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이야기]런던 킹스크로스 광장의 가격
[백지혜의 조명이야기]런던 킹스크로스 광장의 가격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대표
  • 승인 2018.08.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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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런던은 아주 가끔 가게 되는 도시이다. 서울로부터의 비행시간도 만만치 않지만 서유럽, 동유럽 그리고 북유럽 어디를 가던 일부러 일정을 잡아야하는 까닭에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다.

오랜만에 방문한 런던은 한층 더 경관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고층 건물들이 템즈 강변에 들어섰을 뿐 아니라 자재나 공법 그리고 운용 시스템에 있어서 이제는 친환경, 지속가능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테이트 모던의 별관이 생겨 전시의 질과 양에 있어서 엄청난 팽창을 한 듯 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문화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이슈, 공공의 삶을 위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우리 현대미술관도 언젠가는 이 지점으로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을 오면 꼭 가보아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던 곳은 KING'S CROSS SQUARE 일대 였다.
 이 광장은 KING'S CROSS RAILWAY STATION을 포함하고 있는데 1852년에 세워진 붉은 벽돌 건물과 주변 약7000 제곱미터에 이른다. 해리포터가 카트에 짐을 가득 싣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기 위해 벽으로 돌진하는 그 장면에 등장하는 역이다.

야간경관업무를 맡은 StudioFractal에 의하면 공간의 특성 - 형태, 질감, 역사성등- 을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주,야간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장소로서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에 설계의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조명계획은 상징적인 야간명소가 될 수 있도록 역사 입면의 벽돌 색과 질감을 밝고, 아름답게 표현함과 동시에  길찾기가 용이하고 시민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자료를 접했던 대로 위치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런던 시내에서 여기저기 붉은 벽돌 건물은 산재하나 KING'S CROSS RAILWAY STATION 이란 글자, 기차 그림 하나 없었어도 커다란 시계와 분주하게 오가는 시민들과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보고 ‘아하. 여기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렸다.

직업 때문인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20m 높이의 폴. the Needls 라는 이름의 조명기구로 제법 넓은 광장에 단 3개만이 설치되어 바닥과 역 건물의 입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역사적 가치를 갖는 역 건물을 가리지 않도록 건물에 맞추어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조명기구의 빛이 눈부시지 않도록 작은 광원 여러 개를 사용하여 세심하게 비추고자 하는 부분들을 향하고 있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짐작컨대 폴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효율은 낮아졌겠지만 기준 하는 밝기를 광장 전체에 고르게 퍼지게 하는 데에 이로웠을 것이고 설치해야 하는 조명기구의 수가 줄어 유지 관리의 횟수 또한 줄어들었을 것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같은 디자인의 낮은 폴들이 정렬되어 있는데 이는 티켓을 사는 공간으로 유도한다. 사람들이 앉도록 계획된 공공조형물과 그늘을 드리우는 수목의 조명은 낮은 강도로 밝기를 만들고 사람이 머무는 데에 편안한 환경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유럽으로부터 밤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거리로 나서는 경계는 아주 밝게 계획되어 말 그대로 안전한 도시에 도착하였다는 인상과 함께 환영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했다.

오래전 이 지역의 이미지는 여느 대도시의 역처럼 낡은 역 건물과 오갈 데 없는 사람들로 도시의 인상적인 첫 이미지는 커녕 낙후된 시설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지역이었으나 재생 프로젝트를 통하여 밤에도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곳, 밤에 도착하면 더욱 인상적인 역이 되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이 역을 통하여 유럽으로 오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의 발전까지 유도하는 앵커가 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느 회의에서 경관, 야간경관에 대한 정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특히 야간경관에 대해 불만 가득한 질문을 이었다. “가로등이면 되지 뭐 멋을 부린다고 (아파트 옥탑에) 조명을 켜두어 밤하늘도 안보일 지경이 되게 하느냐”는 볼멘 소리에 관리하기만 힘들고 예산만 들어간다는 지적이었다. 경관법이 생긴 지 어언 10년이 되어가는 데 아직도 거리의 가로등은 야간경관이 아니고 알록달록한 것들만 야간경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해가 진 뒤 모든 인공조명요소에 의해 드러나는 모든 도시의 경관이 야간경관이라서 도로의 가로등, 골목길의 외등, 아파트나 백화점의 조명, 공원이나 광장의 조명 등등 모든 것들이 도시의 야간경관을 구성한다.

그 다음 질문, 돈 쓰면서 왜 하는데? 에 대한 대답은 KING'S CROSS SQUARE의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야간경관계획이 잘 된 지역은 우선적으로 안전한 환경이 되기 때문에 일상의 삶의 질이 좋아져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다. 그 다음 단계로 상징적인 - 일반적으로 아름다움과 상징적임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하다 - 장소 혹은 건축물은 그 지역을 방문하게 하고 기억하게 한다.

내가 사는 도시가, 지역이 안전하고 상징적인 ‘무엇’인가가 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장점, 그 가격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