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리뷰1]군산ㆍ 새만금 질곡의 역사는 꺼지지 않는 생명과 도전의 서사
[여행리뷰1]군산ㆍ 새만금 질곡의 역사는 꺼지지 않는 생명과 도전의 서사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8.10.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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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의 시간여행, 부안, 김제 등 수탈의 고통을 동반한 ‘낭만가도’

[서울문화투데이=이은영 기자]청명하고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지난 여름 그 뜨거웠던 열기와 봄부터 이어진 미세먼지의 공포는 언제였던가 싶을만치 푸르디 푸른 하늘은 맑은 공기를 우리의 들숨 속에 넣어 주었다. 서울을 떠나 잠시의 여유를 가져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이 가을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모처럼 타사 기자들과 함께 팸투어를 떠났다. 지난 12일~13일, 1박2일 간 우리나라 지도의 지형을 바꿀 대규모 간척지인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군산과 부안, 김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제침략의 산기록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군산의 골목어귀에서 침통한 울림도 있지만 동시에 근대사 시간여행을 온 듯한 아련함도 느껴진다. 군산을 시작으로 새만금방조제, 이번 여행은 김제와 부안 신석정 생가까지 두루 돌아보는 ‘낭만가도’였다.

▲새만금전시관에서 바라본 새만금 방조제.

일제 수탈의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군산, 이제는 그 ‘자산’이 여행객 불러 모아

침탈로 인한 굴절의 역사를 간직한 군산은 최근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당시 군산을 중심으로 김제, 만경평야 등지의 곡창지대는 침략군에 의해 길이 닦여지고 그 수탈물자는 군산항을 통해 나갔다. 그 시절 이 지역의 물산이 얼마나 풍부했는지, 그로 인해 수탈의 역사가 자행되면서, 그 부산물로 일본인들에 의해 흥성한 도시였는지는, 일제시대의 잔재인 ‘적산가옥’들의 숫자가 쓰라린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기행 장소로 선망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군산근대사거리, 초원사진관, 신흥동 히로쓰 가옥, 동국사 등지를 도보로, 혹은 차로 이동하며 곳곳에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을 되짚어 봤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선생을 기리며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은 1,2,3층으로 나눠져 일제강점기 때의 수탈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준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뼈아픈 일침이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자 정면으로 눈에 들어온다. 선생은 일제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며 세수를 할 때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했다고 한다. 국내외 각지에 흩어져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목숨 바쳐 싸운 독립지사들을 잠시나마 생각한다.
1층 전시장은 군산의 신석기와 철기 시대의 흔적을 통해 근대 이전의 유물과 역사적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양물류역사관에는 국제 무역항인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2층은 옥구농민항쟁기념관과 기증자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3층은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근대생활관이 중심으로 생활관 밖 한쪽 벽면에 ‘1919년 3월1일’을 체험하는 '포토존'이 있다. 한무리의 아이들이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겨누는 총구앞에 가슴을 잡고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한다. 당시의 남녀학생복을 입고 배경을 선택해 그 시절의  학생이 되어보는 자동편집 사진관도 있다.

근대생활관은 당시 번성했던 군산 시내 모습과 수탈의 역사를 축소해 재현해 놓았다. 그 때의 사진을 보면 시가지에 상점들이 빽빽하게 간판을 걸고 있다. 인력거조합, 고무신상점, 조선주조주식회사, 잡화점과 학교까지 모여 있다.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내 전시물.

일제의 쌀 수탈의 장면을 재현한 코너에서 잠시 머뭇거려본다. 쌀을 운반하기 위한 지게를 비롯 콘베어벨트와 여러 공작기기들이 한편에 전시돼 있다. 참 야무지게도 빼앗아 갈 궁리를 했구나 싶다. 그 곳을 돌아 마주친 신발점에 진열된 고무신을 보니 정겹고도 애잔하다. 근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생활 면면을 미니어쳐나 각종 소품으로 꾸려진 상점 내부를 관람하고 건물 뒷쪽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갔다. 일제강점기에 군산과 김제평야 일대의 쌀과 여러 수탈물자들을 실어나르던 바로 그 굴욕의 바다, 군산항이 바로 지척이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3층에서 바라 본 수탈의 아픔을 안고 있는 군산항.

박물관을 나와 본격적인 군산 시내 거리 탐방을 위해 근대사거리로 들어서니 '시간여행'이라 명명한 군산여행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적산가옥이 큰 대로변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그 옛날 ‘신작로’라 불렸을 넓은 골목길(이면도로)을 들어서자 근대의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군산의 명물 '이성당'빵집이 나온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도 다녀간 그 유명한 이성당 빵집은 다음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 들여다 본 빵집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 지근거리에는 낯설지 않은 간판의 '초원사진관'이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초원사진관’은 배우 한석규가 어린시절 자신의 동네에 있던 사진관 이름을 떠올려 지었다 한다. 영화 제작 당시 제작진은 세트 촬영을 하지 않기로 하고 전국 사진관을 찾았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 차고를 발견하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사진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영화촬영 후 초원사진관은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를 해주었다. 이후 군산시가 다시 복원해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개방을 하고 있다. 근대사거리는 그대로 영화세트장이라 할 만하다. 근대의 정취가 남아있어 이리저리 카메라 셔터를 계속해서 누르며 걷게 된다.   

히로쓰 가옥, 초원사진관, 소녀상이 있는 동국사, 근대사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된 신흥동의 히로쓰 가옥을 찾았다. 신흥동은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이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가옥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이후 (구)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이 구입하면서, 오늘날까지 한국제분 소유로 돼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 주택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띠고 있다. 목조 2층 주택으로,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된 신흥동의 히로쓰 가옥.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사찰인 '군산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1947년 불하받아 사찰 기능을 재개했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냈다고 한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 사찰과 달리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드러낸다. 특히 일제의 만행을 참회하는 비석이 일본 불교인들의 손에 의해 세워져 있다.

동국사 사찰내에 눈에 띄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바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인 ‘소녀상’이 다. 지난 2015년 광복70주년 기념으로 8.12에 건립된 11번째 소녀상이다. 사찰에 세워진 소녀상은 동국사가 유일하다. 그 주변에서 관람객들이 아픈 역사를 돌이켜보고 있었다. 동국사는 고은(81) 시인이 젊은 시절 출가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찰 입구는 '고은 시인'의 시로 채워져 있다.

▲군산 동국사 내에 건립된 소녀상. 한 시민이 소녀상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

처음 군산 투어의 즐거움은 무얼까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역사탐방과 볼거리 먹을거리로 그득한 '전라도식당'이 지천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즐거움, 먹거리여행을 느껴본다. 음식은 역시 '전라도'라며 엄지척을 하게 된다.

새만금, 동북아 경제 중심거점으로 서해안 시대를 열다

군산을 떠나 부안 방향으로 우리를 태운 리무진버스가 달린다. 오른쪽으로 바다에 떠있는 섬, 고군산도를 지나면 바다와 바다 사이에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얹혀있다. 바다 위를 달리는 버스에서 새만금 일정이 시작된다. 바다를 메워 새롭게 대지로 거듭나 바다위의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새만금을 보며 그 지난한 역사를 듣는다. 참 어려운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자부심으로 축조된 글로벌 명품 새만금은 지난 1991년 착공 이래 약 19년 8개월 여의 시간을 거쳐 완공됐다. 세계에서 제일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새만금방조제의 역사는 만들어진 과정과 여정자체가 대하드라마이자 서사시다.

새만금홍보관에서 새만금사업이 주는 미래가치산업의 비전, 전북도민의 기대와 바람에 대한 브리핑을 영상으로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반도의 지도를 바꾼 세계 최대 최장의 새만금 간척지와 방조제 등 국토 개조의 역사는 기록물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며 지속성장 가능한 미래유산임에 틀림없겠다. 2023년에는 이 곳에서 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린다. 전세계인들이 ‘새만금 간척지의 대역사’를 직접 목도하고, 엄청난 놀라움과 감동을 가지고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전라북도 새만금 홍보팀 송중근 팀장이 참석자들에게 새만금의 미래를 설명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서 근대사의 자화상과 우리 기술력의 응축, 동전의 양면

 ‘새만금’은 1986경에 지어진 명칭으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합쳐 예로부터 금만평야로 불리어와 이곳에 새로운 땅이 생긴다고 하여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앞에 ‘새’자를 붙여 ‘새만금’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한반도 서남쪽의 군산시, 부안군, 김제시를 중심으로 그 외곽의 고창과 정읍, 전주와 완주,익산까지를 새만금 권역으로 본다.

당초 벼농사를 위해 미래먹거리 장만 차원에서 농경지로 간척할 목적으로 시작된 새만금은 쌀소비가 줄어드는 등 시대가 변함에 따라  2020년까지 세계경제 자유도시이자 동북아 미래형 신산업 및 관광레저의 허브로 개발될 예정이다  얼마전 정부는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발전을 위해 새만금 간척치 전체 면적 409㎢ 중 38.29㎢에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새만금 전체 면적의 10분의 1 정도의 공간을 차지한다고 한다. 새만금을 통해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것은 새만금과 그만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리라.

1991년 11월에 공사가 시작된 새만금방조제는 전북 부안군 대항리에서 군산시 비응도를 잇는 초대형 둑으로 그 길이가 33.9km인 세계 최장 방조제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2010년 방문 때,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한국에는‘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며 경탄했다고 전한다. 네덜란드의 쥬다치방조제(32.5km)보다 1.4km가 길어 2010년 8월에 세계기네스월드레코드에 등재됨에 따라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되었다. 새만금방조제는 폭이 평균 290m(최대535m)이고, 높이는 평균 36m(최대 54m)에 이르는 대형해상구조물로서,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바깥에 드러나는 부분은 평균해수면 위로 11m라고 한다.

부안 마실길 3길 돌아 적벽강, 변산반도 ‘해넘이 채화대’, 붉은노을 가득한 낙조 만나다

▲부안 격포 변산반도의 낙조

새만금을 가슴에  담고 부안군의 마실길을 들어선다.‘성천배수 갑문을 기점으로 토끼꼬리에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부르는 유동마을 방향과 소가 누워서 되새김하는 형국의 소바위를 돌면 새우모양을 한 하섬전망대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 반월마을의 노거수에서 황금노을을 바라보며 중국 송나라 소동파 시인이 즐겨 찾았던 곳과 흡사하다는 적벽강을 맞딱뜨린다.

▲부안 격포의 해넘이 채화대에서 여행객들이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이어지는 작은 당사구에 이르면. 이곳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 바위를 만난 후 계양할미의 수성당, 후박나무 군락지 등을 경유하여 7천만 년 전 퇴적 하성층으로 이루어진 채석강에 이르게 되는 대표적인 코스다. 날씨가 좋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부안 격포의 변산반도 해넘이 채화대의 석양이 넘어가는 바다를 보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었다.

<다음 호에서는 부안과 김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은영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