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자본가 가족의 '몸개그', 파업 노동자를 막을 것인가?
뚱뚱한 자본가 가족의 '몸개그', 파업 노동자를 막을 것인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2.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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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호신술>

1930년대, 노동자들의 파업이 지속되고 부패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힘에 밀려가는 시점, 여러 개의 공장을 소유한 자본가 김상룡(신재환 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호신술을 배우기 위해 온 가족을 집합시키는 상룡. 하지만 이들의 호신술 교육은 그야말로 '쿵딱쿵딱', 넘어지고 엎어지는 사건의 연속이다. 상룡은 과연 노동자들을 '호신술'로 제압할 수 있을까?

▲ <호신술> (사진제공=국립극단)

국립극단이 선보이고 있는 연극 <호신술>은 1920년대 일본에서 노동자의 생활을 경험하고 귀국 후 노동의 가치를 증명하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카프'의 대표 작가가 된 송영의 1931년작 희곡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파업으로 맞서는 노동자들을 제압하려는 자본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이 작품은 최근 노동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로 보여진다.

자본가인 상룡과 부인 경원(최지연 분), 아버지 정수(김은석 분)와 딸 혜숙(박가령 분)은 모두 뚱뚱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옛날 모 광고에서 모델이 감자로 분장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돼지같은 뚱뚱보, 착취쟁이 뚱뚱보'라는 노래가 중간에 나오기는 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한 상룡의 가족들을 극도의 뚱뚱한 캐릭터로 보여주고 있다. 

▲ '착취 자본가'를 상징하는 상룡 가족의 뚱뚱한 몸매 (사진제공=국립극단)

연극 <호신술>은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연극의 재미를 잃지 않는 연출이 돋보인다. 상룡 가족과 의사, 변호사, 체육교사가 통닭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체육교사가 최근에 나온 '조선일보'를 들고 노동자의 파업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조선일보가 민주노총의 파업 및 시위 소식을 중점 보도하고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사설을 연이어 내는 모습이 1930년대 언론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60대 하인 춘보(이영석 분)를 비롯해 만담꾼으로 등장하는 젊은 하인들, 여기에 머리에 상투를 틀었지만 지금을 사는 평범한 복장을 입고 등장하는 스탭들(극중에서는 '하인들')의 등장도 눈에 띈다.  

이 스탭들은 '김 감독'이라고 등장인물들이 부르면 달려나와 와이어 기계를 만지고 인물들을 와이어 기계에 태우기도 하는데 연출은 이를 통해 이 연극 역시 스탭들의 '노동'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잠깐, 와이어 기계가 왜 나오냐고? 바로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호신술을 배우면서 상룡과 춘보, 경원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와이어 액션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허공을 날아가고 무대에 부딪히며 결국 무대를 부시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한 번씩 당한 뒤 복수를 하는 장면도 있으니 놓치지 말 것.

▲ <호신술>의 압권인 와이어 액션 (사진제공=국립극단)

이 작품은 결국 호신술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상룡의 집 앞까지 쳐들어와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경원을 잡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노동자들의 노랫소리와 이를 흥미진진하게 보는 춘보와 하인들, 그리고 갈팡질팡하는 상룡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안긴다. 약자가 강자에게 목소리를 내면서 이제 민중이 저항하고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도 딱 보고싶은 결말이다.

국립극단은 그동안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을 주제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이영녀>, <토막>, <국물 있사옵니다>, <제향날>, <운명> 등 근대 희곡들을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현대적 해석을 부여하고 있다.

30년대에 씌여진 희극 <호신술>이 80년이 넘은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극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재미있는 '몸개그'를 보고 싶다면 권할 만 하다. 충분히 재미있다.

<호신술>은 24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