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춤+人 인터뷰 ①] 안애순 서울예대 교수 “이 시대 창작은 다 컨템포러리, 실험적이고 대중적인 작품 고민”
[기획특집 춤+人 인터뷰 ①] 안애순 서울예대 교수 “이 시대 창작은 다 컨템포러리, 실험적이고 대중적인 작품 고민”
  • 이은영 발행인/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8.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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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창작, 관객 기대 무너뜨리는 것이 오히려 좋은 작품”

안애순 서울예대 교수. 하지만 여전히 안애순이라는 이름 뒤에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라는 말이 따라다녀야 할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들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애썼고 그것을 공연으로, 안무로 보여준 안 교수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아마추어, ‘반은 예술가 반은 관객’인 상황에서 여전히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오히려 그는 젊은이들의 정서와 생각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열린 마음이 무용의 대중화를 더 가깝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생각하는 ‘현대무용의 길’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들어보자.

▲ 안애순 서울예대 교수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년 반 정도 됐다. 외국을 갈까도 했다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는데 젊은 학생들과 함께 있다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아직 학생들이 어리고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다보니 예술에 대한 큰 강박관념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정서나 생각을 거꾸로 배우게 되니 재미가 있다. 젊은 예술, 젊은 사람의 모습을 많이 보고 있다.

무용을 오래한 학생들은 안무적인 부분보다 기술에 집중하고 수동적으로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교육을 오래받지 않아서 아직 설레는 마음이 남아있다. 반은 예술가. 반은 관객같은 생소한 느낌이 있다. 오래 머물면 자기에 갇히게 되는데 이런 모습이 나오지 않으니 기대가 된다.  

다른 걸 가르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한다. 학생들이 아직 자기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로 쉽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내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것을 무용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풀어낼 지, 생각하는 태도와 풀어내는 방식 그 두 가지만을 바라보고 있다.

예술대학이 중요한 것 같다. 분명히 영향이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자기들의 생각과 표현을 서로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서 자기 형식에 맞추다보면 결국 장르화가 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실제로 작업을 할 수 있다. 인간적이고 미래적인, 실험적인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엇이 나올 지 모르는 재미와 기대감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우리 현대무용이 대중에게 많이 다가간 것 같다.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컨템포러리라는 것이 스토리나 문제들을 담는 것인데 예술가가 지금 이시간 현재를 잘 들여다보고 있느냐, 예술가의 시각에서 표현하는 이야기를 관객들이 자기들의 삶, 자기들의 감각에 맞다고 동의해주는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것이 예술이다’ ,앞서가는 최첨단의 실험정신을 예술이라 하는데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대중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예술적인 것이 대중적인 것과 다른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강의할 때 ‘왜 현대 공연은 프로그래밍을 안하냐’라고 하는데 어렵단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한다면 당연히 어려워하고 관객도 어려워한다고 보는 것이다. 관객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다양한 정보의 시대이지 않나.  일단은 관객이 경험하게 하고 그 선택을 놓고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절대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재임 시절 불교를 통한 한국적 색채를 현대무용에 도입하고 디지털 세계에 대한 관심 환기도 시켰고, 신진 무용가들을 대거 발탁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너무 실험적인 작품만 많이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었는데

‘너무 대중적이다. 국립이라는 이름을 떼라’는 말까지 들은 적 있다(웃음). 과연 국립이라는 이름이 누구의 기호를 맞추고 어떤 평가를 받아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당연히 실험적이고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관객들이 부담없이 느끼게 하기 위해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온 것 같다. 

현대무용이란 장르가 한국에서 역사가 짧지만 그럼에도 자체적으로 역사를 만들고 지금 이순간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역사에 남는다. 생존 가능한 작가들이 해야 하고 국립은 그런 이들을 이름을 걸고 키워내야 한다.

전속 단원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전속무용단은 국립현대무용단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대무용은 안무가에 따라 원하는 기술이 모두 다르다. 매번 오디션을 봐야한다. 예술감독이 ‘올해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가는데 작품에 따라 달라져야한다. 

다른 안무가들을 초대하고 작업하는데 똑같은 사람들이 있으면 작업이 재미가 없어진다. 해석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나와야하는데 그 사람들을 위한 작업이 되면 작품의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무용이 한국무용에서의 창작무용과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다.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따로 있어야하는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지점들이 다 틀리지만 춤이라는 큰 곳에 전통이 있고 새로운 관점으로 일하는 이도 있고 이 시대에 맞는 것을 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 시대의 창작은 다 컨템포러리라고 본다. 힙합이나 비보이도 현대에 오면서 기술이 나온 것이잖나. 유럽에서는 그들이 대표 안무가고 국립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현대무용의 창작은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움직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에 한국무용을 섞건 현대무용을 섞건 비보이를 섞건 나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던댄스가 아닌 컨템포러리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무용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최승희 선생, 송범 선생 등 많은 분들에게 내려왔지만 신무용으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그 시대의 컨템포러리였다. 흘러내려온 메소드로 여러 안무가가 만들었는데 이것을 더 많이 해체시키고 다양화시킬 것이냐, 어떤 전통으로 보고 원형을 찾아가는 것이냐 여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다 사랑하는데(웃음). 모든 작품이 다 의미가 있으니까. <이미아직>은 평생 하려고 했던 주제와 형식이 있었던 것 같다. <격정>의 이미지도 기억에 남는다. 

▲ 안애순 안무 <불쌍>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프랑스 국립 샤오이 극장 초청으로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는가?

<이미아직> 공연을 올렸는데, 5분간 비상구까지 다 막아놓고 아예 깜깜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5분이 의외로 긴 시간인데 어둠에 묻히니까 ‘이게 뭐냐’는 어수선함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샤오이 극장 공연때는 깜깜하니까 서로 낄낄대기도 하고 ‘난 네가 다 보여’라고 소리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은 것들을 끌어내고 같이 복종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됐다.

벨기에서는 한 기획자가 공연을 봤는데 모든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벨기에에서는 관객들이 종종 공연을 보다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벨기에 관객들에게 감동을 받았는데 관객들이 공연 중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웃음). 

지금 무용계에서는 국립무용센터 건립 추진을 위해 공청회가 열렸고, 앞으로도 이에 대해 계속적인 논의가 있을 거로 보인다. 이에 대한 생각은?

지금 무용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이 많은 부분들을 다 아우를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 정말 무용계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더 깊숙하게 건드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제 막 시작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무용센터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하는데 아직 안 보인다. 외국 안무가센터를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사회적인 기능으로 가야할 것 같다.   

현대무용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용을 무엇이라고 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분들이 나와야하고 그들이 이 시대의 레퍼토리를 만들어 관객과 만나야한다. 간혹 남을 위해 립서비스처럼 작품을 만드는 모습이 보이는 데 내 이야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줘야한다. 의외로 관객들이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을 충족시키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안 된다. 관객은 이미 한 발 앞서있다. 오히려 관객들의 기대를 넘어서거나 어그러지게 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대중은 내가 보고싶어 하는 춤을 보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대가 어그러지면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진정한 관객의 기대를 맞추는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시아전당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 외에는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없다. 그동안 너무 격렬히 일해 왔고 작품도 많이 했다(웃음). 지금은 일단 휴지기를 가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