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용이다'를 보여준 커플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용이다'를 보여준 커플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1.29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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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제 <무.념.무.상(舞.念.舞.想) Part 2 'Fantastic Dancing Duet'>

우리에게 무용이란 무엇일까? 우리에게 무용은 왜 어려운 분야로 인식됐을까? 동작의 어려움? 불분명한 의미? 혹은 극장을 찾기 어려운 환경?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용이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무용제가 '대중과 가까이 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대중의 인기가 없이는 무용계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4마리 백조 페스티벌'과 함께 올해 서울무용제에서 선보인 <무.념.무.상(舞.念.舞.想) Part 2 'Fantastic Dancing Duet'>(이하 <무념무상 2>)으로 표현됐다.

▲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백조의 호수> ⓒ유니버설발레단 photo by 김경진

지난 22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무념무상 2>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예술인 부부 4쌍의 듀엣 공연으로 펼쳐졌다.

올해 서울무용제 홍보대사를 맡기도 한 현대무용가 정석순-국악인 김나니 부부, Mnet '댄싱9'의 출연자로 만나 부부가 되면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현신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비보이 하휘동-현대무용가 최수진 부부,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이자 주역무용수 커플인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부부, 그리고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에서 '춤바람 커플'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 손병호-무용가 최지연 부부가 이날 무대의 주인공들이었다.

맨 처음 <무념무상 2>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자는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던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떠올렸다. 비무용인들이 춤을 배워 듀엣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기자는 '무용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굳이 어려운 동작을 배우지 않아도, 단순한 움직임만으로도 하나의 무용이 된다는 것을 이 공연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정석순-김나니 커플은 현대무용과 판소리, 힙합, 클래식을 섞은 무대를 선보였다. 김나니의 소리와 바이올린 연주, 정석순의 춤이 어우리지는 무대가 진행된 후 김나니의 노래로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러나왔고 그 노래처럼 옛사랑을 생각하는 커플의 모습을 두 사람은 보여줬다. 

압권은 '심청가' 중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을 모티브로 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였다. 딸까지 잃고 절망에 빠진 상황에서 맹인 잔치에 가는 심봉사의 심정이 김나니의 소리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로 표현되고 그 곡에 맞춰 정석순이 딸을 찾는 심봉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동작을 선보인다. 다양한 장르가 조화를 이루고 그 속에서 춤의 의미가 느껴진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 했다.

하휘동-최수진 커플의 <Level Up>은 '두 정점에서 시작된 또 다른 길'이라고 작품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하휘동의 비보잉과 최수진의 현대무용을 보보면서 기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보잉과 현대무용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은 본래 하나였는데 순수-대중이라는 이중구조로 가른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무용이라면 괜히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비보잉과 현대무용은 하나라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움직임도 하나의 현대무용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무용을 쉽게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 공연이었다.

▲ '무,념,무,상' Part 2에 참여한 커플. (왼쪽부터) 최수진-하휘동,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최지연-손병호, 김나니-정석순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커플은 <백조의 호수> 중 '백조 파드되'를 선보였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무대에 먼저 등장하자 시작부터 박수가 터져나왔다.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춤은 영원한 사랑을 굳게 맹세하는 약속의 춤이었고 이는 곧 두 부부의 사랑을 맹세하는 춤이기도 했다.

하나의 독립된, 짧은 무대지만 발레가 표현하는 부드러운 움직임과 표정은 발레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 부부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발레의 아름다움을 짧지만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마지막, 손병호-최지연 커플은 함정임 작가의 소설 <백야>를 모티브로 한 '일상에 핀 환각의 꽃 <백야>'를 선보였다. 미포에서 회를 뜨는 남자에게 찾아온 신비의 여인, 그들의 꿈같은 만남이 최지연의 춤과 손병호의 연기로 표현된다.

손병호가 이 자리에서 선보인 것은 춤이 아닌, 연극배우들이 하는 자연스런 동작들이었다. 그런데 이 동작 하나하나가 하나의 무용으로 표현된다. 팔 동작도, 무대를 도는 동작도 모두 하나의 무용으로 표현된다. 꼭 가수들의 춤을 흉내내지 않아도, 무용가의 동작을 따라하지 않아도 우리가 무의식중에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무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우러진다. 이것이 무용이다.

<무념무상 2>는 이날 한 번만 공연한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재미와 생각을 안겨준 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보여준 것은 바로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바로 무용'이라는 것이었다. 무용이 이렇게 타 장르와 어우러지고 그로 인한 재미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면 관객들이 부담없이 무용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