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人生旅路, 우리의 정처 없는 인생에 대하여, 믹스라이스②
[특별기획]人生旅路, 우리의 정처 없는 인생에 대하여, 믹스라이스②
  • 박주원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0.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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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모·조지은 작가의 공동작업,‘이주, 공동체, 개발, 개개인에게 축적된 다양한 기억과 감각’ 통한 인생 모습 담담히 담아내

[①편에 이어서]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45

앞에서 언급했던 작품 이외에도, 믹스라이스가 사람들의 기억에 집중하는 점은 여러 작품에서 발견된다. 조지은 작가는 인터뷰에서 2010년 이집트 ‘타운하우스 갤러리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두 달 반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을 때 이주민들과 작업하면서 “이주민 분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달라고 하니 어떤 분이 ‘촉촉함’을 말해주었다.”라고 언급하였다.

내가 모르는 곳, 나에게 미지의 것은 지리, 기후, 생활, 문화와 같은 더욱더 추상적인 주변을 맴도는 이야기들은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답이 아니라, ‘촉촉함’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것은 대상이 아닌 상실된 것, 부재한 것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은 서로의 상실을 들춰내는, 서로 미지인 상태에서 기억을 감성만으로 나누는 과정이다. 우리는 ‘더듬다’는 어설픈 언어의 대화, 어설픈 촉각, 어설픈 이해를 생각한다. -믹스라이스, 2010. 128)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 kg짜리 한 봉지, 액자, 소금 1 kg 한 봉지, 감자 한 봉지(500 Men, Games and Free Gifts: 1 Pack of Q-tips, 1 Pack of Napkins, 1 Pen, 1 kg Sack of Sugar, 1 kg Sack of Salt, 1 Frame and 1 Pack of Potatoes)>, 2018, 작가 제공.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믹스라이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며 이주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담담히 지켜본다. 이러한 지켜봄의 행위들은 <남기고 떠날 수 없었던 어떤 것(Something That I can’t Leave Behind)>(2010), <믹스푸릇(mixfruit)>(2016- ) 등의 작업으로 나타난다.

<남기고 떠날 수 없었던 어떤 것>은 2010년, 이집트에서 만난 이주민들과의 작업으로, 그들에게 ‘남기고 떠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긴 후, 기록을 바탕으로 믹스라이스가 재구성하여 만든 이미지들이다. 또한 <믹스푸릇(mixfruit)>은 이주민들이 기억 속에 남은 고향의 과일들을 점토로 표현해 낸 것이다. 이주로 인해 개인의 기억 속에만 남겨져 꺼낼 수 없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본래 그들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믹스라이스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난다. 이주민들은 자신의 기억을 조형화(造形化)하며 고향의 맛과 시간, 공간, 사람들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믹스라이스는 이들이 그들의 입으로 말해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더듬으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지켜본다.

조지은: <믹스푸릇(mixfruit)> 작업에 참여한 분들 난민신청자의 신분인 사람들은 사진으로 얼굴을 밝히기를 꺼린다. 우리는 워크숍 말미에 믹스푸릇을 사진에 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손을 촬영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의 상황과 배경을 묻는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다. 점토로 각자의 과일을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평소 다른 공간에서 만나면 난민신청자들은 굉장히 소극적인 반면 자신의 커뮤니티 공간에서의 만남은 매우 활기찬 분위기이다. 버밍엄에서의 믹스푸릇 워크숍은 매우 진지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얼굴은 없지만 마음이 담긴 그들의 점토과일과 손동작들은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을 말하고 있음을 느낀다.

▲<믹스푸릇(mixfruits)>, 2016-2018, 점토, 레진, 씨앗들, 사진, 텍스트, 워크숍, 장소: 아른헴(네델란드), 경상남도 김해(한국), 버밍엄(영국), 작가 제공.
▲<믹스푸릇(mixfruits)>, 2016-2018, 점토, 레진, 씨앗들, 사진, 텍스트, 워크숍, 장소: 아른헴(네델란드), 경상남도 김해(한국), 버밍엄(영국), 작가 제공.

개발과 생명체의 이동, 그리고 공동체에 대하여    
믹스라이스는 그 범위를 더욱 넓혀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작은 이주들도 작품에 담아낸다. 즉 사람들을 포함한 생명체가 원래 존재하던 장소가 변화되는 이동(移動)이 진행될 때 생겨나는 이야기들과 생겨나고 없어지는 커뮤니티에도 주목한 것이다. 크게 보면 나라와 나라를 옮겨가는 것을 이주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생명체의 환경이 변하는 것도 작은 이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믹스라이스는 자기만의 이주의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어 작품으로 담아낸다고 볼 수 있다.

▲<덩굴 연대기(The Vine Chronicle)> 2016 프로젝트 중에서 사진 일부, 조경업자에게 훼손된 곶자왈에서 불법으로 옮겨진 팽나무 62그루 중 일부, 안덕면 동광리 산 91-4, 2016, 작가 제공.

조지은: 개발의 풍경은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해방 전후 세대들이 대부분 지금까지 개발의 풍경을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이야기이든 모두 개발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의 이주에 관한 작업들도 우리들의 ‘정착’에 관한 내용이었다. 식물의 이주 역시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 터널과 발전소, 도로가 생기면서 마을이 해체되고 커뮤니티는 사라진다.

 한국에서 국민들의 이동은 거의 ‘개발’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살던 거처를 옮기는 주요한 이유가 전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국토의 개발과 연결되는 것이다. 믹스라이스는 이처럼 지속적으로 이주민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사실 개발을 하면서 사람들이 정착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아파트 가격과 부동산 가격에 따라 움직이며 사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어떤 것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들 정처 없이 떠돌이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포착해 온 것이다.9)

정처 없는 인생이 되도록 우리에게 결정을 종용하는 것이 결국 부동산 개발과 같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이라는 것을 믹스라이스는 작품을 통해 말해준다. 이는 그들이 관심을 가져온 식물에 대한 이야기로 나타난다. 믹스라이스는 개발로 인해 이주가 결정되었거나, 원래 뿌리를 내리던 곳이 아닌 곳에 이식된 나무들을 추적하여 작품에 담아 왔다. <덩굴 연대기(The Vine Chronicle)>(2016)는 성산읍 난산리 마을, 고덕동 주공아파트 단지, 신도시 개발 현장, 개포동 주공아파트, 수색동 등 개발로 인해 아주 오래전부터 동네의 수호신 혹은 중요한 역할을 하던 나무들이 옮겨지고 버려진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

아주 오랫동안 한 공간을 지켜온 나무들은 개발로 인해 그들이 존재했던 시공간의 기억을 단절한 채 새로운 곳에 가서 그들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식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믹스라이스는 식물을 통한 작업을 통해 개발을 통해 근원을 찾지 못하고 토막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조각난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지켜보며, 근원적인 커뮤니티가 많이 없어진 세계에서 흐르고 흘러 만들어진 새로운 공동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덩굴 연대기(The Vine Chronicle)> 2016 프로젝트 중에서 사진 일부, 나무가 파내어진 자리, 내성천 근처, 2016, 작가 제공.

조지은: 이런 도시에서 사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여러 작가들과 ‘탑골만화방’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공간은 예술보다는 삶에 가까운 영역이다. 먹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논다. 딱딱한 형식들을 버리고 만나는 공간이다. 이렇게 괴산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 여러 지역의 나무들을 알게 되고 자주 보게 되면서 ‘식물의 이주’에 관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마석에서의 공동체, 지역의 공동체 모두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다. 눈에 보이는 어떤 이익 없이 ‘모인다’, ‘만난다’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서로 고립되고 고립됨을 분노로 표현하고 다시 고립되는 구조에 놓여 있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믹스라이스는  공동체가 어떤 의미인지를 늘 생각한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그 시간이 축적되고 전해지는 것,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연결’이란 것은 관계를 뜻하지만, 시간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간 안에는 많은 것이 포함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쭉 이어져 있는 시간이라기보다 간헐적으로 끊어지기도 하고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시간이다. 믹스라이스에게 공동체란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가까울 것이다.10)

이처럼 믹스라이스는 우리가 가진 각자의 삶과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모인 연약한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사소하고도 큰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며 공동체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정처 없이 흐르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누군가와 함께 한 시간들은 차곡차곡 축적되어 추억이 된다. 각자가 연약하기에 우리의 공동체는 약하지만,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다시 말해 믹스라이스의 이야기는 사람을 향해 있다. 멀리 밀려나간 밀물이 다시 육지 쪽으로 돌아올 때 조개껍데기, 미역 등과 함께 돌아오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는 옆 사람, 다른 나라의 누군가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믹스라이스가 포착한 삶의 모습은 사람들이 가진 이러한 본질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에 여운이 남는다. 믹스라이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들이 공감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정처 없이 흐르는 우리 삶의 다양한 장면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믹스라이스의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

[각주]
8)믹스라이스, 『믹스라이스(mixrice) 2002-2016 포트폴리오』, p.198.
9)2018년 7월 24일 작가 인터뷰
10)2018년 8월 26일 작가와의 이메일 인터뷰

글·박주원(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2017년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수원 대안공간 눈 <취향은 존재의 집> 공동 전시에서 '글로 배우는 연애' 전시를 기획했다.

*이 지면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평가 지원 프로그램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박주원 작가가 각각 선정돼 4회에 걸쳐 4명의 작가론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