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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르신 이야기책> 참여작가 낙송재, 김영희, 남인희 “어르신들 그림 통한 유희, 그것이 바로 치료”
“말씀 없던 치매 어르신들 그림 보며 밝아져, 우리도 많이 달라지고 치료돼”
2018년 09월 18일 (화) 12:05:31 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어르신 이야기책> 40종(지성사 출판)은 치매를 걱정하는 어르신들과 어르신들의 책읽기 권리를 위한 책 시리즈다. 15인의 작가의 작품과 화가들의 일러스트로 구성된 이 책은 어르신들의 두뇌활동 촉진과 함께 독서치료와 미술치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어르신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어르신 가족이나 돌봄 관계자들이 어르신들께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권하거나 읽어드리는 상황에서 어르신만을 위한 책을 고민한 것이 이 결과로 이어졌다.

이 책의 일러스트는 낙송재(본명 임진수), 남인희, 김영희 작가가 참여했다. “소설을 잘 표현하실 분들을 선정했다” 경현주 지성사 주간이 전한 말이다. 수묵화로, 판화로, 풍경화로 이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넘어 어르신들의 추억을 건드리며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르신들을 위한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이 작업은 이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미술치료’는 어르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치매로 고생하던 어르신들에게 옛날의 미소를 찾게 해주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전한 <어르신 이야기책> 작업 과정은 작가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 (왼쪽부터) 낙송재, 남인희, 김영희 작가

어떻게 이번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는지 

낙송재(이하 낙) : 수묵화를 전공했다. 산수화나 인물화, 풍경, 정물 작업해왔는데 일러스트하는 후배들과 친했지만 일러스트 쪽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다. 15~20년 전쯤에 <화가가 그린 동화책>에 참여했는데 나는 그냥 삽화라고 생각하고 재미로 하자는 생각으로 했다.

화가는 그림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다 끝내는데 일러스트는 열 몇 장을 스토리에 따라 그려야하니 이게 참 힘든 작업이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은 한번에 바로 통과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한 번에 ‘바로 채색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 때 일러스트가 나에게 맞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본명을 썼는데 양쪽 분야에서 이름이 나와 자꾸 헷갈린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림책에서는 작업실 이름인 ‘낙송재’로 한 거다, 즐거울 낙에 베짱이 송, 즐거운 배짱이가 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후에 수묵 기법으로 전래동화나 역사책의 일러스트를 했다. 이순신 장군만 네댓번을 그렸지(웃음). 우리 어렸을 때는 디즈니 그림이 많았는데 우리 정서에 맞지 않잖나. 아이들이 우리 그림에 익숙해져야한다고 본다. DNA가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아마 어렸을 때 수묵 일러스트가 있었다면 더 일찍 이 작업을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겸업을 하게 됐다.

남인희(이하 남): 대학교에서 섬유예술과 조형예술 전공하고 봉사활동 하면서 북한 아이들을 돕게 됐다. 이것이 치료와 연결됐으면 하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해서 미술치료 공부하고 요양원에서 1년간 어르신들과 있었데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고 어르신들이 기억을 통한 미술 활동을 하면서 좋아지는 것을 많이 봤다. 우연히 이 작업을 알게 돼서 하게 됐다.   

김영희(이하 김): 판화를 전공했고 반추상 작업을 주로 했다. 선배님 권유로 이 일을 하게 됐는데 반추상은 어르신들에게는 맞지 않잖나. 그림을 무의식의 언어라고 하는데 내가 반복하고 있는 패턴, 무의식적인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술치료 공부를 하게 됐다.

1년여간 치매 어르신과 지냈고 논문도 관련 내용으로 쓰려했는데 마침 일을 제안받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동질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동안 하지 않았던 리얼리티로 작업을 했다.

치매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 실제로 경험한 것이 너무 달랐다. 정말 공포스러웠다. 보이는 것이 다 다르다. 나는 3차원에 살고 있는데 치매 어르신들의 세계는 3차원이 없다. 4차원이다. 모든 지각들이 우리와 다르다. 체험하신 분들마다 우시는 분도 있고 토하시는 분도 있다. 의자 밑이 벼랑 끝이 되거나 간호사가 공중에 떠서 창을 들고 공격하고 오거나, 환청이 들리거나 그게 어르신들이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몰랐다. 

내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니라 확실한 리얼리티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분들을 3차원의 세계로 붙잡고 있어야 했다. 색감은 최대한 밝게, 형태는 가장 안정적으로, 어르신들께 여쭤보며 리얼리티로 갔다.

작가들마다 그림을 그리는 관점이 서로 달랐을 것 같은데

낙:치매 어르신을 직접 뵌 적은 없었다. 다만 나를 알아보시던 후배 어머님이 어느날 갑자기 나를 못알아보셨다.  간접 체험을 한 것인데 당시 후배들이 한 말이 엄마가 아기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하게 아기들을 위한 작품이라면 아이가 된 할머니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같은 선상으로 봤다. 그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 봤음직한 시대, 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리얼리티를 맞추기로 했다.

그분들의 어린 시절 추억에는 내 추억이 버무러져 있다. 젊은 작가들은 이런 추억이 없기에 리얼리티가 살지 않는다. 흙을 밟았던 정서가 젊은 작가들에게는 없기에 그림을 가르치는 것보다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노인들에게 어린 시절 기억을 충분히 표현해주면 그분들이 알건 모르건 친근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릴 때 봤던 거야’라면서 좋아할 것이다. 기하학적인 그림보다 어린 시절에 본 듯한 풍경,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모든 병은 존재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 존재를 찾아주는 것이 치유다.

남: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에 공감이 많이 된다. 예전 시대를 사신 분들은 그것이 와닿을 텐데 난 그게 어려운 나이다(웃음). 시대상을 전혀 모르는 부분도 있어 조율을 하고 사실적인 부분은 옛날 영화나 뉴스, 자료를 검색했다.

한국인은 다 비슷한 감정선상이 있다고 본다. 누구나 겪었던 일이 있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엄마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작업했기에 쉬웠다. 또 사진찍는 것을 좋아해서 사진 찍었던 풍경들을 리얼리티를 살려 표현하려했고 시대상을 나타내는 소품은 자료를 검색해서 표현했다. 어르신들의 기억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김: 화가들도 백색공포가 있다. 하얀 종이 주고 그리라고 하면 공포를 느끼는 것 말이다.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좋았던 거 기억해보세요’하면 ‘몰라 안해’하며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뭔가 끌어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옛날 물건들, 어르신들이 썼던 물건들을 도구로 해서 회상을 할 수 있게 했다.

옛날 형태의 물건을 찾아서 보여주면 어르신들 반응이 달라진다. 서로 자신들이 말하려고 일어서신다. 옛날 물건을 보신 분들이 인지가 활성화되는구나라는 것을 느껴서 옛날 물건 회상에 중점을 두고 했다.

   
▲ 낙송재 <필묵장수>
   
▲ 김영희 <어머니의 베틀노래>

‘미술’을 하는 것과 ‘미술치료’를 하는 것의 차이점이 있을텐데

김: 내 작업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이 작업은 어르신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먼저해야한다. 미술치료는 언어치료와 달리 거부감이 없다. 무의식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뭔지도 모르고 편하게 그려도 되기에 무의식이 드러나고 치료자가 손을 잡고 여행을 하듯이 떠나면서 내가 어디에 왔다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미술치료다.

거기에 반응을 해주고 그 속에서 나오는 그림은 작가로서 그리는 그림과 다르다. 미술이 내가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미술치료는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남: 정체성이 달라진다. 미술은 작가의 개념이 강했지만 치료는 치료사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다.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했는데 작가로서의 치료사가 포함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미술치료는 미술을 도구로 이용하는 치료가 중심이다. 미술 매개로 치료할 때 나오는 하나의 작품이 미술치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전시하고 나의 이야기 공유하는 것은 같지만 치료의 매개체로 쓰는 것이 미술과 미술치료의 다른 점이다.

낙: 치료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그림 자체가 원래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꼭 치매 어르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마음의 안정을 얻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가진 영역이라고 본다. 내 그림을 통해 좋은 감정을 느끼게 만들려한다.

그림에 따라 나오는 반응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누군가가 그림을 보고 즐거워하고 통쾌함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치료다. 어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본문에 충실하면서 ‘이걸 보시면 어르신들이 좋아할 것이다’ 그 생각만 갖고 했다. 

한 그림 한 그림 정성을 다해 그린 것이 보이는데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지

낙: 난 그렇게 특별히 뭘 한 것이 없다. 만약에 이 책이 한 권 분량이라면 이야기에 따라 강약을 주고 어느 정도 기교를 썼겠지만 이 책은 여러 권이잖나. 책마다 스토리마다 충실했을 뿐 어떤 것에 애착을 가지고 그린 것은 없는 것 같다. 

김: 작업하며 내가 치료를 받았다. 10여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그 시간까지도 어머니의 죽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색했다. 아직도 어머니를 못 보낸 것이다. 

그러다 <어머니의 베틀노래> 책을 받았는데 작업하면서 감정이 많이 정체되고 울기도 했다. 힘들었다. 한 작품 가지고 네댓번을 다시 하고 그래서 가장 오래 걸렸다. 그렇게 다 끝냈는데 어머니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가슴 속에 남은 우리 어머니와 또 다른 그 시대의 어머니가 겪은 무엇인가가 있었구나를 알게 되어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메아리’와의 만남>이라는 작품인데 동물 이야기가 나오는 양귀자 작가의 수필이다. 나는 동물을 많이 키우는데 키우던 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책에서는 강아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강아지 그림을 그리고 보니 누군가와 너무 많이 닮았고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그 고양이의 얼굴이 강아지 그림에 표현되더라. 눈물이 막 흘렀고 감정이 정화되면서 그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남: 이해하려고, 보여주려고 하는 그림은 아무리 고쳐도 힘든데 직접 감정을 느낀 것들을 표현할 때 더 손이 가는 경향이 있다. 마을 풍경을 보면 직접 경험한 것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더 마음이 가는 것이 있었다. 

처음 시작한 그림이 춘천가는 기차를 그린 것인데 처음 시작해서인지 많이 손이 갔고 <박치기사>에서 옛날 결혼식 그릴 때는 부모님 결혼식 사진 보여달라고 해서 그것을 참조했다.

<유황불>의 성묘는 아버지 성묘한 것을 바탕으로 그렸고 <목단꽃>의 어르신들 그림은 다 내가 아는 분들인 것 같고 어릴 때 본 분들 같았고 어르신들 치료하며 내가 치료받은 경험이 떠올라서 재미있었다. 

낙: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아마 <필묵장수> 그림처럼 살지 않았을까?(웃음) 그림 그려 주면서 먹고 자고.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았던 이야기를 들으면 뭘해도 다 소설같다. 부모님들은 그 자체가 동화책이고 소설책인 것 같다. 시대가 험난했는데 가만히 계신 분들이 아니지 않나. 나는 지금의 현실도 따라잡지 못하는데 엄청난 난리까지 겪으시면서 어떻게 사셨나싶다(웃음). 

   
▲ 남인희 <목단꽃 이불 밑에 숨은 사연>

그림이 나오고 책이 나오고 나서 어르신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김: 4주 정도 어르신과 작업했는데 판화를 통한 독서치료를 했다. 판화를 고집했던 이유는 어르신들은 생산성이 떨어지시는 편이지만 판화는 무한생산이 가능해 어르신들이 할 수 있고 그림을 같이 공유하고 나누면서 그림에 대한 감정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다. 

어르신들이 내게 던져주신 것이 많았다. 그림 속 열매를 보고 ‘이 열매 먹었는데 시큼했어’라고 하고 농사짓는 법도 알려주고 했다. 

1년간 한 마디도 안하시던 중증 치매 어르신이 있었는데 책을 보시고 갑자기 말문이 터지셔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하신 것을 보고 다들 놀란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란다. 글은 감정없이 읽으시면서 그림만 보며 뭐라고 하시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교육 시간이 늘어나고 주무시는 시간에도 안 주무시고 나에게 ‘네가 이렇게 그렸으니 너는 알잖아. 그러니까 이야기해줄게’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한다.

남: 자기 이야기하는게 바쁘다는 건 욕구가 일어난다는건데 어르신은 무기력할 때 그런 욕구조차 없다. 이런 그림이 매개되어 이야기하고자하는 의욕이 생기셨다는 것이 좋다. 고향을 기억못하시는 분들이 어느날 지도를 보고 내 고향이 생각났다고 말하는 모습도 본다. 

낙: 반응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림만 그리고 처음 나온거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그렇다. 그림이 마치 우리 동네 같다. 책에 나온 누군가가 나 같다, 누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다. 그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 끌어냈다는 것이 성공이고 보람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낙: 너무 오래 이 일을 해와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하루하루 충실할 뿐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성격이다. 사이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분들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난 일희일비하는 성격이 아니라 담담하다. 다만 좋게 봐주시길 바라는 기대감은 있다. 

김: 작업 전에는 반추상으로 내 이야기만 만들고 ‘나는 잘났다’ 식의 나르시즘이 많았다. 이작업을 하며 내 목소리가 줄어들고 귀를 기울이는 작업이 더 커진 것 같다. 

최근 작품들을 보면 색이 많이 빠지고 무채색 계열로 간다. 빛을 많이 살려서 했는데 예전에는 빛을 많이 받으면 색이 다 드러난다고 했는데 이 작업하니 빛을 받으면 어느 것도 없는 빛 가운데 투명한 상태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허한 것이라 없는 것이 아니라 가득해서 없는 것이다. 작업이 좀 더 편안해졌다. 

남: 그림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려 애썼고  대상이 어르신이기에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르신 치료 논문을 읽어보면 2040년 고령인구가 40%가 넘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십여 년뒤면 나도 노인이다(웃음). 조금 있으면 노인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 책에 나를 투사시키고 있다. 

지금 이 작업이 현재의 어르신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작업이고 이것을 발단으로 많이 장려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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