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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130년 전의 '노라', 지금 우리 곁에 살고 있다
유리 부투소프 연출 <인형의 집>,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18년 11월 09일 (금) 16:45:25 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130년 전에 쓰여진 희곡, 3시간의 러닝타임.  벌써부터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겠구만'이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럴 수 있다. 3시간 동안 그 옛날 옛날 이야기를 본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주변에서 '고전'이니 '명작'이니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왜 우리가 이 이야기를 봐야하는 것일까?  굳이 우리와 맞지도 않을, 100년도 더 된 이야기를 꼭 봐야 할까? <미스터 선샤인>처럼 재미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 질문을 안고 입센의 문제작 <인형의 집>이 돌아왔다. 이번 <인형의 집>은 <보이체크>, <갈매기> 등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가 국내 배우들과 함께 10년만에 한국 관객들에게 다시 인사를 하는 작품으로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한국과 러시아 협업으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 유리 부투소프 연출 <인형의 집>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주인공 '노라'(정운선 분)가 자아를 찾아가며 마침내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집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인 <인형의 집>은 희곡이 써진 1879년 당시에도 문제작으로 지목됐지만 130년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여성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해방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지금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이 이 속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분명 '지금 이 순간 봐야한다는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13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아니 지금과 정말 잘 맞는 궁금증. 그것이 이 연극을 공연하고 관객이 보게 되는 이유다. 노라는 130년 전 사람이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살고 있다.

맨 처음의 노라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여기에 남편 헬메르(이기돈 분)가 은행장으로 취임한다. 평생 잘 살 것만 같았던 노라와 헬메르의 삶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점점 무너져간다.

노라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결국 굴레에 갇혀 있었으며 남자들의 인형에 불과했던 자신의 삶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 주변의 남자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삶만을 추구하고 노라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다.

   
▲ 노라의 '인형같은 삶'을 보여주는 장면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 연극은 한 편의 무용 공연을 보는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현대무용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 배우들의 움직임도 마치 무용의 동작같은 모습으로 전해진다. 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뛰는 모습에서는 드레스가 바닥에 끌리는 모습조차도 잘 짜여진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번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무용에 있다.

작품은 단순히 '여성 해방'에 머물기보다는 "우리는 모두 자유로워져야한다"는 노라의 대사를 통해 인간의 평등과 자유로 그 주제를 넓힌다. 즉 마지막 노라의 가출이 '한 여성의 탈출'이 아니라 인형에 불과했던 존재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가장 인간다운 삶을 향한 길을 간다는 의미가 된다. 

연극은 중간중간 배우들이 서로의 역할을 바꿔서 연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이 작품이 여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남녀, 인류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모든 비밀이 밝혀진 뒤 노라와 헬메르가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대사를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완전히 뒤바뀐 관계가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현대무용과 배우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는 "관객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며 이 연극을 관객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형의 집>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희곡이 발표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여성 문제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매일매일 고민해야한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분노하고 미쳐가고 지쳐가는 상황 속에서 결국 자아를 찾게 되는 노라의 상황을 3시간 동안 쭉 따라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형의 집>은 우리가 고민하고 느껴야 할 부분을 지금 이 순간 전하고 있다. 그것을 느끼고 따라가다보면 3시간이 단순히 긴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앞으로 100년 후 <인형의 집>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100년 후에도 여전히 이 연극을 고민하며 봐야하는 상황이 생길까? 아니면 '200년 전에는 저렇게 답답하게 살았구나'라고 생각하며 보게 될까? 상상을 한 번 해본다. 

<인형의 집>은 오는 2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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