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포토 에세이 39] - ‘향수’의 고장 옥천의 정지용문학관
[천호선의 포토 에세이 39] - ‘향수’의 고장 옥천의 정지용문학관
  • 천호선 전 쌈지길 대표/전 뉴욕문화원장
  • 승인 2018.08.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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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한국문학사에서 단 한명의 시인을 꼽는다면 정지용”이라고 평하였다. 정지용의 고향 옥천은 그의 대명사가 된  시 ‘鄕愁’의 고장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향수’는 그가  일본 유학을 앞두고 12세에 결혼한 아내와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지은 시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6년간의 일본 유학 시절 일본 문단에도 널리 알려진 정지용은   귀국후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 동인이 되어 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1939년 <문장>지 창간을 계기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 후배 시인들을 한국 문단의 기둥으로 키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해방후에는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으며, 경향신문 주간으로도 초치되어 경향신문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지용은 북한군에 납치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있다가 평양감옥소로 이감된 후 폭격으로 1950년 9월25일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진월북으로 잘못 알려져 1988년  월북문인 해금조치 이전까지 작품 접근이 금지된 비극이 계속되었다. 정지용이 복권되자 옥천군은 ‘정지용문학상’을 제정하고, 그의 생가를 복원한후, 생가 옆에 ‘정지용문학관’을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