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 ‘고유권한’ VS ‘관행’ 팽팽히 맞서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 ‘고유권한’ VS ‘관행’ 팽팽히 맞서
  • 이은영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1.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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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까지 가세한 전 감독대행 징계압력, 입맛에 맞는 감독 앉히기?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9월 일부 단원들의 집단시위로 촉발된 국악원 무용단 사태는 그동안 문제를 제기한 단원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 전 예술감독대행 측에서 반격을 시작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욕 들을 만해서 욕 들었다, 출연배제 될 만해서 배제됐다, 관행인 줄 몰랐느냐는 비상식적인 논리 앞에 오랜 기간 침묵하고 방관했다. 입단 20년차 어느 단원의 '조금만 더 빨리 용기를 냈다면 우리 곁을 떠나는 단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처럼, 그동안 부당함에 침묵하고 방관한 우리 역시 공범이었다는 뼈아픈 후회와 반성 끝에 마침내 용기를 냈다"

지난 9월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출범 선언 중 일부다. 지난 8월부터 국립국악원 무용단 일부 단원들은 전(前) 예술감독 권한대행과 일부 보직단원들이 자신들에게 갑질과 외모 및 신체에 대한 인격모독, 악의적 출연배제 등을 자행했다면서 1인시위와 집회.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일무를 추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들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는 보직단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단원들에게 막말을 하고 단원들의 출연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건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문제의 대상이 된 최 전 예술감독 권한대행 측은 "잘못된 것을 지적한 것을 두고 '막말'로 비약해서 주장하고 있으며 오래전 일까지 거론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진행됐고 문체부는 "현재 감사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국립국악원 감사 결과를 묻는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의 질문에 "징계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답하면서 전 예술감독 대행에 대한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김청우 비대위원장은 "문체부에서 징계를 내리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일단 긍정적이지만 국악원에서 어떤 징계를 내릴 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당분간 이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계 일부에서는 “전통을 표현해야 하는 국립 기관의 무용단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신체관리에 대한 지적에 대해, 이를 ‘관행’으로 치부하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 예술감독의 고유권한인 ‘출연자 선정 권한을 일반행정에서 해야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꼬집는 한편. “전 예술감독대행 측에 대한 징계를 강요하는 것은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인 이유가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가”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前) 예술감독 대행 “감독 선임 맞춰 기득권 지키려는 이들이 단원들 불만에 영합”

감사를 앞두고 전 예술감독 대행 측은 "이번 일은 국립국악원 무용단 감독 선임에 맞춰 몇몇 기득권을 가진 선배들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생각과 국립무용단의 무용수로서 갖춰야할 자기 관리와 기량의 소임이 안되는 단원들의 불만이 영합해 발단이 됐다"면서 이번 사태를 '기득권 지키기'와 '하극상'으로 단정했다.

전 예술감독 대행 측은 "권위는 없고 책임과 의무만 있는 감독 대행을 29개월을 했다. 그 사이 기강이 해이해졌고 개인적 불만을 가진 단원들과 자기관리에 문제가 있는 단원들이 영합해 그동안 무용단의 분위기를 흐리고 정당한 업무 지시와 지도를 무시하고 하극상을 일으키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립국악원은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단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공동대책위원회로 외부단체들과 연합해 세력을 키웠고 처음 제기한 원외활동, 자율적 연가 등 불만사항의 프레임을 바꾸어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조직화됐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단원들이 1인시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전 예술감독 대행 측은 공개적인 대응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언론에서 '성희롱' 등의 단어까지 사용하며 의혹을 제기하자 전 예술감독 측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자신들의 의무는 뒤로하고 현재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언어폭력, 인권모독, 직권남용, 갑질, 성희롱 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포장하고 있다”며 “이들의 주장 또한 처음과 달리 점점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술감독 대행 측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예술감독 선임 공모가 시작될 무렵에 단체 행동이 시작된 점을 거론하면서 이 상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예술감독으로 앉히려는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대위는 "반박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청우 비대위원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고 맞지도 않다. 혼란을 주려하는 것 같다. 이런 주장에 일일이 반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프레임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예술감독 고유 권한 인정해야”  “도제식 교육 불만 드디어 터진 것”

사태가 계속되자 전임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들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조속한 시일 내에 정상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 단체의 무용단 단원으로서 갖춰야할 기본 소양 및 자기 관리 차원 조언을 시류에 편승해 비약시키지 말아야한다. 아울러 국공립무용단체 무용수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 및 의무가 망각되지 않아야한다"면서 단원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그간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을 못하고 2년 5개월간 예술감독 대행 체제를 방치함 국립국악원도 책임이 있다. 예술감독 대행 및 보직단원이 직무 이외의 부당한 일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하지만 무용의 특수성을 악용해 국악원 무용단의 정체성 및 근본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한다. 예술감독의 과오가 있다면 시정할 일이지 자칫 시류에 편승해 그들의 예술적 활동이 저해된다면 국가적인 손실이다. 이번 일이 국립국악원 무용단 스스로의 체질 개선과 예술 발전을 위한 생산적 장이 되어야하고 무용계의 건전한 풍토 조성에 기여해야한다"고 밝혔다. 

전임 예술감독들은 국립국악원의 책임을 이야기했지만 그 이전에 단원들이 예술감독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며 국립 단체의 책무를 소홀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립단체의 품위를 생각해서 얼마든지 외모나 춤에 대한 지적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무조건 '갑질', '막말'로 몰아가는 것은 국립단체 단원의 자세가 아니다. 예술감독의 고유 권한을 인정해야한다”라면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이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고 다른 단체와 접촉하며 결국 자신들에게 맞는 인물을 내세우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관계자는 “그 동안 ‘관행’으로 여겨졌고 당연시한 것으로 여겨졌던 ‘도제식 교육’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진 것”이라면서 “교육의 문제점, 소통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을 해야지 무조건 하극상, 파벌로 몰고 가는 것은 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문화계가 여전히 ‘상명하복’을 고수하고, 어른들이 젊은 예술인들을 무시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번 문제는 단순한 갑질이나 폭언, 출연 배제 문제가 아니라 보수적인 전통예술계에 반발하는 것"이라면서 "예술가들이 연대해 예술계의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청우 비대위원장은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고 있지만 워낙 관행이 뿌리박혀 있다보니 아직도 자신들이 당한 일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고 원로들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시기 때문에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풍토의 문화계, 변화를 요구받다

이전 기사에도 언급을 했지만 지금 비대위와 전 예술감독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입장’에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왜 국립 단체의 단원들이 자신들이 비판받을 것을 알면서도 밖으로 나왔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동안 보수적인 풍토가 이어졌던 문화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교육도 필요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조건 따라라’는 시각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이제 그것은 젊은 예술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뿐이다.

결과는 어떻게든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는 일이 없어야한다는 결론은 변함이 없다.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를 앞으로도 중요하게 봐야하는 이유다. 

서울시향 사태 데자뷰?

한편 이번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를 지켜본 한 문화계 인사는 “지난 2014년 11월에 불거진 일부 서울시향 직원들의 박현정 전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서울시향 사태’가 데자뷰 된다”고 말한다.

서울시향 사태는 당시 서울시향 단원들이 박현정 전 대표의 ‘막말’, ‘성추행’ 등을 했다며 언론에 내보내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나갔다. 결국 이 사건은 서울시향 일부 직원들이 정명훈 감독과 불편한 관계였던 박 전 대표를 축출하기 위한 일련의 사건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더구나 이들의 배후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부인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정 감독 부인은 현재 경찰에 입건된 상태로 출국정지가 돼 있지만 사건 이후 프랑스에서 입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또한 경찰은 서울시향 직원들이 박 전 대표를 물러나게 하려고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고 판단, 2016년 3월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시향 직원 곽 모씨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박 전 대표도 무고 혐의로 곽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박 전 대표가 곽 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곽씨의 주장이 허위로 인정된다”며 “곽씨는 박 전 대표에게 5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에 대한 여러 ‘음모론’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단원들은 자신들이 ‘관행’의 희생자라고 외치고 있고, 최 전 감독대행 측은 ‘당연한 의무’를 지적한 것을 ‘갑질’로 몰아가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도종환 장관은 국감에서 최 전 감독대행 측을 징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혹여라도 있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