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올해의 아르코 파트너 Best & First의 첫 스타트 끊은 작품 ‘돼지우리’
[공연리뷰] 올해의 아르코 파트너 Best & First의 첫 스타트 끊은 작품 ‘돼지우리’
  • 김은균 객원기자
  • 승인 2018.10.0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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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책 연출. 돼지우리 안에 갇힌 탈영병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표현

올해의 아르코 파트너 Best & First의 첫 작품은 남아공의 극작가인 아돌 후가드의 작품인 '돼지우리'가 끊었다. 아돌 후가드 (Athol Fugard, 1932~)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작가이자 배우며 연출가다.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 인류학 등을 공부한 뒤 남아공의 방송국 기자로 근무하면서 영국, 미국, 유럽 지역에서 연극활동을 하다가 포트엘리자베스 극단이라는 연극 집단을 이끌게 된다.

▲ 연극 돼지우리 공연모습. (사진=아르코)

그는 '어느 부도덕한 행위로 체포된 여인의 증언', '아일랜드'로 널리 알려졌고, 토니상, 뉴욕 비평가 협회상, 오비상, Outer Critics Circle Award, Lucille Lortel Awards, Drama Desk Awards, Evening Standard Award 등을 수상했으며, 그의 유일한 소설작품인 '초치(Tsotsi)'는 2005년 개빈 후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은 '핏줄'을 비롯하여 '아일랜드', '어느 부도덕한 행위로 체포된 여인의 증언', '오레스테스','메카로 가는 길',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 등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의 무대는 돼지축사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전면에는 비스듬히 축사가 지어져 있으며 지붕은 배경을 향해 기울어져 있고 그 배경아래 낮은 담으로 연결된 우리가 있고 그 안에서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축사입구에서부터 통나무 난간이 달린 비좁은 통로가 있고, 축사 맞은편에 나무판자를 길게 깔아 거기에서 앉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놓게 해놓았다. 축사 외벽은 촘촘하게 세운 나무판자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나무판자 사이로 강렬한 조명이 시시각각 우리 안을 비추고 있다. 연극은 도입에 돼지축사 안에서 몇 십 년을 숨어 지낸 파벨의 독백에서 시작된다.

▲연극 돼지우리 공연모습. (사진=아르코)

제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을 탈출해 41년간 돼지우리에서 살았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인간의 심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사와 시대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중에 군에서 탈영한 파벨은 집 안의 축축하고 음산한 돼지우리에 숨어살고 있다. 아내 프라스코비아는 탈영한 남편을 숨긴 채 전몰군인의 미망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전승기념일날 전몰장병 추모비 제막식이 열리게 되는데 파벨은 이날이야말로 돼지우리에서 나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연설문을 낭독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프라스코비아는 자신이 입고 있는 파벨의 군복이 너무 낡아 다림질을 할 수 없다며 기념식 참석을 반대한다. 파벨이 이미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으로 훈장까지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대로 세상에 자신이 살아있었음을 알리면 자신들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깥공기가 그리운 파벨은 여장을 하고 아내와 함께 새벽 거리로 나온다. 바람, 땅냄새, 새벽하늘의 별, 귀뚜라미 소리마저 두 사람은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나서 파벨의 심경에는 변화가 온다.

▲연극 돼지우리를 연출한 손진책. (사진=아르코)

변화라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돼지에 비유하고 자신은 인간이라기보다 차라리 돼지와 똑 같이 사는 게 어울리겠다며 입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축사 안 돼지 속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등장해 이 광경을 본다. 아내는 경악하지만 차츰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여태껏 인생이 축사 속 돼지와 다름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돼지우리를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기르던 모든 돼지들을 문을 열어 방사한다. 그리고 결혼식때 입었던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식때 행진을 하듯이 축사 밖의 찬란한 빛을 향해 팔짱을 끼고 힘찬 걸음을 옮기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120분 동안 오직 두 사람의 연기만으로 아르코 대극장무대를 채워나간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돼지우리에 갇힌 탈영병을 등장시켜서 심각하지 않게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이 작품은 ‘돼지우리’라는 거친 무대설정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로 대비시켜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내용을 탄성이 나올 만큼 낭만적으로 표현한 이태섭의 무대미술과 제 2차 대전의 막연한 상황을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로 변환시켜 공감을 이끌어낸 연출감각과 40년이라는 긴 세월의 흐름을 10년이라는 단위로 끊어서 관객에게 이해하기 쉽게 만든 손진책의 연출이 빚어낸 근래에 보기 드문 작품으로 기억되어질 것이다.

'베스트 앤 퍼스트'는 연극 4편과 무용 4편을 9월4일부터 10월7일까지 대학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차례로 공연되고 있으며 참여작품으로 연극은 '돼지우리', 엑스(X), '아라비안나이트', '크리스천스' 등 4편과 무용으로는 '포스트 2000 발레정전', '마크툽'(MAKTUB), '오피움', '구조의 구조' 등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