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봤을 뿐인데 '노동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물끄러미' 봤을 뿐인데 '노동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0.29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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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노동'. 사전에는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생산활동을 가리키는 경제학 및 사회학의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동을 해야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옷을 입을 수 있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다. 노동을 해야 수입이 생기고 수입이 생겨야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노동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노동으로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 평행 II Parallel II 2014 C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27일부터 선보인 전시의 제목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필립 가렐, 요나스 메카스 등 현대 영화사의 중요한 작가들을 재조명하며 영화 매니아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였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에는 영화감독으로 이미 영화 매니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하룬 파로키를 재조명한다.

하룬 파로키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이 열렸을 정도로 영화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는 영화감독이면서 미디어아티스트이자 비평가였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파로키의 영화는 물론 하룬 파로키를 알고 있던 이들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미디어아트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물론 하룬 파로키라는 이름조차도 모르는 이들에게는 파로키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던 하룬 파로키가 최초로 전시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은 1995년 작 <인터페이스>다. 이 작품은 그의 에세이 다큐멘터리들을 2채널 모니터로 재생시켜 두 이미지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렇게 두 대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노동현장의 기록은 곧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 인터페이스 Interface 1995 C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노동과 인간'을 화두로 한 그의 영상들을 만날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미지를 분석하고 게임 속 '아바타'를 보여주는 <평행> 시리즈는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하는 이가 움직이는대로 움직여야하는 아바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살아남으려면 지나가는 사람들과 무조건 부딪혀야하고 총을 무수히 쏴야한다. 완벽한 존재가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가상 현실 속, 게임 속에서만 나오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혹시 알려주려고?

바로 거기에서 이제 <노동의 싱글 숏>을 만난다. 2011년 하룬 파로키와 큐레이터 겸 작가인 안체 에만이 세계 곳곳의 노동현장을 다니며 촬영한 것을 모은 것이다. 이 작품은 2014년 하룬 파로키의 타계로 잠시 중단되지만 이후 2017년부터 안체 에만이 다시 촬영을 시작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픽션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다큐도 아니다. 그냥 세계 16개 도시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을 담았을 뿐이다. 간호사, 환경미화원, 요리사, 구두 수선공, 문신 예술가 등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저마다 하는 일은 다르고 그 목적도 다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평행>의 게임 속 사람들처럼 우리는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임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전통 방식으로 벽돌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인도 노동자들과 첨단기계로 벽돌을 대량생산하는 유럽의 벽돌공장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은 <비교>를 통해서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만난다. 비디오 설치 작품인 이 작품은 뤼미에르 형제의 초창기 영화부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까지 110년간 나온 영화들 중 12편에 나오는 노동자들의 퇴근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1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노동자들의 퇴근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공장을 떠나는 순간 개인으로 흩어지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17개 도시의 다양한 노동자들의 퇴근 장면을 보여준다.

▲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

이 전시는 '보아야' 알 수 있는 전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 아니, 하룬 파로키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좋다. 관람객들은 그가 만든 영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된다. 반복되는 노동을 눈으로 본다는 것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습은 곧 미술관을 나서는 우리가 다음날, 아니 몇 시간 후에 해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노동을 할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결국 우리 모두는 노동자다.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노동자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한다. <노동의 싱글 숏>처럼 일을 하고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표정으로 퇴근하고 <평행>의 게임 속 캐릭터같은 삶을 살아야한다. 그것을 느끼게 만든 이가 바로 하룬 파로키다. 

덧붙여 이 전시는 비디오나 영화, 영상 구분을 떠나 하나의 새로운 '미술 장르'를 보는 경험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작품이 비디오냐, 찍은 영화냐, 영상이냐 이런 구분은 이제 낡은 생각에 불과하다.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과 색깔,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주제를 인식하면 되지 그것을 어떻게 찍었는지, 그래픽인지 영상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비디오도 영화도 영상도 이제 하나의 미술 장르로 인정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작품은 움직이고 있고 알리고 있으며 증거하고 있다.

"파로키의 눈과 손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전한 말이다. 왜 우리가 이 시간에 이 작가의 작품을 봐야하고 이해해야하는지가 하나의 화두가 된 지금, 하룬 파로키 전시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노동을 담은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노동자'인 우리를 깨우고 있다.

미술관을 나서면 노동자가 되어야하는 우리를 생각한다면 파로키의 눈과 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그가 다가올 것이다.

오는 14일부터 하룬 파로키의 영화 48편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필름앤비디오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또 한 번 영화 매니아들의 미술관 나들이가 기다려진다. 전시는 내년 4월 7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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