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의 비평의 窓] 귀국발표회는 전문 공연장에서 퇴출해 학교 콘서트홀에서
[탁계석의 비평의 窓] 귀국발표회는 전문 공연장에서 퇴출해 학교 콘서트홀에서
  • 탁계석 평론가
  • 승인 2018.08.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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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외투를 입고 있는 예술 공간성 개념의 부재
▲ 탁계석 평론가

미국 뉴올리안즈 해변에서 비키니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오늘날의 미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선정성 시비가 일어난 것이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차가 나오자 마부들이 기관차를 막고 나섰다는 예도 최근에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말하면서 소개했다. 사진기가 나오자 초상화를 그려 먹고 살던 화가는 다 죽을 것이란 예상했지만 새 화풍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기존의 틀을 깨는 충격의 연속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생존법을 찾아왔다.

시민회관, 문화회관처럼 다목적 공간에서 연주하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에게도 극장다운 극장이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이나 금호아트홀 등 나름의 등급이 매겨진 전문 공연장들이다. 지방에도 이런 등급은 통한다. 좋은 공간이란 누구나 알고 있고 음향도 좋아 선호한다. 이런 정해진 틀은 브랜드 선호와 함께 청중도 접근성이 좋다. 이 공간들을 유학파 귀국음악가들이 발표회장으로 사용함으로써 데뷔 및 아티스트로서 인정받는 것이란 프리미엄이 주어졌다. 사실, 숱한 고생 끝에 석사, 박사를 따온 錦衣還鄕(금의환향)의 예술가에게 국가가 좋은 공간을 제공해 대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는 20~30년의 상황과 달라져야 한다.

대관극장 보다 더 효율성 높은 극장 운영을

이제는 귀국발표회가 관심의 대상이 못되고 통과 의례다. 실력은 평준화되었다. 발표회 한 번 개최하는 것조차 비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관객들이 연구 실적 발표같은 음악회에 얼마나 호감이 있는가. 극장이 예술가의 우선에 관객이 극장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문성있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주가들이 대관료 내었다고 독점화하기엔 과분하다는 것이다. 차재에 대학 교수, 강사, 실적 평가를 특정 공간에 한정하는 것에 논의가 필요하다.

실적 발표회는 관객을 내쫒는 역기능 초래

한 때 심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他(타) 관객이 없는 곳에서의 발표회로 눈가림하다 거짓이 들어나면서 이 같은 제도가 생긴 것으로 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떤가? 유튜브 동영상도 있고 새로운 평가를 세울 수 있는 방식을 얼마든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확 바뀌어야 한다. ‘대관’이란 쉬운 방식을 버리고 우수 아티스트를 선정해 멋진 기획 상품을 만들어 연주가 끝나면 개런티를 지급하는 살아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대안으로 귀국 발표회나 교수 실적은 대학 콘서트홀에서 하는 것이 합당하다. 예술의 선진 기술을 전공 대학생들이 수용함으로써 바로 직접적인 교육의 장이 된다. 청중이 학구적인 프로그램을 두 시간 가까이 설명도 없이 듣는 것은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관객 개발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둘째는 초대권 남발이다. 티켓 팔아서 살아야 하는 프로 음악가의 시장개발에 방해가 된다. 셋째는 대관 복덕방化(화)는 창작. 기획 능력을 枯死(고사)시킨다.

맛있는 요리 내 놓는 관객 찾는 식당 만들어야

정성으로 맛있는 요리를 내어 놓아야 식당이 산다. 배워 온 것을 연대 순으로 풀어 놓는 것은 두루미의 식사 초대다. 다른 곳도 아닌 예술을 창조해야 하는 극장에서 대관 방식을 흘러간 방식이다. 누구를 위한 공연?, 공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현실적인 답이 요구된다. 극장이 창조성을 잃으면 바보공간이다. 생각이나 철학이 없이 여름날 해수욕장 파라솔 빌려 주듯하고 나몰라라 한다면 이게 극장인가. 어떻게 치열한 예술혼이, 생명력이 살아날 것인가. 마케팅을 통해 극장을 살려야 한다. 기획사들도 콘텐츠 기획으로 대관을 해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소프트웨어에 개념이 없다면, 바보극장이 낳은 또 하나의 바보기획이다.

대관심사가 몇 십대 1이라고 걱정없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극장이 자존심도 없고, 그래도 프라이드를 느낀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본질에서 벗어나 달리는 것을 알고도 모른체 하는 것인가?

빠른 시간내에 대학이 평가 방식을 바꾸기를 촉구한다. 이 틀 하나만 깨도 엄청난 변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귀국 발표회는 대학 공간에서, 극장은 프로 음악가의 상품 개발을 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아티스트, 극장, 관객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누가 혁신의 키를 쥘 것인가. 점점 관객이 떠나고 있는 클래식 하향평준화에 혁신의 신호탄이 터져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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