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징계 0명’, ‘어물쩡 넘어가려는’ 문체부와 도종환
블랙리스트 ‘징계 0명’, ‘어물쩡 넘어가려는’ 문체부와 도종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0.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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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수사의뢰 7명, 2명 주의”, “적폐청산 끝나지 않았다” 믿음 잃어

지난 9월 13일 문화체육관광부는‘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지난 6월 말에 의결한 블랙리스트 책임 규명 관련 131명에 대한 수사의뢰 및 징계 권고와 관련해 문체부 검토대상 68명(수사의뢰 권고 24명, 징계 권고 44명)에 대한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는 예술인들에게 참담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체부는 직원 및 전직 공공기관장 등 7명을 수사의뢰하고 2명을 주의조치했으며 중하위직 실무자 22명은 징계를 내리지 않고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는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0명'인 것이다.

이를 본 예술인들은 문체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며 1인시위를 시작했다. 전직 진상조사위 민간위원들은 "블랙리스트 국가 범죄의 본질적인 해결 과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오직 '블랙리스트 국면'이 조속히 마무리되기만을 바라는 문체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성찰없는 관료주의에 분노한다"면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여하는 공개토론회 개최와 진상조사위 백서 발간 중단을 요구했다.

▲ 도종환 문체부 장관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그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지난 2016년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최초로 알리며 주목을 받았다. 장관이 된 후 진상조사위의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며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지금의 결과는 은근슬쩍 '주의'와 '수사의뢰'로 블랙리스트 사태를 끝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진상조사위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공동위원장 맡은 도종환 장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문체부의 이행계획을 좀 더 들여다보자. 문체부는 "진상조사위의 수사의뢰 권고자 24명에 포함된 문체부 소속 12명 중 4명을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다"면서 "진상조사위의 수사의뢰 권고자 중 문화예술단체로부터 이미 고발되어 있는 1명을 포함할 경우 진상조사위의 권고에 따른 문체부 소속 수사의뢰 대상자는 총 5명이며 이중 현재 재외 문화원장으로 재직 중인 관련자 3명은 외교부와의 협의를 거쳐 조기 복귀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문체부 소속이 아니었던 나머지 수사의뢰 권고자 12명(외교부 1명, 공공기관 임직원 11명) 중 전직 공공기관장(영화진흥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명도 이번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되어 문체부 관련 수사의뢰 대상자는 총 7명이며, 이행계획 발표 후 즉시 검찰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또 "징계 권고를 받은 직원 44명 중 과장급 이상 22명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른 기처분(주의 4명), 퇴직(5명), 징계시효 경과 등의 사유(13명)로 징계처분 대상이 아니었지만 기처분자와 퇴직자를 제외한 13명 중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감사원으로부터 처분을 받지 않은 과장급 이상 10명에게‘주의’처분을 하기로 했다. 이로써 수사의뢰 권고자 중 주의조치를 받을 2명을 포함하면 주의조치를 받을 직원은 총 1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던 '주의'는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에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 문체부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즉 이미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인해 징계를 받은 이들은 다시 징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체부의 입장인 것이다. 그렇게 공무원들은 징계를 피해갔다.

진상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던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진상조사위 조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혐의가 있으면 법리상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데 문체부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앞세워 '일사부재리'를 주장하며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밝혔다.

역시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던 송경동 시인은 언론 기고문에서 "'주의'는 일상 서류관리만 잘못해도 내려지는 처분으로 징계가 아니고, 그 외 숫자에 포함된 인원은 박근혜 정부 아래 감사원에서 진행한 감사 결과 처분이며 문체부 소속 공기관들은 '문체부 아님'이라는 딱지를 붙여 자신들의 역할을 부정했다. 행위 당사자 집단 주도하의 '내부 감사와 마사지' 과정을 거쳐 형해와시킨 것 자체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의 사회적, 역사적, 공적 과정에 대한 전면 부정과 왜곡에 다름 아니다"라고 밝혔다.

예술인들의 반발과 '셀프 면책', '징계 0명'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문체부는 "징계 대상이 아닌 이들도 권고에 따라 주의 조치를 내렸으며 이는 감사원 감사에서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직원들이 주의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주의' 조치는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상 감사결과 처분의 하나로 향후 승진, 전보, 상훈 등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징계 0명' 지적에 대해 문체부는 "검찰 수사의뢰는 징계보다 더 엄중한 책임을 묻는 조치이며 하위직 실무자들을 징계하지 않은 것은 감사 결과에서 하위직 실무자에 대해 신분상의 조치를 하지 않은 점과 권한없는 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며 그간 진행된 조사를 통해 블랙리스트의 규모가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한 점을 참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체부의 입장은 '숫자놀음'이라는 비판에 부딪혔고 여기에 하위직 공무원을 단순히 '시킨 대로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제 식구 감싸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종환 장관 취임 당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이전에 집행기관의 수장들과 고위 직급 인사들의 책임을 물어 퇴진시키라'고 직언을 했던 이시영 시인은 이 상황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실형을 살았지만 그 밑에서 블랙리스트를 시행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없고 게다가 산하기관에 대해서는 아무 제재도 내려지지 않았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하지 않느냐"라고 비판했다.

‘장관 직속’ 조사위원회의 한계, 예산 없애자 바로 “문 닫자”

이 상황에서 시간을 지난해 7월, 진상조사위 출범 때로 돌려보자. 공동위원장을 맡은 도종환 장관은 "철저한 조사로 다시는 블랙리스트 같은 일이 문화예술계에 없도록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예술인들은 배제받지 않아야하고 검열받지 않아야한다"면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출범 직전에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도 그는 "진상조사위가 조사를 철저히 하고 관련 법도 만들고 제도도 개선하겠다. 다시 해야 할 사업이 있다면 개선책도 만들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당초 대통령 직속 체제로 가려했지만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문제로 인해 장관 직속으로 운영이 됐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강제 조사권이 없었다. 조사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연말 예산심의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진상조사위의 2018년 예산을 막았다. 그리고 도 장관은 바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진상조사위의 문을 닫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진상조사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막히고 말았다.

지난 6월 도종환 장관은 취임 1주년 회견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에 연루한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 진상조사위가 지난 1년간 밝혀낸 범죄자료를 바탕으로 책임규명 권고안을 조만간 문체부에 보내면 수사의뢰할 사람과 기관별 징계 권고를 나눠서 엄정 조치하겠다"고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을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도 장관이 임명한 윤미경 예술지원센터 대표와 오정희 한국문학관추진위원이 각각 '블랙리스트 연루자'와 '블랙리스트 방조자'임이 드러나면서 임명 반대와 사퇴가 이어졌고 이는 도 장관의 블랙리스트 척결 의지에 큰 흠집으로 남았다.

진상조사위는 6월에 결국 활동을 종료했고 책임자 26명 수사, 104명을 징계하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문체부는 이 권고안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심지어 민간위원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 0명'으로 마무리지었다. 송경동 시인이 말한 '행위 당사자 집단 주도하의 내부 감사와 마사지'가 바로 그것이다. 블랙리스트의 책임이 있는 문체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스스로 지워버린 것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문체부는 제 식구를 감싸는 선에서 블랙리스트 사태를 마무리지으려했다. 그리고 예술인들의 공개토론 제안에 아직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시계 멈췄다” 말 나오게 한 문체부와 도 장관

결국 지난 10일 열린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 문체부와 일부 공무원, 정치권이 '이제 그만 끝내자', '조직의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 등을 언급하며 조직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상조사위 권고 인원의 절반 수준을 징계하는 것으로 그친 것은 문체부 내에 만연된 관료주의와 갑질 문화에서 기인한 측면도 강하나 결국 그 연결 고리를 끊지 못했다"면서 "문체부는 제2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발생할 여지를 남겼으며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시계는 멈췄다"고 지적했다.

이에 도 장관은 "아직 적폐청산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전직 장관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서 민간위원을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기에는 이미 엄청난 실수들이 쌓이고 또 쌓여있다. 

문체부의 이번 이행계획은 블랙리스트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끝내려는 안일함이 낳은 결과다. 예술인들과 국민들이 비판하는 것은 물론 '제 식구 감싸기식 면책'이라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결과가 과연 '제2의 블랙리스트가 없도록 하겠다'는 문체부의 이전 약속을 이행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해결은 실행한 이들에 대한 무거운 처벌도 있어야하지만 어느 정권도, 어느 기관도 블랙리스트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우는데 그 목적이 있다. 블랙리스트 백서 발간도 바로 그 취지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어물쩡 넘어가는' 해결로는 어떤 문제도 풀 수가 없다. 

문화계 한 인사는 “조금 비약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를 상기시켜 봐야 한다” 라며 “그 역사를 청산하지 못해 역사가 왜곡되고, 친일파들이 또 다시 득세해 대대손손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블랙리스트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체부와 도종환 장관의 안일함은 결국 야당 의원으로부터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시계는 멈췄다"라는 말을 듣게 만들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적폐청산을 바로 문체부와 도 장관이 막은 셈이다. 

예술계 분열 일으킬 블랙리스트, 해결은 아직 늦지 않았다

▲ 지난 2016년 열린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다' 기자회견

블랙리스트는 예술인에게 많은 피해를 줬다. 그것은 특정 개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문화계에 큰 생채기를 남기게 했다. 예술인들이 '블랙' '화이트'로 나뉘어 반목하고 서로를 의심하는 현상을 일으킬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 블랙리스트다.

"누가 대본에 빨간 줄을 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달자, 매개자에 연극계 원로와 동료가 연루되어 있다. 존경하는 원로에 대한 배신감, 증오, 내상이 깊어졌다. 우리 안의 깊어진 상처는 어떻게 해쳐나갈지 걱정이다" 김미도 연극평론가의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도종환 장관 취임 이후 문체부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평창동계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입장, 남북 문화교류의 성과에 취해있을 뿐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 예술인복지 등의 문제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기관장을 교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장기 공석인 기관장 인선에도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체 도 장관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나올 만 하다.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감정섞인 목소리’가 아니라 문화계를 정상으로 돌리고 문화인들간의 반목과 의심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이제라도 그 노력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약속의 실천이 필요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