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되려는 자, ‘변화의 큰 그림’을 그려라
[기자의 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되려는 자, ‘변화의 큰 그림’을 그려라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0.2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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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누가 맡느냐가 최근 미술계는 물론 문화계의 관심사다.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임기 만료를 앞둔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과의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여러 인사들의 이름이 후보로 입에 오르내렸고 최근 관장 공개모집 원서접수가 마감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부터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사들 대부분이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주목되고 있다.

사실 나름대로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공로를 남긴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기자는 '이번엔 이 분이 적임자구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누가 되도 뒷말이 무성하겠구나'라는 우려로 가득했다.

한 인사의 경우 '코드인사'로 지적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고 한 인사의 경우 이전 요직을 맡았을 당시 예산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던 전적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인사라는 지적이 나온 인사도 있었다.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었다.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왔을 때 사람들은 파벌로 얼룩진 미술계에 경종을 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를 '미술계의 히딩크'라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두고 '한국미술을 잘 모른다'며 자격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었다.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고 심지어 몇몇 미술인들은 '잃어버린 3년'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리 관장 부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가 일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아시아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아시아 프로젝트'가 활성화됐고 설치미술, 영화 및 영상 등으로 전시 영역을 확대했으며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소장품 전시, 각종 문화행사를 도입해 미술관 관람객 수 증가를 이룬 것은 인정할 만 하다.

'요나스 메카스 회고전', '디어 시네마', '시각마술 변천사', 그리고 곧 열리는 '하룬 파로키 회고전' 등은 영화 매니아들을 미술관 관람객으로 흡수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마리 관장은 지난 6월 전시 수를 줄이는 대신 조사 연구 활동을 기반으로 한 전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전시와의 연계성을 강화한 소장품 수집, 교육, 출판 등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기 운영혁신 계획'을 밝히고 2019년의 라인업을 사실상 미리 발표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 중에는 이 계획을 마리 관장의 '연임 프로젝트'로 보는 이들도 있었고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도를 떠나 마리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든 의문이 있었다. ‘과연 이런 큰 그림을 국내 미술 관계자들이 그릴 수 있을까? 제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바로 그 의문이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를 심드렁하게 바라본 이유인 것 같다. 변해가는 관람객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새로운 관람객들을 맞이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지,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미술관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나갈 지에 대한 큰 그림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 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전시 위주 혹은 특정 작가 위주의 운영 등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미술에 그렇게 조예가 있지도 않은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자랍시고 무조건 폄하만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고 미술관도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후보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람객이 없으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들이 추구하려는 전시도 관람객이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 영화팬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였던 변화, 영상 세대들이 미술관을 찾게 하는 변화, 무엇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국립현대미술관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게 관장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3년이라는 시간은 사실 긴 시간이 아니다. ‘전임 관장 프로젝트 이어가는 데 1년, 미술관 운영 계획 세우는 데 1년, 이제 현 관장 계획대로 진행하려하니 임기 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점점 현실로 다가가는 요즘이다.

그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이루어달라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럴 수록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완전한 실천을 하기 보다는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줘야한다. 그것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조건이다.
 
부디 새로 관장이 되시는 분은 이런 ‘일개 기자’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미술인만을 위한, 특정 파벌만을 위한 미술관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이 사랑하고 국민이 찾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큰 그림을 만들고 실천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돈벌이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립이라는 자존심도 결국 관람객들이 세워줘야 비로소 높아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와 걱정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