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 춤의 뿌리, 시공 넘어 동아시아적 가치 확산", 전통춤 전승 문제 논의
"한성준 춤의 뿌리, 시공 넘어 동아시아적 가치 확산", 전통춤 전승 문제 논의
  • 김수련 인턴기자
  • 승인 2018.08.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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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한성준과 근대 동아시아 춤 가치 재조명’ 국제학술심포지엄, 무형문화재 전승 및 유파 문제 토론

재인 한성준과 근대 동아시아 춤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이 22일 오후 1시 30분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배움터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와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 주최하는 학술행사로, 재인 한성준 춤의 뿌리가 시공을 넘어 어떻게 가치가 확산되어왔는지 동아시아 3국 한중일을 중심으로 조망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무형문화재 지정제도, 유파와 전승 문제에 대한 논란을 점검해보는 데 유효성을 가졌다.

▲ 리영욱 전 연변대 교수가 직접 중국조선민족 소고춤 춤동작을 직접 선보이고 있다

김헌선 경기대 교수의 진행으로 이병옥(용인대 명예교수), 리영욱(전 연변대 교수), 남성호(와세다연극박물관 객원연구원), 마쓰모토 뎃페이(코마자와여자대학교 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았고, 이어 윤덕경(서원대 교수), 박은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기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남도현(성균관대 겸임교수)가 종합 토론을 함께했다.

이병옥 교수는 재인 한성준 무악인생을 생애구분으로 돌아보며 그가 지닌 근대무용사적 의의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어려서부터 춤와 음악, 줄타기 등 재인으로서 성장해온 한성준은 전국 유랑생활을 거치며 전국 각자의 민속예술을 익히고, 김인호의 춤반주를 맡으며 교수법을 익혔다. 한성준 선생은 신분과 가난을 극복하고 우리 것을 살리려는 의지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우리 전통춤과 가락을 집대성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한성준의 족적을 되짚었다.

리영욱 전 연변대 교수는 근대 중국조선민족무용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최승희와 박용원의 역사를 주목했다. 리영욱 교수는 박용원 선생의 직계 제자로서 “무용은 실천이다. 말로 해서는 다 알 수 없고 직접 실기를 통해야만 알 수 있다”며 주제 발표와 함께 조선족무용 춤동작과 소고춤을 직접 선보였다.

남성호 와세다대학교 객원연구원은 근대 일본의 소산 니혼부요 유파와 이에모토 제도에 대한 소개를 통해 전통춤 연구와 전승에 있어서 유파와 제도 문제에 대해 담론을 제시했다. 이에모토 제도는 선행자가 지닌 기술이나 비법을 제자에게 전승하는 이에모토(家元) 존재에서 출발해 일본 특유의 문화사회를 형성하는 제도적 조직체로 성장해왔다.

남 연구원은 “현대에는 유파에 대한 연구가 없어서 놀랐다. 유파 연구가 위축된 이유와 한국 전통춤 유파 연구에 대한 의문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니혼부요와 이에모토 제도를 탐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니혼부요의 유파는 굉장히 많다. 교습권을 가진 나토리(중간 사범)이 이에모토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유파를 탄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모토 제도의 공과와 향후 문제시되는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며 일본 사례를 들었다.

▲ 마쓰모토 뎃페이 교수가 남도현 교수의 통역과 함께 주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마쓰모토 뎃페이 코마자와여자대학교 교수는 한성준 학춤 재창조로서 신무용가 조택원의 <학>을 위해 만들어진 다카기 악보 복원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제언했다. <학>은 1930년대 한성준에게 전통학춤을 사사한 조택원이 동양발레를 표방해 창작한 신무용 작품이다.

마쓰모토 교수는 “소재 불명이었던 ‘학’의 악보가 작곡가 다카기 도로쿠의 생전 자택에서 발견되면서, 2016년 <학>의 음악과 무용작품 복원작업이 한일 양국에서 펼쳐졌다. 악보에 한국 전통춤인 학춤을 발레 형식으로 한다는 춤에 대한 지시가 기입돼있다. 서양음악 볼레로의 리듬과 한국의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멜로디가 학의 춤추는 모습을 지탱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는 한중일 3국 간 전통춤문화의 지속과 교류에 대한 토론과 최근 제기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도와 한국 전통춤 유파와 전승 문제에 대한 논의가 중심적으로 이어졌다.

윤덕경 서원대 교수와 리영욱 교수는 우리 민족 춤의 뿌리가 한성준에서 최승희, 박용원으로의 맥을 되짚었다.

북한과 중국 무용교육 현장 내 한민족 춤 역사가 어떻게 맥락을 같이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리영욱 교수는 “북조선의 무용이 정치 요구에 의해 어떻게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 바탕은 최승희 선생의 것이다. 중국에서도 북경 희곡학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해 많은 무용인들을 양성하며 중국 근대무용 발전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고 답했다.

▲ (왼쪽부터) 남도현, 마쓰모토 뎃페이, 성기숙, 이병옥, 김헌선, 리영욱, 윤덕경, 남성호, 박은영 교수가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토론에 참여한 박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과 심포지엄을 통해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 하게 됐다. 한성준 선생이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 우리가 발굴해온 작품의 수가 너무 적다”며 소멸된 작품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현재 전통문화계가 겪고 있는 아픔은 오늘날 민속 무용에 대한 제도와 유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천흥 선생에게 처용무를 충분히 배웠지만 제도적인 문제로 내가 배운 것을 내 마음대로 가르치기가 어렵다. 이수도 전수도 하지 않으며 선생님의 가르침과 따로 보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밝혔다.

이에 남성호 와세다대학교 연구원은 “전승과 보전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의 특성상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오고 수백개 중 대부분이 도태되고 살아남는 것이 문화재가 되는 맥락에 놓여있다. 무형문화재 역시 보전 차원에서 끝내지 말고 춤을 좀 더 대중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통춤에 대한 인식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전했다.

성기숙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는 “그동안 통시적으로 한성준과 전통춤을 다뤘다면, 올해는 미시적으로 접근했다. 근대의 소산인 일본 이에모토 제도의 사례는 현재 우리나라 전통춤 유파와 무형문화재지정문제와 맞닿아있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국 전통무용 환경을 바라보면 상징적인 분들이 많이 작고하셨고 본격적인 ‘세대교체’ 시기에 놓여있다. 이러한 시기적 상황에서 무형문화재 심사 불공정 시비가 문제됐고 너도나도 이른바 ‘새로운 춤 족보 만들기 열풍’이 일고 있다. 면밀한 기초조사가 필요하다. 유파와 연결된 무형문화재 진입에 있어서 순수한 열정, 예술성, 학술성, 민속적 가치 등과 같은 엄격한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병욱 교수가 토론을 정리하며 “새로운 유파와 숨어있는 유파를 어떻게 관리함으로써 우리 전통춤 문화를 살릴지의 문제는 현재 우리에게 떨어져 있는 큰 불덩이와 같다. 전통무형문화와 예인들이 ‘세대교차’가 되는 현 시점에서 인멸 직전의 것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무형문화재 지정 제도 개혁과 문화재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쇄신의 뜻을 밝혔다.

토론 참석자들은 특정 예술 장르와 소수 인물 중심으로 생겨난 무형문화재 내 권력화, 자본화, 독점화 문제를 지적하며 제도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제5회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한성준의 춤, 시공의 경계를 넘어’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오는 25일에는 한성준 예술세계의 정신사적 기층을 형성한 불교문화의 성지 충남 서선 보원사지에서 중앙과 지역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하는 '천년의 유산, 보원사지에서 춤을 만나다(2)'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