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다윈영의 악의 기원’의 박천휘 작곡가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다윈영의 악의 기원’의 박천휘 작곡가에게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18.10.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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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가 있습니다. 안종화감독이 1934년에 만들어 개봉한 클래식영화가 요즘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청춘의 십자로’가 마치 음악영화 또는 뮤지컬영화처럼 다시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김태용(영화감독)과 박천휘(작곡가)이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영화감독 김태용과 배우 조희봉과 만나서, 그 시대의 변사를 이 시대에 맞게 잘 살려냈습니다. 2008년이니 벌써 십년이 됐네요. 

한국의 문화평론가들이 오래전부터 잘 사용한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루즈(loose)하다’란 표현입니다.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만약 스크린만 보고 있자면, 이렇게 루스한 영화도 없을 겁니다.

무성영화가 갖는 느슨함과 헐거움, 조야함과 어설픔을 잊고 볼 수 있게 해준 게 무엇이었을까요? 음악이었습니다. “쿵짝쿵짝,쿵짝쿵짝” 경쾌한 템포 속에서, 그 시절의 경성역에 우리도 내린 듯 했죠. 빠른 템포감으로 시작되는 반복적 리듬에, 서정적인 선율이 합쳐졌을 때, 우리는 1930년대을 살아가는 듯 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작사, 작곡, 편곡은 박천휘였습니다. “둥지를 잃어버린 새. 오갈 때 없던 우리들. 당신을 만난 그 날에 희망도 함께 찾았네.” (주제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박천휘 작사, 박천휘 작곡, 임문희 강필석 노래) 내 귓가에는 지금 ‘청춘의 십자로’의 멜로디가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가요 이 풍진 세상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이렇게  
동사(動詞)를 앞세운 가사는 오래된 영화의 ‘동적(動的) 재생(再生)’에 혁혁한 역할을 했습니다. 

뮤지컬 넘버 하나에, 이렇게 많은 품고 있는 노래가 과연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요? 듣는 순간부터, 가사와 곡조를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보편적인 가사와 낭만적인 선율은 묘하게 얽혀서, 현대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몰입감’과 ‘거리감’을 오고가게 하면서 묘한 매력에 빠지게 했습니다. 당신의 음악이, 거기서 그러했죠. 

그러나 박천휘는 기억 속에 묻어졌죠. 서울예술단의 ‘다윈영의 악의 기원’(10. 4.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을 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한국의 창작뮤지컬에서 일반적으로 듣는 음악의 분위기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음으로 지르려 하지 않고, 감정을 남발하지 않고, ‘절제를 전제로 해서’ 음악을 이끌어가면서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를 저는 정말 너무도 기다려왔습니다. 당신은 ‘정서를 정돈할 줄 아는’ 작곡가입니다. 

“이거 작곡, 편곡 엄청 좋은 거야.” 1막이 끝난 후 로비에서 만난 지인에게, 마치 음악의 가치는 나 혼자만 아는 양 이렇게 크게 떠벌렸죠. 이런 작곡(박천휘)과 편곡(Sam Davis)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해준다면, 우리나라 창작뮤지컬도 세계에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컬넘버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또한 뮤지컬에 끌린 건 Andrew Lloyd Webber(1948년생)와 Frank Wildhorn(1959년생)이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음악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도 두 사람을 능가하는 작곡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스타일을 좀 다르게 하거나, 더 ‘음악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뮤지컬인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아마 많은 음악전공자들이 Stephen Sondheim(1930년생)이 좋아할 겁니다. 우리나라 뮤지컬음악의 다변화를 위해서, 스티븐 손드하임과 그의 스타일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한국창작뮤지컬이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것이 ‘흥분’, 곧 정서적 과잉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예술단의 ‘다원영이 악의 기원’은 모든 면에서 ‘흥분’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대본, 음악은 물론이요, 무대나 의상에서 정도(程度)를 넘어서지 않아서 참 좋았습니다.

이게 참 뮤지컬(음악극)의 정도(正道)일텐데, 요즘 뮤지컬을 보면 뭔가 하나는 꼭 ‘오버’를 해서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대한민국 뮤지컬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 이 작품을 보고 나왔을 때, 작품의 정서가 주는 무거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뮤지컬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준 개운함이 느껴졌습니다. 원작의 내용 자체는 자극적일지는 모르나, 이를 바탕으로 한 극작 (이희준)가 연출 (오경택)이 매우 담백해서 좋았습니다. 

이 작품이 다듬어지길 희망합니다.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특히 그래지길 바랍니다. 메인 멜로디를 보다 더 정확한 음정과 호흡으로 듣길 원합니다. 메인 멜로디에 엉켜져 있는 오케스트라의 대선율을 제대로 만끽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이렇게 음악적인 정확성과 입체감이 살아난다면, 작품속의 캐릭터의 복합심리도 더 잘 살아날 겁니다.

한국의 뮤지컬이 전반적으로 신디사이저 3대에 의존하는 것에서부터 점차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뮤지컬 공연 현장에선 매우 유용하겠지만, 이런 것이 남발될수록 뮤지컬넘버를 재음미하고자 하는 마음이 반갑됩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원했던 뮤지컬 작곡가의 큰 무대의 등장을 환영합니다. 박천휘 또는 박천휘와 같은 작곡가들이 많아져서, 한국뮤지컬이 지금과 같은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이뤄가길 희망합니다. 좋은 원작을 발견하고, 좋은 작곡가를 볼 줄 하는 ‘서울예술단’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 서울예술단 ‘다윈영의 악의 기원’, 2018. 10. 2 ~7.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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