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법주사 괘불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등 보물 지정
군위 법주사 괘불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등 보물 지정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8.11.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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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불화,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 조선 시대 고문서 등도 지정"

'군위 법주사 괘불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등 6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7일 "'군위 법주사 괘불도'를 비롯한 대형 불화(괘불)와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 조선 시대 고문서, 그리고‘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지정된 괘불도 3건은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에 소장된 대형 불화(괘불도)의 보존관리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밀조사 사업 대상에 포함된 작품이다.

▲ 군위 법주사 괘불도

보물 제2005호 '군위 법주사 괘불도'는 1714년(숙종 40년) 5월 수화승 두초 등 9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괘불이다.

총 16폭의 비단을 이었고 높이 10m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로, 거대한 화면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두 손을 좌우로 벌려 연꽃을 들고 있는 입상의 여래를 화면 중간에 큼직하게 그렸다.

부처임에도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보살의 모습으로 구현한 점, 하단에 용왕과 용녀를 협시보살(본존불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처럼 배치한 점 등 다른 괘불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화면 구성을 시도한 것이 주목되고, 담채기법의 색감과 세밀하고 정교한 필선, 다양한 문양 등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연꽃을 들고 있는 주존불의 모습은 조선 후기 불화의 새로운 도상(圖像)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보물 제2006호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1750년(영조 26년) 축명, 사혜 등 4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세로로 긴 화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하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상하로 그려 오존(五尊) 형식을 취한 구도다.

일목요연한 구도와 날씬하고 비례가 적당한 인체표현, 붉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밝고 부드러운 색채의 사용 등은 18세기 전반 충청도 지역 불화 양식을 계승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 괘불도는 유례가 드문 오존(五尊)으로 구성된 작품이자 18세기 중엽 충청도 지역의 괘불 제작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보물 제2007호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야외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에 사용된 불화로, 1788년(정조 12)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의 주도로 총 22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괘불도는 높이 10m가 넘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고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하여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18세기 후반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불화 중 하나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2008호 '경선사 명 청동북'은 사찰의 일상적 불교 의례에서 사용된 불교의식구의 한 종류인 청동북으로,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무인년(戊寅年)’인 1218년(고려 고종 6년) 경 무관 6명이 발원해 경선사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청동북은 표면에는 4개의 굵고 가는 동심원을 둘렀고 중앙에는 연꽃 씨를 표현했으며, 그 주위를 16개의 연화문으로 돌려가며 장식해 화려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췄다. 고려 시대 청동북 중 아래에 공명구가 뚫려 있는 사례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작품이다. 

보물 제2009호 '장철 정사공신녹권'은 1398년(태조 7년) 11월 공신도감(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 임시 관청)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 29명 중 한 명인 중추원부사 장철(1359∼1399)에게 발급된 녹권(공신도감이 왕명을 받아 공신에 책봉된 사람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이 녹권은 정사공신의 공적과 포상의 내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자어의 순우리말 표기인 이두가 많이 사용됐고 문서의 서식 또한 조선 초기 공신녹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고문서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사진제공=문화재청)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신라의 미소’로 널리 소개된 신라 시대 원와당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한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됐다.

와당 제작틀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은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으로,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든 후 도구를 써서 세부 표현을 마무리한 것으로. 비록 오른쪽 아래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얼굴 전면에 걸쳐 다듬은 흔적이 있고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와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룬 자연스러운 모습 등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