담론을 담은 새로운 무용의 실험은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천한 환경에서도 한국근대무용의 정립에 힘쓴 몇몇 선구자들의 노력은 상찬할 수 있다.” 몇몇 선구자의 이름에서 가장 앞서 거론되는 이가 조택원이다.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조택원이 이루고자 했던 그랜드 발레의 이상으로서 <학>과 <부여회상곡>이 있다. 우리 것을 소재로 하여 서양의 발레, 현대무용, 음악 등 여러 기법과 요소를 융합하고자 한 조택원의 실험은 지금 다시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택원의 삶과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택원 탄생 100주년 기념 복원공연>에 참여하면서였다. “재현, 복원되는 조택원 신무용 명작”이란 제목으로 2007년 12월 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렸다. <만종> <가사호접> <신노심불로> <학> <춘향조곡> <고독> <농악무>등 신무용 레퍼터리가 복원되어 실연되었다. 공연 전에 본 조택원의 춤 영상 중 <춘향조곡>과 <농악무>에서는 움직임을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었는데, 조택원 특유의 움직임의 특질이 한 눈에 드러났다. 그것은 한국춤의 중요요소인 절제와 신명이었다. 그토록 매력적인 무용가와 멋진 한국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김형남과 함께 <만종>을 복원하여 공연했다. <만종>은 1935년 조택원 제2회 무용발표회에 초연된 작품이다. 인상주의 화가 밀레의 만종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2인무로, 초연시 조택원과 함께 춤 춘 여성무용수는 이시이 에이코였다. 그녀는 조택원의 스승 이시이 바쿠의 여동생이었다. 이후에는 진수방, 박외선, 장추화, 임경희, 김선영, 1950년 하와이 공연에서는 엘로이즈 올소 등이 호흡을 맞추었는데 <만종> 최다 출연자는 조택원의 예술적 동반자라 불리운 오자와 준코라는 일본 무용가였다.

당시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면서 조택원 선생의 업적에 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이 있었다. 임성남의 스승이자 일본 발레협회장을 지낸 백성규(일본명 시마다 히로시,1919-2013)는 휘문중학 시절 부민관에서 조택원, 김민자의 <만종>을 보며 처음으로 춤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위대한 선배이자 행복한 예술가로 그를 회고 하였다고 한다.

휘문고보 재학시절 테니스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조택원은 1921년 블라디보스톡 고국방문무용단을 이끌고 온 박세면에게 코팍춤을 비롯해 러시아 민속춤을 배우고 다음해인 1922년 한국 최초의 신극회인 토월회 공연에 출연해 코팍춤을 추는 등 대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조택원의 창조적인 성향은 기존 춤의 답습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1927년 보성전문 법과 2학년 때 본 이시이 바쿠의 작품<사로잡힌 사람>에 매혹되어 그의 제자가 된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조택원은 1929년 솔로 데뷔공연 <움직임의 매혹>을 동경 아사히신문사 주최로 열게 되었고, 조택원 후원회도 결성되었다.

조택원은 전방위 엔터테이너 기질이 있었다. 2006년 중국 북경에서 <미몽>을 비롯한 세 편의 필름이 발견되어 문화재청 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영상자료원의 복원을 통해 볼 수 있게 된 영화 <미몽(양주남,1936)>에는 조택원이 직접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조택원무용단의 무용장면이 담겨 있다. 무용가가 쓴 최초의 국내 칼럼도 조택원이다. 1963년 10월 25일부터 대한일보에 8회의 칼럼을 기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미국 무용잡지에 한국인 무용가 최초로 평이 실렸다거나 제이콥스 필로우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최초로 한국춤 강습을 한 일, 세르쥐 리파르나 우다이 상카르, 루스 세인트 데니스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과의 친분, 수백회에 이르는 외국에서의 공연, 이승만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오랜 기간 한국에 들어 올 수 없었던 비화, 한국무용협회의 창설 등 한국인이자 세계인이었던 조택원의 행보는 지금 더욱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