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2018 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2018 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8.08.3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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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7.28~29, 아르코예술대극장)이 올해 15회를 맞았다. 해외무용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출신 무용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연례공연이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장광열)가 주최하고 김용걸(한예종 교수)이 4년 째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올 행사의 특징 두 가지가 눈에 뜨인다. 외국인 무용수 초청이 1명으로 최소화되었다는 것과 김용걸 예술 감독의 안무작 4편이 초청무용수들에 의해서 공연된 것이다. 무대에 오른 11개 작품은 4개의 클래식발레와 7개의 컨템퍼러리 작품이다. 김용걸 외에 김설진, 나초 두아토, 라미 베르(이스라엘 키부츠무용단 예술감독)의 안무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벨기에의 피핑탐(Peeping Tom)무용단에 소속되어 있는 김설진은 ‘고막 속 난쟁이’란 자신의 안무작을 초연했다. 난쟁이는 귀 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상징한다. 먼 바다에서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인어공주의 목소리처럼 나윤선이 부른 ‘사의 찬미’가 나직하게 배경에 깔린다. 음악에 맞춰 김설진은 즉흥 아닌 즉흥 춤을 춘다.

복잡한 무대도구를 사용하면서 힙합계통의 움직임을 통해 다양성을 실험하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움직임에 시적인 리듬이 살아 있다. 진정성보다 장난기가 살짝 느껴졌던 전작들과 차별화되면서 그의 성장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뒤 벽이 살짝 열렸다 닫히면서 빛나던 짧은 순간은 아마도 짧은 삶을 마감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 젊은 예술가(윤심덕)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것이리라.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무대미술과 함께 김설진의 서정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인상적인 8분이었다.

베를린 슈타츠국립발레단에 소속된 김애리와 이번 대회 유일한 외국인초청무용수인 알렉세이 오르렌코는 '해적 파드되'와 ‘헤럼브레(Herrumbre; 녹슬었다는 뜻)' 작품에 출연했다. 해적에서 무거운 몸놀림이 불안해보였던 김애리는 컨템퍼러리 작품에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주었다.

‘헤럼브레'는 나초 두아토가 관타나모 미군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현장을 사진으로 보고 느낀 충격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스페인 작곡가인 페드로 알칸데가 2004년 작곡한 동명의 곡을 당시 스페인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으로 있던 나초 두아토가 안무했다. 달빛처럼 은은한 조명과 장중한 음악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혀 고문과 테러에 직면한 죄수들의 공포와 절망감을 표현한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청보라색 롱드레스차림의 김애리와 알렉세이가 이루어내는 유연한 파트너링이 돋보였다.

김용걸은 안무한 네 작품에서 자신의 춤 캐릭터가 본질적으로 서정적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이현준과 강미선이 짝을 이룬 ‘산책’은 김지현의 감미로운 피아노음악을 배경으로 바탕에 깔려있는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시였다. 전 툴사(Tulsa)발레단 에서 춤추었던 김현준의 검은 연미복과 국내무용수로 특별 초청된 강미선의 흰색 드레스가 잘 어울린다. 해질 녘 노을빛을 받으며 함께 걷는 산책길처럼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작품이었다.

그리움을 표현한 또 하나의 작품 ‘Obliviate(망각)’에선 김용걸 무용단 주역무용수인 김다운과 함께 김용걸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무대 뒤 벽면에 문이 반쯤 열려있다. 기억의 창고로 통하는 문이다. 문을 열고 하얀 드레스의 여인이 무대 가운데로 이끌려나오고 기억의 방 속에 남아있던 함께 했던 기억들은 복사되듯 닮은꼴의 듀엣으로 나타난다.

폴란드국립발레단에 소속된 정재은은 함께 초청받은 폴랜드 브로츠와프 오페라발레단 소속인 최원준과 함께 'Conscience(의식)‘를 춤춘다. 해뜨기 전 여명을 상징하는 희끄무레한 배경색이 원초적인 의식세계를 상징한다. 둔한 듯 맑은 음색을 내는 마르첼로(Marcello)의 오보에음악(concerto per oboe in re minore)이 짙게 깔리는 무대에 검은 색 타이즈차림의 두 무용수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체격을 뽐내며 한예종 재학 시부터 익혀온 오래된 파트너쉽을 보여준다.

영스타로 초청된 심지은(선화여중)과 서울예고 재학생인 서윤정∙정용재 커플의 재능도 눈에 띄었다. 한 발로 콩콩 뛰듯이 무대를 이동하는 심지은의 코믹한 춤 구성이 재미있고 첫사랑을 표현한 서윤정 커플의 감수성도 인상적이었다. 초청영재로서가 아닌 해외발레스타로서 그들이 다시 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