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성남 앙상블 홀에서의 앙상블 공연-‘베토벤과 카알’
[이근수의 무용평론]성남 앙상블 홀에서의 앙상블 공연-‘베토벤과 카알’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9.18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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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앙상블(Ensemble)은 둘 이상의 소리나 악기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다양한 공연요소들과 예술 장르들이 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내는 요즘 추세에 어울리는 공연용어다.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협업으로 제작된 ‘베토벤과 카알(Beethoven and Karl)'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시어터에서 보았다(8.24~25). 400석 정도의 아담한 객석배치, 앙상블이란 극장 이름과 공연 형식이 조화를 이룬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베토벤과 카알’은 음악과 연극, 춤과 영상이 함께 어울리며 베토벤의 말년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한국의 ‘메타댄스프로젝트’(최성옥)와 오스트리아의 ‘바덴 베토벤축제조직위원회’가 공동 제작해서 금년 6월, 바덴 베토벤페스티벌 폐막식에서 초연한 후 한국을 찾았다.

오스트리아인 배우 ‘베르나르트 마이첸(Bernard Majcen)’이 먼저 무대에 등장한다. 장신에 대머리인 그가 베토벤의 50대를 연기한다. 대화라기보다 상황을 설명하듯, 일정한 톤으로 계속되는 대사는 번역된 자막으로 스크린에 표시된다. 스무 살의 오스트리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안토니아 랑케스베르거(Antonia Rankersberger)’가 등장하여 무대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연주한다. 빨간 드레스의 무용수(홍정아)가 다른 쪽에서 등장하고 베토벤의 조카인 카알(정진아)도 등장한다. 홍정아는 카알의 생모이며 베토벤과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이다. 여러 명의 춤꾼으로 무대가 채워진다. 춤은 모두 한국 무용수들의 몫이다.

일찍 유명을 달리한 동생의 유언에 따라 조카의 후견인이 된 베토벤이 겪는 심리적 갈등, 조카의 친모와 겪게 되는 반목, 후원자인 귀족 루돌프와의 관계 등이 대사를 구성한다. 번역의 오류인 듯 내용이 난해하다. 조카에 대한 베토벤의 집착과 조카의 자살시도, 군 입대 등 복잡해진 인간관계에 더하여 청각까지 상실한 베토벤의 고통스러운 삶은 그의 음악 속에 녹아든다.

베토벤이 타계하기 8개월 전(1826)에 작곡된 최후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현악4중주 14번(opus 131)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탄생된다. 공연은 춤으로 표현되는 베토벤 말년의 숨겨진  이야기인 동시에 현악 4중주에 대한 연극적 해석이기도 하다. 대사와 연주, 연기와 춤 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무대를 이끌어가는 연출가 ‘오토 브루사티(Otto Brusatti)’의 다양한 능력이 엿보인다.

김성하(영상디자인)와 신철(촬영)의 흑백영상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80분에 걸친 공연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다. 대형 TV 스크린을 설치한듯한 화면은 광막한 우주공간을 연상케 한다. 먼지 같고 돌과도 같은 물체들이 바람처럼 물처럼 그 공간을 흘러간다. 선가(禪家)적 분위기의 흑백영상이 천재음악가면서도 자신을 옭아매는 인간관계와 병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베토벤의 고뇌를 느끼게 했다.

‘Beethoven & Karl’은 작년에 개봉된 무용영화 ‘Dancing Beethoven’(아란치 아기레 감독, 길 로먼 주연)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모리스 베자르 발레 로잔(Maurice Bejart Ballet,  Lausanne)과 일본 도쿄국립발레단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가 아닌 교향곡 9번(합창)이 소재이고 오스트리아∙한국이 아닌 스위스∙일본의 합작이란 점, 현대무용테크닉이 아닌 정통발레공연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두 작품은 대조적이다. 그러나 발레리나가 아니면서 무용단과 함께 성장한 베자르 딸의 눈을 통해 공연의 배경을 추적하고 제작과정에서 일어나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두 나라 무용수들이 이루어내는 완벽한 발레테크닉의 융합은 환상적이었다. 청각을 잃은 베토벤은 '9번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를 작곡하면서 정작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베자르는 발레를 통해 음악을 보여주고자 했다. 최성옥도 춤을 통해 보이는 음악에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 남녀 무용수들이 어울린 군무는 좋았다. 솔로 춤과 의상을 보강하고 올바른 번역을 통해 대사의 애매함을 해소하는 것이 성공적인 재공연을 위한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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