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제 전통가무악 재발견” 열려...해방이후 해외 진출 최초 국악인, 심상건과 딸 심태진
“중고제 전통가무악 재발견” 열려...해방이후 해외 진출 최초 국악인, 심상건과 딸 심태진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8.11.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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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산서, 즉흥연주 달인, 가야금 연주 일인자 심상건과 악가무 능통한 심태진 미국활동 최초 조명

미국 현지조사 통해 희소 가치의 중고제 공연자료 발굴

우리나라 무용사를 비롯 전통예술사 발굴에 앞장서 온 춤자료관 연낙재(관장 성기숙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근대 우리 국악계의 중요한 희귀 자료들을 미국현지까지 가서 수집하고, 그 역사의 맥을 잇고 있는 주인공들을 만났다. 동시에 우리 근대 전통예술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담아오는 크나큰 성과를 이뤘다.

성기숙 교수는 지난 11월 초순 미국 현지조사를 통해 심정순가의 대표적인 전통예인 심상건(1889~1965)의 딸 심태진(98세), 심태임(89세)을 인터뷰하고, 이들 부녀의 활동 여정이 담긴 희귀자료를 발굴, 수집했다고 밝혔다. 이는 충남 서산의 중고제 국악명문 심정순가(家)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희귀 자료들로 전통공연예술계의 관심을 모은다.

▲1935년 음반취입 차 방문한 도쿄에서. 심상건과 그의 딸 심태진. (사진=연낙재)

심상건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심정순 밑에서 성장하면서 그의 기예를 물려받아 일가를 이뤘으며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기악 등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전통예인이다. 1920년대 중반 서울무대에 입성하여 무대공연, 방송출연, 음반취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1947년 세계적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조택원무용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약 3년간 미 전역을 순회공연했다. 조택원의 신무용 명작 ‘신노심불로’는 심상건의 장고가락에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으며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초연됐다.

▲1930년대 중반 앞줄 왼쪽부터 판소리 명창 이동백, 송만갑, 김창룡 뒷줄 왼쪽 세번째 심상건, 이혜구, 한성준. 그밖의 양복차림은 일본 음반회사 관계자들. (사진=연낙재)

심상건의 딸 심태진은 부친에게 가야금병창, 단가, 양금, 기악 등을 배우고 당대 최고의 명무 한성준에게 ‘승무’, ‘즉흥무’ 등을 익혔다. 공연활동과 음반취입 등 국내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7년 부친과 함께 조택원무용단 일원으로 도미(渡美)하여 미국 전역을 순회공연하였다. 1949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끝으로 재미사업가이자 독립운동에 투신한 한순교(1981년 작고. 중앙대 설립자이자 여성정치인 임영신의 전 남편)와 결혼하여 2녀를 뒀다. 올해 98세인 심태진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서 딸과 군의관을 지낸 사위와 함께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48년 조택원무용단 미국공연. 왼쪽부터 심태진, 심상건, 김옥진, 임경희, 조택원. (사진=연낙재)

심상건의 9남매 중 막내딸 심태임은 1940년대 중반 발레무용가 정지수에게 춤을 배웠다. 일본유학파인 정지수는 제1세대 발레무용가로 6·25때 월북하여 북한무용 토대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심태임은 정지수발레연구소 제1기생으로 입소하여 1946년 부민관에서 개최된 정지수 신작무용발표회에 출연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6·25때 스승 정지수가 월북하자 무용을 중단했다. 그후 1950년대 중반 파병미군과 결혼하여 도미하였고 현재 89세의 나이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다. 그의 손녀딸 아만다 태는 현재 미국에서 현대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 있는 심태진 자택에서. 부친 심상건에 물려받은 가야금을 들고 있는 심태진과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진=연낙재)

 가야금 연주의 일인자이자 즉흥연주의 달인으로 손꼽히는 심상건은 해학과 파격의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심상건, 심태진 부녀는 해방 이후 해외무대에 진출한 최초의 국악인이라 할 수 있다. 1947년 도미한 이래 심태진은 미국에 정착했으며 1965년 신병 치료를 목적으로 미국에 건너간 심상건은 같은 해 현지에서 작고했다. 미국 에리조나주 피닉스 그린우드 묘지에는 심상건 부부의 묘가 있으며 묘비에는 후손들에 의해 가야금이 조각되어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심상건 선생 묘지. (사진=연낙재)

부친 심상건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심태진은 100세의 나이에 가까운 지금도 심상건 바디의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양금연주 등을 완벽히 소화한다. 그는 격동의 근현대를 관통한 심정순가 전통가무악의 마지막 지킴이인 셈이다.

연낙재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펜서콜라를 비롯 애리조나주의 피닉스, 캘리포니아주의 LA 등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심상건 후손들을 현지조사하고 다양한 공연자료를 발굴, 수집했다. 심태진의 가야금산조, 단가 등을 영상 촬영했으며, 또 심상건의 후손들이 그의 가야금병창 및 가야금산조 음원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심태임 자택에서. 왼쪽부터 이애리, 심태임, 성기숙. (사진=연낙재)

이번에 발굴 수집된 자료 중에는 희소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사진도 주목된다. 1935년 음반취입 차 방문한 도쿄에서 찍은 심상건과 딸 심태진의 사진을 비롯 고수 한성준과 심상건,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과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를 지낸 제1세대 한국음악학자 이혜구 등이 수록된 사진, 심상건과 심태진, 조택원, 김옥진, 임경희 등 조택원무용단의 미국 순회공연 사진, 그밖의 심상건 일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다.

미국 현지조사를 통해 발굴, 수집된 심상건 일가의 공연자료는 오는 29일(목) 오후 3시 서산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연낙재 주최 “중고제 전통가무악의 재발견” 행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실기와 이론이 병행된 렉쳐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일(목) 오후 3시 서산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연낙재 주최 “중고제 전통가무악의 재발견”

1부에서는 중고제 전통가무악 공연이 펼쳐진다. 심정순가의 예맥을 잇는 심화영의 외손녀 이애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의 ‘승무’와 심화영제 소리를 전승하고 있는 지역의 소리꾼 이은우의 ‘중고제 심청가 중 선인때라’ 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충남 홍성 출신 명무 한성준에서 한영숙으로 이어지는 ‘살풀이춤’을 젊은 춤꾼 정민근이 춤춘다. 

유영대 고려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2부 학술세미나에서는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심정순 음악예술 연구성과 및 향후 과제 검토’, 성기숙 교수의 ‘미국 현지조사를 통해 본 심상건-심태진의 공연활동’ 등 두 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이진원 교수는 심정순 명인에 대한 판소리, 가야금병창, 가야금독주 등에 대한 학술적 연구성과를 검토하고 향후 기 발굴된 음반자료의 심층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나아가 고수 및 가야금 연주가, 그리고 재담소리 명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조명이 필요하다고 연구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성기숙 교수는 미국 현지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심상건과 그의 딸 심태진, 심태임의 예술활동 연구를 통해 중고제 심정순가의 근대 공연예술사적 위상을 재평가하는 한편, 관련 희귀자료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짚을 예정이다.  

충청도 서산의 청송 심씨 집안의 가계전승으로 이어져 온 심정순가 전통가무악은 중고제를 표상한다. 심정순가는 한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무려 8명의 전통예인을 배출한 최고의 국악명문가로 손꼽힌다. 국민가수 심수봉의 할아버지 심정순을 중심 축으로 심상건,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 등 심정순가 전통예인들은 탁월한 실력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편제, 서편제에 비하여 대중적 관심도에서는 다소 멀어져 있었다. 이에, 이번 미국 현지조사를 통한 자료발굴은 심정순가를 중심으로 한 중고제 전통가무악에 대한 재발견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 공연사적 맥락을 가늠케 함과 동시에 학술적 연구의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