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본 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 노순택
[특별기획] 본 것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 노순택
  • 박주원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1.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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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분단과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사진으로 기록, 사건이라는 몸통을 찾아가는 단서로서의 ‘털’과 같은 사진
무엇이 그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장면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 것일까. 나는 왜 바라봄을 멈출 수 없었던 걸까. 그리하여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의문과 생각을 이어나가게 된 걸까. 어리고 어리석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내가 본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노순택
 
작가 노순택이 사진으로 기록한 모습들은 한국 사회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단면들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눈을 감음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던 사건들을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해 나간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적막이 감도는 작가의 사진 한 장일뿐인데, 그 사진 안에는 한국 사회가 지닌, 한국에 살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사람들 입 안에서만 맴도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 붉은틀III_BJF2501_2009
 
노순택 작가의 사진에 존재하고 실재하는 분단의 참사, 광주의 기억들, 용산의 그 날, 대추리의 레이돔, 촛불집회 혹은 태극기 집회의 현장 등, ‘한국’이라는 이름 안에 존재하면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건들과 장소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폭력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새삼스럽게 피부로 느끼게 된다. 노순택 작가는 이처럼 사진을 통해 그가 본 것의 의미를 찾고, 진술한다. 
 
현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는 작업들
 
신문이 보여주려던 ‘오늘의 현실’에서 내가 본 것은 ‘오늘의 초현실’이었다. 현실이 이렇듯 비현실적으로 작동할 때, 사진은 대단한 조작이나 기술·연출에 의존하지 않고도(오히려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초현실을 재현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노순택
 
노순택 : '날 밝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한국사회는 기나긴 군사독재의 연장과 단절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특히 1991년 봄은, 죽음의 오월, 분신정국이라 불릴 만큼 어두웠다. 대학 1학년생이던 강경대 씨가 시위 중 백골단(경찰 사복체포조)에 의해 맞아죽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와 절규, 죽음이 이어졌다. 같은 시기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 씨는 안기부에 연행됐다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였다. 사인이 밝혀질 것을 염려한 국가는 백골단을 장례식장에 투입해 벽을 부수고 들어와 시신을 훔쳐갔다. 나는 시체를 훔쳐가는 국가와 놀라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을 <한겨레신문>에서 보았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그 장면은 내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였고, 지금도 지울 수 없는 멍처럼 남았다. 내게 그 사진은 ‘현실’을 담은 게 아니라 ‘비현실’을 담은 것이었다. 아니, ‘초현실’을 담은 것이었다. 사진을 의심하고, 사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해 본 첫 경험이었다. 
 
1992년엔 동두천 기지촌에서 생활하던 윤금이 씨를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 이병이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벌거벗겨진 채 항문에 우산이 꽂히고 사체에 세탁세제가 뿌려진 처참한 사진이 크게 확대 복사되어 대학가 대자보로 나붙었다. 마치 얼어붙은 듯 그 사진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사건들, 장면들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이 사회가 누설한 장면들에 대해 의문과 호기심을 품게 됐다.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은 오래된 편이다. 고교시절 교지에 글을 썼고, 대학시절엔 학교 신문을 만들었다. 신문을 만들며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사진이 가지는 이중적 매력에 대한 생각을 키워갔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 말하는 듯하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사실을 다루지만, 사진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사진은 벌어진 일에 대한 ‘거짓 없는 증거’로 사용되지만, 실은 거짓말에 능수능란한 교활한 매체다. 나는 이런 사진의 이중성에 매료됐다. 대학 졸업 후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사진과 글을 병행했다. 사진에 대한 목마름이 커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결국 직장을 떠나 개인작업에 매진하게 됐다.  
 
이처럼 작가는 그가 의문을 가졌던 현실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작업을 풀어나가며,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사진 안에 자신이 본 것의 의미를 진술해 나간다. <얄읏한 공>(2004-2007)은 대추리에 존재하던 미군의 레이돔(Radar + Dome)을 작가가 관찰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시리즈이다. ‘저 공을 보면 우리 동네가 나온 것 같아서 반갑다’는 동네 주민의 진술처럼, 레이돔의 존재는 대추리의 사람들에게 그저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당시 작가는 대추리의 상황을 보면서 그곳에서 사진관을 하고 아예 대추리의 주민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에서 계속 보이는 ‘공’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지만, 그 공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누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지, 어떤 이유로 저 곳에 서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작가가 공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고 파보니, 이는 한반도를 감시하고자 하는 미군의 레이더였다. 그리고 2006년, 정부는 용산에 있던 미군 기지를 평택 대추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작전명을 지닌 대규모 행정대집행을 감행하며 원래 대추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냈다. 
 
야릇한, 그 공은 대추리에서 일어나던 여러 일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한 듯 상황을 지켜보는 공은 마치 한반도의 상황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 같기도 하고, 대추리 주민들의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바라보는 정부의 모습 같기도 하며, 또한 단지 뉴스로 그 이야기를 접하던 국민들의 무심함 같기도 하다.
▲ 애국의길_BDD0101_2003
 
작가는 ‘공’을 중심으로 ‘에둘러’ 대추리의 상황을 말해주며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정부의 주도로 대추리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현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누군가에게는 골프공, 누군가에게는 달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군의 감시망인 레이돔은 그것을 목격한 작가에게도, 그리고 사진으로 현실을 접한 또 다른 목격자인 우리에게도 ‘이 현실이 과연 좋은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에 존재하는 분단 
 
작업을 시작한 이래 나의 관심사는 늘상 분단의 작동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분단의 작동과 오작동, 분단체제의 정교함과 어설픔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분단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만큼이나 존재론적인 질문인지 모른다. 분단의 어떤 풍경은 가시적이고, 어떤 풍경은 비가시적이다. 
 
분단은 무언가 보여줌으로써 무언가 감춰왔다. 보여주는 거나 열심히 보라는 식으로 타당한 호기심과 의심을 쓸 데 없는 짓으로 치부해 왔다. 의심엔 대가가 따른다는 혹독한 교훈도 알려주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노순택 
 
노순택: 분단은 오작동함으로써 작동한다. 작동방식 자체가 오작동이다. 그런 오작동의 풍경들을 분단 자체에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분단이 파생시킨 여러 사건과 상황들, 분단과 동떨어져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분단과 이어지면서 기이하게 꼬여가는 부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분단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들을 무척이나 기이한 방식으로 압축시켜왔다. 심지어 ‘한국적 보수’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성폭력 관련 ‘미투(#MeToo)’ 마저 ‘빨갱이들’, ‘빨갱이 잡것들’의 논리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빨갱이는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를 부르는 말이지만, 분단체제 안에선 사실상 ‘친북’과 ‘종북’을 의미한다. 한국사회는 교육, 의료 , 주거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한쪽은 ‘친북’ 또 한쪽은 ‘애국’으로 자동 분류되는 괴이한 이분법을 작동시켜왔다. 풍성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을 너무나 우습게 압축시켜 버린 것이다.  
 
노순택 작가가 주목한 한국에 서려 있는 분단은 오작동의 풍경이다. 위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빨갱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빨갱이’가 지니는 단어의 뜻은 진심으로 ‘공산주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나라가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데 일조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마치 아이가 울며 보챌 때 “너 자꾸 말 안 들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 간다!”는 말에서 나오는 ‘망태 할아버지’처럼, 볼 수는 없지만 무서움을 증폭시키는 대상을 지칭하는 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의 입장에서, ‘분단’이라는 개념은 그들의 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여과된 정보밖에 알고 있지 못한 국민들을 호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 잃어버린보온병을찾아서_CAL2701_2010-2011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시리즈에는 2010년 당시 연평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노순택 작가는 당시 뉴스에 나와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북한이 쏜 포탄’이라고 말하는 한나라당 안상수(現 창원시장) 대표의 해프닝을 접하고 ‘포탄’이라 명명된 보온병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폭격 이후, 건물이 무너지고 자동차가 옆으로 넘어간 그 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연평도의 모습을 작가는 담담히 사진의 프레임에 담아내었다. 많은 것이 포격으로 인해 불에 타버려 검게 변하고 사람들의 자취가 없어져버린 마을의 모습을 작가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북한의 도발 징후를 알고 있었던 정부와 북한의 도발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 군인들과 일반인들, 그리고 목숨을 유지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생채기를 내듯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미디어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작가의 말대로 ‘오작동’되고 있는 분단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분단에 대한 현실인 것이다. 
▲ 잃어버린보온병을찾아서_CAL2601_2010-2011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CAL2601>(2010-2011)에는 포격에 의해 겉은 타고 속은 다 타지 않고 원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삼겹살이 보인다. 작가는 연평도의 가정집 냉장고에서 이 삼겹살을 발견했는데, 이 삼겹살에 남은 흔적은 그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하다. 마치 그날의 증거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몸에 남은 상처들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사진기에 찍힌 이 삼겹살이 ‘불에 탄 사람의 살’처럼 보인다고 하였는데, 강렬하게 보이는 삼겹살의 속살을 오랫동안 보고 있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일까? 비극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삼겹살은 그 날, 연평도에서 자신의 일과를 보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붉은틀 III>, <애국의 길> 시리즈를 보면 보수의 논리, 그리고 한국에서 분단이 작동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빨갱이’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을 모으게 하는 힘이 되었고, 보수의 논리는 그 힘을 먹고 더욱 큰 괴력을 발휘해 왔다. ‘퇴진 노무현’의 팻말과 미국과 대한민국의 국기가 조우하는 사진은 실체 없이 흩날리는 모래와도 같아 보인다. 
 
광주의 역사와 현실
 
‘광주’라는 장소가 한국에서 지니는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이 장소에서 일어난 일은 예전에 근현대사 책에서는 ‘광주 사태’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 이름을 되찾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린다. 여기에서 일어났던 일은 예전에는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진 일이라고 알려졌었고,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법의 심판을 받기도 하였다. 정권에 따라 이 공간의 의미는 왔다 갔다 하였고, 이제 요즘 시대의 학생들은 영화를 통해 이 장소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것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은 ‘북한에서 침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이 국가를 책임지던 대통령이 지시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 그리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 등이다. 그 당시의 대통령은 안개와도 같은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 시켰다. 작가는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제가 속한 세대에게도 지울 수 없는 멍울이자,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출발점이었다.”고 언급하였다.  
▲ 망각기계I_김완봉_2007
 
<망각기계 I - 죽은>에는 망월동 옛 묘역의 낡고 바랜 영정 사진이 담겨 있다. 2006년에 처음 시작된 이 시리즈는 6년 동안 작업이 진행되고 마무리 되었다. 작가가 사진기에 담은 사진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고 변해버린, 희생된 이들의 사진들이었다. 노순택 작가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된 그들의 사진을 사진기에 담았고, ‘자연스러운 훼손이 마치 그분들의 죽음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묘지 옆에 조그맣게 놓여있는, 그 시간과 공간에 살지 않았다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영정사진은 작가의 사진기에 다시 담기며,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광주의 과거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한다. 
▲ 망각기계II_CAF1711_2010
 
그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 광주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그날의 모습을 기억하는 방식을 담은 부분이다. 작가는 <망각기계 II - 죽지 않은>에서 시민군이 되어보는 체험행사에서 시민군 복장을 한 친구를 찍어주는 사람의 모습,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너나할 것 없이 울고 있는 분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 등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요즘의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전적으로 아름다울 수도, 전적으로 추할 수도 없는, 죽음을 기억하는 삶의 풍경’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광주를 향해 곪아있던 시선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도, ‘무언가 잊히고 있다는 생각, 여전히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 알맹이는 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 그리고 ‘오월의 그날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 등이 든다고 이야기하였다. 이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광주의 이야기는 재조사되어 역사로 인정받고 있으나, 과거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얻고자 노력했던 정치인들이 현재에 와서는 다시금 폭력의 주체가 되고 있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아직 밝혀지지 않고 왜곡되어 존재하는 광주 오월의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건의 흔적과 단서로서의 사진
 
노순택: 보통의 저널리즘은 문장부호로 치면 마침표와 같다. ‘오늘 이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드물게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다. 나 자신이 저널리즘 사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지향점은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는 마침표와 느낌표가 아닌, 내가 품은 의문을 보여주는 작업 말이다. 물론 예술의 영역은 느낌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도록 품어왔고, 여전히 품고 갈 것은 물음표다. 물음표에는 지속의 힘이 있다. 느낌표가 작가의 일방적 ‘전달’이라면 물음표는 관객이나 독자가 ‘자기것 화(化)’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관객이 내가 보여주는 작업을 볼 뿐만 아니라, 내가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길 원한다. 나는 질서정연한 세상에 금을 내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현대예술의 중요한 역할이자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 사진이 주목하고 몰두하는 ‘사건의 정점’을 내가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점을 비켜난 순간, 정면이 아닌 측면과 후면, 흔적과 여운을 함께 사진기에 담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태의 정면을 주목하지만 측면과 후면, 사태의 이면을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사진은 언제나 수박의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다루는 것은 결국 표면이다. 내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표면은 내면 만큼이나 혹은 내면보다 더한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사진은 세상의 모든 것, 혹은 진실을 다루기엔 부적절한 매체다. 사진이 무엇인가의 명백한 흔적이라는 이유로, 진실인 양 포장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몸통이라면, 사진은 한 줌 털에 불과하다. 그러나 털은 어디서 왔는가. 몸통에서 온 것이다. 사진은 몸통에 대한 단서가 되어준다. 이러한 실마리를 통해 ‘몸통’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목격한 사건과 상황들은 무거운 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다기 보다는 큰 이야기들이다. 내가 목격한 장면들에 대해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 않다. 파편을 재배열함으로써 몸체에 다가서려는 시도, 이것이 내가 하려는 일이자, 내 작업을 보는 분들에게 요청하는 일이다. 
▲ 애국의길_BED1901_2004
 
노순택 작가의 작품을 보다보면 마치 사진 속 인물들이 그 순간 영원히 얼어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박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차가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마음의 온도와 작업의 온도를 일부러 엇갈리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순택: 내 활동의 좌표는 세 개의 축 안에서 찍힌다. 첫 번째 축은 현장 활동의 축이다. 내 사진에 담기는 분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을 연대활동이라 부를 수도 액티비즘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축은 저널리즘 영역을 오가는 일이다. 내가 자리한 현장들은 대개 시급한 호소, 절규가 있는 곳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는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 번째 축은 오롯한 개인 작업이다. 긴 호흡과 냉정함이 요구된다. 호소, 감동, 분노, 설득의 방법론에서 거리두기를 하려고 한다. 내겐 이 세 가지 축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앞의 두 축은 세 번째 축을 가능하게 하는 알리바이나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불가근불가원’ 너무 가까이 가지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금언은 참으로 멋진 말이지만, 나는 그런 원칙에 복종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목격자이며 목격자에게 부여된 진술의 책무, 하지만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진술’의 책무를 받아들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처럼 작가는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털어놓고 있다. 그가 사진을 통해 남겨둔 많은 진술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각자가 사진을 보고 느끼는 해석들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 일수도 아닐 수도 있으나, 그것들은 또 하나의 ‘털’이 되어 현실을 기록하는 또 다른 증언이 될 것이다. 
 
글쓴이· 박주원(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2017년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수원 대안공간 눈 <취향은 존재의 집> 공동 전시에서 '글로 배우는 연애' 전시를 기획했다. 
 
*이 지면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평가 지원 프로그램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박주원 작가가 각각 선정돼 4회에 걸쳐 4명의 작가론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