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했던 고) 김윤수선생을 떠나보내며 ...
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했던 고) 김윤수선생을 떠나보내며 ...
  • 정영신기자/장터사진가
  • 승인 2018.12.0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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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예총, 민미협, 창비에서 준비한 고)김윤수선생의 추모식과 하관식을 마치고

젊은이들에게 “성실해라, 불의에 맞서라. 그리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던 故김윤수선생(향년83세)이 지난 29일 숙환으로 영면에 드셨다. 민중미술의 선구자로 ‘한국민예총’ 초대공동의장이셨고, 3대 이사장이셨던 선생의 장례식은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민족예술인장’(장례위원장: 유홍준)으로 치루어졌다. 지난 1일에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식을 가지고. 2일에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치하는 하관식을 가졌다.

▲ 고)김윤수선생의 빈소 Ⓒ정영신

故 김윤수선생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또한 민중미술이 등장한 80년대 이전부터 미술계전반에 걸쳐 양심적 지식인으로 문화운동을 주도한 미술인이다. ‘민족미술과 리얼리즘’이라는 평론집을 통해 민중미술의 틀을 만들었고, 그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하며 예술로 사회적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힘쓰셨다.

▲ 고)김윤수선생 하관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정영신

특히 선생은 1971년에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지식인 30인의 서명에 참여하고, 75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학생들은 나가서 싸우고 끌려가는데, 지식인이랍시고 책만 보고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1973년 유신헌법을 개헌하자는 ‘개헌청원 100만의 서명운동’을 출범시키고, 운동본부 30인 중 한사람으로 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루면서 요시찰 인물명단에 오르기도 했던 분이다. 그러나 제심청구로 인해 지난달 21일 무죄판결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 유홍준 장례위원장 Ⓒ정영신

이 시대의 깨어있는 지식인이 취해야 할 행동으로, 개인적인 희생도 불사하고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또한 민중미술로 문화운동을 펼치며, 예술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장을 그림으로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선생께서는 한평생을 참된 지식인으로 꼿꼿하고 흐트러짐 없이, 자신보다는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바르게 살아오신 분이다.

▲ 오열하는 미망인 김정업여사 Ⓒ정영신

민족예술인장으로 치루어진 故 김윤수선생의 장례식은 고인의 친지와 동료, 후배와 제자들로 장례위원회’를 조직했다. 장례위원장에는 유홍준, 집행위원장은 ‘한국민예총’ 이사장인 박불똥, ‘민미협’이사장 이종헌, ‘창비’ 대표이사 강일우, 교육자인 이영욱선생으로 구성했다.

이와 더불어 집행위원, 호상, 고문, 장례위원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였다.

▲ 추도식에 참석한 문화예술인 Ⓒ정영신

추모식은 만화가 박재동선생의 사회로 춤꾼 장순향, 이삼헌씨가 김윤수선생을 추모하는 살풀이춤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유홍준 장례위원장의 여는 인사말과 문학평론가 최원식씨의 ‘조사’, 박불똥 ‘한국민예총’이사장의 ‘약력소개’, 김정환 시인의 ‘조시’, 백낙청 문학평론가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화가 김정헌선생, 춤꾼 이애주선생의 ‘추모사’가 이어졌고, 가수 연영석씨의 추모노래와 고인의 동생인 김익수의 유족 인사말로 끝을 맺었다.

김익수선생은 “고인이 된 형은 부모님께서 청도운문사에서 천배를 해서 얻은 아들이었다”며, 많은 예술인들이 민족예술인장으로 추모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 장순향, 이삼헌춤꾼 Ⓒ정영신
▲ 유족 김익수동생(영남대 명예교수) Ⓒ정영신

유홍준 장례위원장은 “고인은 유신독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회고했고,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김윤수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자유를 존중해주신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고 말하면서, 강의실에서 앉지도 않으시며 열심히 가르치고, 재미있게 말하는 선생님이었다“며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회상했다.

▲ 좌)문학평론가 백낙청선생,화가 김정헌선생, 문학평론가 최원식선생 Ⓒ정영신

고인과 가까이 지냈다는 김정환시인은 “속대찌개에 끓인 밥”을 조시로 낭송해 고인을 추모했다. “그의 정신은 늙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이름이 학계를/ 출판계를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그가 돌아간 지금도/ 여전히 젊게 한다. 왜냐면/ 과격한 적 한번 없이 그의/ 정신이 젊었다” 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김윤수 선생의 정신을 일깨웠다.

▲ 김정환시인이 '속대찌개에 끓인 밥'조시를 낭송하고 있다. Ⓒ정영신

백낙청, 백기완, 김정헌, 이애주선생은 추모사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백낙청선생은 김윤수 선생님이 창비 발행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계간지를 폐간시켰을 때, 김윤수 선생께서 문공부 국장과 협상을 하셨다”고 밝히면서 오늘날 창비가 있기까지는 김선생님의 공헌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김선생님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창비를 위해 큰 힘을 쏟은 인물인데, 근래 들어 찾아뵙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장지로 떠나는 모습 Ⓒ정영신

백기완선생은 1973년 박정희 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성명서를 쓸 때, 자신이 고인의 이름을 적어 넣은 인연이 있다며, 김윤수선생은 ‘서돌’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서돌은 순 우리말로 ‘짓밟힐수록 불꽃이 이는 불씨’라며, 김윤수선생은 서돌처럼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꽃’을 간직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 한국민예총이사장 박불똥님, 백기완님 Ⓒ정영신

김정헌화가는 47년간 고인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개인전 서문을 써주지 않아 강금 하다시피 해 원고를 받은 적도 있다며, 먼저 간 용태와 오윤과 여운을 불러 오랜만에 막걸리 한 잔 하시라며, “저희들은 시대정신에 빛나는 선생님의 유지에 어그러지지 않게 열심히 미술의 길을 정진하겠습니다”고 말했다.

▲ 추도식 사회를 진행한 박재동 만화가 Ⓒ정영신

이애주선생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수업이 지금까지도 떠오른다며, 춤에 대한 강의까지 해주어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1에서 10까지 수리는 세상의 원리와 삶의 원리를 이야기했다면서, 본질이 우리마음속에 있듯이, 김윤수선생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81자의 천부경으로 선생을 추모하는 무용을 선보였다.

▲ 이애주 춤꾼교수 Ⓒ정영신

그 이틀 날 장례 하관식은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되었다. 유가족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의 헌화가 이어졌고, 참여한 예술가들이 차례대로 마지막인사말을 남겼다. 화가 임옥상선생은 “바른 예술의 길, 사회에 빚 지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앞장서서 강건한 의지와 노력으로 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말로 고별사를 했다. 영남대학교 제자들의 눈물과 미망인 김정업여사의 통곡소리는 함께한 예술인들을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다.

▲ 화가 임옥상님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있다 Ⓒ정영신

특히 1974년 긴급조치가 일어났을 때, ‘창비’에서 김지하선생이 발표한 시 ‘빈산’을 노래로 만들었다며, 임진택선생의 나직한 노래 소리는 조용한 울림으로 묘역으로 퍼져 나갔다. 하관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예술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씀하셨던 고)김윤수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 임진택 소리꾼이 김지하시인의 시 '빈산'을 나직히 부르고 있는 모습 Ⓒ정영신

이제 편히 잠드시길 바라며 김지하 시인의 시 ‘빈산’으로 마무리 짓는다.

▲ 좌)한국민예총이사장 박불똥, 미망인 김정업여사, 유홍준 장례위원장 Ⓒ정영신

빈 산 / 김지하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 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 고인을 떠나보내는 문화예술인 Ⓒ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