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충무로야사]이만희 감독 사단과 남배우들
[연재-충무로야사]이만희 감독 사단과 남배우들
  • 이진모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09.09.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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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모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봉두난발에 핫바지차림의 영진이 시퍼런 낫을 꼰아들고 겁에질린채 서로 부둥켜안고있는 영희와 현구에게 달려든다. 영희는 영진의 여동생이고 현구는 미쳐버린 영진과 연인 영희를 찾아 경성에서온 영진의 대학친구다.

영진은 현구를 지주 천아무개의 심복 오기호로 착각하고 그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때, 마침 대문을 밀치고 오기호가 나타나고 영희를 탐하는 오기호는 현구와 격투를 벌인다.

현구는 오기호의 완력에 밀려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제야 오기호를 알아본 영진은 격투 끝에 오기호를 낫으로 찍어 살해한다. 일본순사에게 잡혀가며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영진...

이 스토리는 저 유명한 춘사 나운규의 대표작 ‘아리랑’이 아니라, 소재는 같지만 1955년에 다시 제작된 김소동감독 ‘아리랑’의 클라이막스다.

이영화에선 당시 인기악극배우였던 장동휘가 영진역을, 조미령이 영희역을, 윤일봉이 현구역을 했는데 필자가 중학시절이었던 그때도 이 영화는 획기적인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장동휘의 인기는 급상승해 일약 한국액션스타의 대명사가 된다.

거칠고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어딘가 의협심과 인정이 많아 보이는 그는, 실제로도 의리파였고 인정이 많았던 명배우였다. 그런면에서는 이만희감독과 다르지 않았던 그가 이만희감독과 상당편수의 작품을 함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이만희감독 작품에 처음출연한 것은 아마도 ‘다이얼112를 돌려라’에서 문정숙과 함께였을 것이다. 이후 그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추격자’등 수많은 작품을 이만희감독과 함께했고, 작품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필자가 쓴 시나리오엔 한두편에 출연했으나 평소 이런저런 인연으로 매우 가까운 친분이 있었다.

역시 시나리오작가인 유동훈, 김하림등과 그의 서교동집에서 밤새워 마작을 하거나 술을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룻밤을 지새고 나면 또하룻밤을, 그리고 다시 또 하룻밤을 함께 지내자고 붙잡던 그의 뜨거운 온정을 잊을수가 없다.

부인께서도 몇날며칠을 대접하면서 얼굴한번 찌푸리지않아 오히려 송구할 정도였다.

이만희감독영화에 장동휘씨 못지않게 많은 출연을한 남배우는 아무래도 ‘허장강’ 일 것이다. 그는 특유의 개성있는 외모와 연기로 다양한 악역을 실감나게 소화해 내었다.

특히 ‘군번없는 용사’와 ‘7인의 여포로’, ‘사기한 미스터허’에선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 극중인물과 실제인물을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이만희감독 작품뿐만 아니라 신상옥감독의 ‘춘향전’, ‘상록수’, 유현목감독의 ‘불례기’ 등에서 악역아닌 선량한 캐릭터의 연기를 뛰어나게 해내 그의 고정된 이미지에 혼란이 올 정도였다.

특히 양주남감독의 ‘종각’에선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보여줌으로써, 명배우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미8군병사들이 그를 너무좋아해 일부러 싸인까지 받으러 왔었다는 일화도 기억난다.

신성일은 이만희감독 작품에 전기한 두배우보다 많이 출연하지는 않았으나 ‘만추’, ‘흑맥’등 중량감있는 몇편의 작품에서 작품의 컬러와 주인공의 캐릭터에 걸맞는 호연을 보여준 배우였다.

‘맨발의 청춘’, ‘초우’, ‘하숙생’ 등 당시 청춘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연기하던 그가 이만희감독 작품에서는 우수에 찬 무게감있는 역할을 인상깊게 해내 그의 연기인생에 큰획을 그었다.

특히, 영화 ‘만추’에서 쫓기는 위폐범으로 교도소에서 휴가나온 여죄수역의 문정숙과 보여준 밀도감있는 내면연기는 그의 연기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긴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3-4년전 신촌 어느까페에서 있었던 실종된영화 ‘만추’의 비디오필름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당시 필자는 영화감독이며 이만희감독평전의 저자인 유지형 군과 영화연구가 정종화 씨, 한때 이만희감독의 조감독을 했던 까페주인 곽형등과 술을 마시면서 역시 이만희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모방송국 PD가 느닷없이 끼어들면서 자신이 이만희감독의 ‘만추’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는 거였다.우리들은 일단 경악했다.

다음순간, 정종화 씨가 소리쳤다. 그게 사실이라면, 1억을 줄테니 지금당장 가져오라고. 물론 그 PD의 말을 신뢰할 수 없어 한소리였는데 그는 끝내 정말 소장하고 있노라고 빡빡 우기는 것이었다.

결국 그사건은 1985년에 제작된 김수용감독의 ‘만추’로 판명되어 웃지못할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회엔 1960년대 충무로의 풍속도를 필자의 영화계 입문기를 통해 조망합니다.)

(정리/조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