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작가와 시대적 소명의식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작가와 시대적 소명의식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1.0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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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달 26일 금요일 오후, 예정보다 좀 늦은 시각에 인천아트플랫폼에 도착, 레지던시 작가들의 연례발표 전시를 보았다. 선정위원 자격으로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인천아트플랫폼은 고색 창연한 근대의 건축미가 빛을 발하는 곳. 때문에 이 부근의 건물과 주변지역을 돌아볼 때면 아련한 과거의 향수에 젖게 된다. 45년 전, 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초가을 날 연안부두를 찾은 적이 있다. 당시 머물던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을 향하던 중 세찬 비가 후려치는 차창을 보니 거기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내 얼굴이 설 비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첫발을 디딘 사회, 어찌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차창에 비친 나의 얼굴은 사회에 대한 아지못할 불안과 고독의 이마쥬였던 것. 그 때 찾은 월미도의 바닷가는 왜 그리 황량하고 어둡게만 느껴지던지....

한 없이 발랄해 보이는 전시장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신세대의 풍부한 어휘에 감탄을 거듭한다. 아 저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아 저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오오, 저런 기술은 어떻게 습득했을까.

작가들은 자신의 시대를 살면서 나름대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행복한 돼지가 아니고서야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의당 그러하리라. 언젠가 시장 모퉁이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이제껏 뭘 하며 살았는지'' 자조하던 혼잣말이 잊히지 않는다.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매일 똑같은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사람은 늙고 내 인생은 없더라는 이 회한! 예술가들은 어찌보면 이 회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것을 찾으려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아닐런지. 인생 늙으막에 후회가 없도록 확실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은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일군 작품의 세계란 괴테의 예리한 통찰을 빌리면 대개는 선조들이 해놓은 것을 베끼거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고전의 극복은 그래서 필요하며 동시대의 고민을 동시대의 언어로 담아내려는 자기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이 그래서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창적으로 세계를 보는 시야의 확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국제화를 외쳐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체험의 깊이를 강조한 것이다. 카피가 아니라 다소 서툴더라도 자신의 피로 한 작업. 비엔날레야 이미 국적불명과 더불어 세련의 경연장이 된 지 오래지만, 인천아트플랫폼 전시를 포함, 비슷한 유형의 전시는 거의 대동소이해 보인다.

비슷한 유형에 비슷한 세련미, 요즘 유행하는 설치와 미디어, 거기에 적당한 선에서 가미되는 퍼포먼스 등 대개는 뚜렷한 독창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부류의 작가들이 지항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대안공간과 레지던시를 거쳐 비엔날레나 미술관 전시, 그리고 종국에는 국제무대에의 진출이라는 야무진 꿈!

그 꿈을 좇다 보면 더러는 성공하고 더 많은 수는 실패하리라.
오십 년 전, 아니 그 이전에도 많은 작가들이 국제무대의 꿈을 갖고 비슷하게 작업을 했다. 그리고 더러는 성공했고 더 많은 수가 탈락했으며, 상당수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 운이 좋아 성공한 작가라 할지라도 과거에 저지른 모방과 표절 등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사람은 그 누구도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후 평가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숙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