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작가와 비평가, 진실을 놓고 벌이는 펜 끝의 싸움 <비평가>
[리뷰] 극작가와 비평가, 진실을 놓고 벌이는 펜 끝의 싸움 <비평가>
  • 김수련 인턴기자
  • 승인 2018.08.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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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과 달리 여성 배우 백현주·김신록 캐스팅, 9월 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비평가 볼로디아와 성공한 극작가 스카르파, 두 주인공이 ‘암전 하나 없이’ 100분 동안 무대를 이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비평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서도 서로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 ‘그날 밤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에서 본래 남성 배역인 두 캐릭터를 여성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점이 이번 공연의 특색이다. 여성 배우가 맡았다 해서 옷차림이나 캐릭터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하지 않는다. 두 여성 배우는 그저 성공한 작가와 원로 비평가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남성 배우가 공연했던 초연 때와는 다른 독특한 울림을 선사한다.

▲ 연극 <비평가>가 9월 1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내가 축하받고 싶은 사람은 볼로디아, 당신입니다.”

극작가 스카르파는 10년 만에 새 작품을 발표에 공연을 올렸다. 관객들은 15분 동안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하지만 스카르파는 만족할 수 없었다. 10년 전 자신의 첫 작품에 혹평을 쏟은 비평가 볼로디아에게 좋은 비평을 받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스카르파는 공연의 막이 내린 후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조금은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오늘 공연의 평론을 쓰길 요구한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흔들림 없이 혹평을 쏟아내며 오히려 작중 인물이 거짓됐다며 날카롭게 지적한다. 두 사람의 설전은 치열하고 팽팽하게 지속된다.

스카르파와 볼로디아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실에 매몰되어 그 이면을 보지 못한다. 그런 둘의 설전은 공격과 방어가 오가는 권투 경기를 방불케 한다. 서로 상대를 무너뜨릴 한 방을 찾으려고 하지만, 설전이 오갈수록 둘은 오히려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된다.

스카르파는 볼로디아에게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극적인지 설명한다. 젊은 권투선수 에릭과 그의 권투 스승 타우베스가 주인공이다. 그리고는 볼로디아 눈 앞에서 신나게 잽을 날리며 신작 속 에릭과 스승의 권투 대결을 연기한다.

▲ 연극 <비평가> 무대 중앙에는 기다란 탁자가 놓여있다.

무대 위 기다란 탁자는 어느새 무대 속의 무대가 된다. 역동적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기하는 스카르파의 모습은 볼로디아에게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극이 흐르면서 우리는 에릭과 스승의 모습이 사실 스카르파와 볼로디아의 관계가 투영됐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작품은 무대와 객석을 대표하는 극작가와 비평가를 내세워 연극의 본질과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펜 하나로 극작가는 제 자식 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비평가는 그 작품을 재단 위에 올려놓는다. 그들이 끊임없이 고뇌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책상’이라는 공간이 무대 속의 중심 오브제로, 넘어서 무대 속 무대로 작용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날 밤, 책상에서 자신의 펜을 내어줄 사람이 누가 될까.

극 후반에 다다라 결국 자신들의 믿고 있는 진실들이 전복되면서, 볼로디아는 무릎을 꿇고 절규하고 스카르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혹평을 써나간다.

볼로디아가 스카르파의 작품에서 가장 거짓되고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던 ‘맨발의 여인’이 자신의 과거 연인을 투사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극은 절정에 달한다. 과연 그 조차도 진실일까. 내가 믿고 있는, 내가 노래하고 있는 목소리가 과연 진실일까. 돌아서서 계속 곱씹게 된다.

"우리는 연극에 바라는 것을 삶에는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에는 진실을, 완전한 진실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라면 오늘 밤 우리가 본 작품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스카르파는 마지막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적어나갔다. 그리고 끝에 ‘그럼에도 스카르파는 계속 써나가야 한다’며 볼로디아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을 다시 자극한다.

이날 밤, 진실을 놓고 벌이는 결투에서 승자는 없다. 진실을 놓고 벌이는 이 싸움에서 승패를 가를 수 없다. 결국 고백을 토해내고 마는 둘 사이 누구의 감정에 더 공명하느냐 관객들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아와 스카르파의 마지막처럼, 결국 삶과 예술 그 어느 쪽이든 진정한 자기 목소리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연극이다. 하지만 극이 끝난 후 연극과 당신의 현실을 계속 곱씹게 했다면, 연극 <비평가>는 성공했다.

<비평가>는 9월 1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