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작가를 말하다3-도시의 이야기를 듣는, Listen to the City
[테마기획]작가를 말하다3-도시의 이야기를 듣는, Listen to the City
  • 박주원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2.11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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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국가의 개발에 의해 흐름을 잃은 주변부의 서사를 듣는 예술, 디자인, 도시, 건축 콜렉티브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며, 지속가능한 방식을 탐구하다

해질 녘의 노을은 눈이 부시게 밝았던 태양이 감추어 놓은 이야기들과 장면들을 보여준다. 낮에는 그림자가 없어 보이지 않던 어떤 공간의 먼지, 벽지 뒤의 틈, 스산한 가장자리와 숨겨져 있던 건물의 색 등이 노을이 녹는 순간 살아난다. 때론 사람들은 해가 떠 있는 평소에는 너무 눈이 부셔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형체와 맥락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리슨투더시티는 마치 노을처럼 국가와 사회가 밝은 빛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해 보이지 않았던 공간의 숨겨진 이야기를 보고, 아무도 듣지 않던 진짜 이야기들을 듣는다.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부터 활동해온 예술, 디자인, 도시, 건축 콜렉티브이다. 이들은 ‘공통의 것을 공통의 소유로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이를 나타낼 수 있는 ‘언어 생산을 하고 문제의 장소를 창작’한다.1)

서사를 잃은 도시의 이야기를 듣다 

▲<청계천 동대문 젠트리피케이션>, 2017, 작가 제공.

서울은 참으로 많이 변해왔다. 아니 서울을 포함한 이 나라의 지형도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에 마주하는 장면들은 여느 시대나 다르지 않았다. 자본으로 귀결되는 욕망들에 의해, 변화되기 이전 그 공간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어제의 모습이 허물어진 공간은 마치 이전의 것들을 모두 멸균(滅菌)시켜 버린 듯한 건물들로 도배되고 정리된다. 이전의 것들이 없어지고 새로움만이 남은 공간에 그곳을 기억할 서사는 없다. 그 공간에 집적되어 있던 시간의 흐름을 누가 되돌릴 수 있을까? 홍대, 청계천, 동대문 운동장 등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 공간의 특성이라지만 서울이 지닌 특성이 무엇인지 점점 정확히 말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서울의 지형이 변한 것은 최근 10년 서울을 책임졌던 이명박 前 서울시장(2002~2006년)과 오세훈 前 서울시장(2006~2011년)이 진행한 대규모의 도시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2)

이 두 명의 청계천 복원과 디자인 서울을 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은 공간이 지니고 있던 역사와 분위기를 가위로 오리듯 잘라내고 이질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정책은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이야기할 수 있으나 기구로 잘라진 종이의 면이 날카롭듯 그 공간에 존재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리슨투더시티는 『동대문 디자인파크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라는 책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오세훈 시장님은 당시 살아있는 권력이어서 DDP에 관해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동대문 운동장을 비판하는 책이 거의 리슨투더시티가 만든 책 하나 밖에 없어서 우리나라가 거의 독재국가가 맞다고 생각 하였다. 돈 있는 사람으로만 구성되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 거버넌스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도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하였고, 안티 젠트리피케이션(Anti-gentrification) 운동을 시작했다.”

리슨투더시티는 도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청계천, 동대문 젠트리피케이션(Cheonggyecheon, Dongdaemun Gentrification)>(2017)이라는 작품에는 청계천과 동대문 운동장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분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분들의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청계천에서 장사를 시작하여 숭인동 풍물시장까지 ‘돈을 벌만하면 해야 하던 이주’와 오세훈 시장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설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약 10년 전의 서울에서 벌어지던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없어진 그 공간의 이야기는 어떻게 메워지고 있을까,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추진되어 온 서울의 도시 설계는 많은 사람들의 서사를 끊어내고 진행되어 왔다. 리슨투더시티는 이렇게 국가의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끊어지고 갑자기 소멸해버린 상인 분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생각해보고자 ‘기억지도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박은선: 당시에 청계천에 관한 대형 프로젝트를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밀어붙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도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을 하게 되었다. '도시의 역사를 누구의 관점에서 기록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점상을 하시던 분들이 서울을 오게 된 이유와 어떻게 해서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 당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을 기록해보고자 하였다. 

이처럼 리슨투더시티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무자비한 개발, 그리고 그러한 국가와 도시에 의해 막다른 골목으로 삶이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박은선 작가는 “도시는 누구한테 속한 것이 아닌 공통재이므로 함께 관리를 해야 한다. 또한 땅은 부동산 가치로만 볼 수 없는 것인데 지금은 그런 것 외에는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였다.

리슨투더시티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인기지역으로 급부상한 서촌 지역에서 발생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인 ‘궁중족발’의 철거를 막기 위해 함께 자리를 지켰다. 또한 이들은 서대문역 근처의 옥바라지 골목 건물들의 철거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왔다.옥바라지 골목은 예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 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하며 머물던 공간들이 있던 골목이다.3) 2000년 초반부터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기업의 건설사 아파트가 들어오기로 되어 그 공간의 역사적 의미가 사라지게 되었다. 리슨투더시티는 영상인 <옥바라지 골목(Okbaraji Alley)>(2016)을 포함하여 2016년 5월 17일 옥바라지 골목 주민들이 강제퇴거를 당하던 날에 대한 기록, 골목에 관련된 발표회와 투어 등을 통해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 역사를 자세하고 꾸준하게 아카이브 해왔다.

▲<옥바라지 골목>, 2016, 작가 제공.

 장현욱: 친구 중에 옥바라지 보존 관련하여 활동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하자고 제안이 왔다. 장소가 가진 매력도 있었고, 이런 공간이 아파트로 대치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 활동을 시작했다.

박은선: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이 2015년 말부터 빠르게 진행이 되었고, 2016년 1월에는 벌써 많이 파괴가 되어 있었다. 서울시에 옥바라지 서사가 있으니 도시재생사업으로 남기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쪽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듯 했으나 옥바라지 골목에 대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며칠 밤을 새며 1920~1940년대 신문까지 보며 증거를 찾아갔으나 너무 늦었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였다. 재개발이 공공사업임에도 서울시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것인지 알게 되었고 또한 대단히 중요한 사람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옥바라지 골목 서울투어, 2016, 작가 제공.

 리슨투더시티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캔버스에 깔끔하게 담아내기 보다는 워크숍, 아카이브, 시간을 들이는 작업들, 영상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워크숍과 세미나를 통한 소통과 아카이빙을 통해 ‘갈 일이 없기 때문에 무감각한’4) 곳곳의 문제점들을 사람들과 함께 직시한다. 이에 관하여 박은선 작가는 “표면적이고 기만적인 예술을 지양하며 워크숍과 세미나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통해 담론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현욱 작가는 리슨투더시티의 작업을 “말을 거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리슨투더시티는 이미 존재하지만 언어로 풀어지지 않은,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만 웅얼거리게 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직접 그 공간을 밟아보는 투어로, 원래는 그 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과 함께 알아가는 워크숍으로, 그 공간을 삶의 터로 살아온 사람들과 하는 연대로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리슨투더시티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은 이 나라의 삶 자체가 부동산 외에는 다른 가치를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고, 많은 물자를 낭비하면서 안락한 삶을 추구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국가와 거대 자본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음소거한 채로 듣지 않으며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부를 거머쥐려는 사람들의 눈이 먼 욕심 하에 한국의 많은 것들은 훼손되고 정체성을 잃었다. 한 번 빼앗긴 것을 되찾는 데는 그냥 빼앗길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외침을 많이 또 크게 전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힘들게.

<고공여지도(High altitude sit-in demonstration in South Korea)>(2015)를 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고공농성의 연대기가 한반도의 지도에 펼쳐져 있다. 리슨투더시티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공농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했던 사람들은 바로 ‘비정규직, 간접고용, 위장폐업, 부당해고 등’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기업의 악덕함을 몸소 느낀 사람들이다. 농성의 흔적들에는 칼바람과 같은 사회에 자신의 외침을 들어달라고 높은 곳에 가서 소리치던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공여지도>, 2015, 작가 제공.

박은선: 우리나라는 사는 것이 모두 다 힘드니까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미안한 감정이 없다. 활동을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술과 삶을 분리시키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이 없으면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비단 철거, 노동 이렇게 구분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힘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들을 여유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 절실하게 말하면 들어줘야 한다고 느꼈고, 그런 것을 하는 그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성천>, 2012, 작가 제공.

도식화되어 나타난 지난 고공농성의 역사들은 빼곡하게 한반도를 메우고 있다. 이 지도에 고공농성의 역사가 일부분만 그려진 것이라는 점은 한국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공간인지를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 주체들은 그들 입맛대로 한국의 상황을 바꿔왔다. 고요 속의 외침이란 이런 경우일까? 이들이 그려낸 고공여지도의 모습은 국가라는 이름 안에서 소거되어온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국가에 의해 음소거 된 목소리를 다시금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한 리슨투더시티의 다른 작업은 4대강에 관한 작업이다. 이명박 前 대통령이 벌인 국가의 사업 중 가장 중요했던 4대강 사업은 약 2009년부터 2012년 봄 즈음까지 진행된 대규모 하천 정비 사업이다.

박은선: 4대강은 우연히 2009년에 답사를 가서 개발되기 전 강의 모습을 알고 계시는 지율 스님을 만났다. 그 당시 이미 강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밑 작업이 시작되어 있었다. 국가에서는 ‘이미 90%나 진행이 되었는데 만약 중단할 경우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이야기만 해왔다. 4대강이라는 사업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 사람들조차 이해를 잘 하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이 왜 잘못되었는지 공부를 계속했다.

▲내성천 생태도감, 2014, 작가 제공.

리슨투더시티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내성천에 가서 상황을 모니터링 하였고, 내성천이 파괴되는 과정을 기록하며 『내성천 생태도감』을 만들었다. 이들은 변화하는 내성천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에게 주지 않는 환경 소송의 원고적격(原告適格)을 받기 위해서 생태도감을 만들었다. ‘강이 이지경이 되도록 우리 사회가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는 사실, 문제의 본질은 생명이 죽어도 무반응한 사회의 죽음’이라는 책 앞부분의 인사말은 4대강을 그저 ‘뉴스 안에서만’ 바라보고 실제로 깊게 생각하지 않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내성천(Naeseong River)>(2012), <내성천 모래정수기(Sand Water Filter at Naeseong River)>(2015)라는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관련된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인 《사물학II: 제작자들의 도시》에서는 내성천의 멸종위기 종 세밀화들과 내성천 모래 정수기를 작품으로 전시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현재 국책사업에 의해 몸살을 겪게 된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서도 연대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해군기지가 완공되었으나 ‘강정은 해군기지의 부속 마을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생명평화문화마을’을 선포한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국가와 그들이 만들어낸 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평화의 가치를 펼치고자 한다.5) 리슨투더시티는 이러한 강정마을의 상황과 그들의 역사,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안녕, 강정』이라는 책을 펴냈다. 옥바라지 골목, 내성천, 강정마을 등 리슨투더시티가 관심을 가져온 공간들은 국가에 의해서 떠밀려 가버린 사람들의 공간이다. 이들은 이 세 공간을 <장소 상실(Placelessness)>이라는 영상에 담아 보여주기도 하였다. 장현욱 작가는 “어떤 국가나 자본의 힘에 의해서 장소에서 밀려낸 사람들과 그들이 잃어버린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여전히 거기에서 남아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라고 언급하였다.

▲<장소 상실>, 2017, 작가 제공.

리슨투더시티는 ‘평창올림픽반대연대(Anti-PyeongChang Olympics Alliance)’ 활동을 통해 국가 주도 사업으로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올림픽을 반대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평창 올림픽은 강릉을 포함하여 한국의 모든 지역에 즐거움을 주었던 스포츠 행사로 기억되고 있으나, 당시 그 잠시의 올림픽을 위해서 천연기념물들이 살고 있던 가리왕산은 파헤쳐졌고 인공 눈이 뿌려지고 자연훼손을 겪었다. 가리왕산 근처 땅 값이 오를 거라던 이야기에 돈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에 손을 댔고, 현지인이 아닌 타지에서 이익만을 보고 온 사람들에 의해 평창의 땅 가격이 올랐다.6) 장현욱 작가는 “계속 활동하던 사람들과 함께 커다란 스포츠 이벤트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행된 이후의 후유증 등 올림픽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개최지 설정, 경기장 건설,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 책임은 누가 지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였다.”라고 평창올림픽반대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한 “건전한 애국심이라는 것이 존재하겠지만 올림픽은 국가적 애국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이다.”라는 박은선 작가의 이야기는 올림픽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평창올림픽반대연대 포럼, 2018, 작가 제공

앞서 본 것처럼, 리슨투더시티는 국가나 거대 자본이 하던 것처럼 원래의 것을 없애고 파괴하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들의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느끼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유연한 방식을 고수한다. 리슨투더시티의 여정은 과거, 현재, 미래의 지속이 불가능한 개발을 일삼는 도시와 국가에 그저 굴복하지 않고, 이미 진행되어버린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주변부의 것에 대한 언어를 구축해가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2018, 작가 제공

리슨투더시티는 주변부의 것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장애인으로서 재난의 상황을 마주하고 탈출해야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진과 같은 종류의 재해를 잘 겪어보지 못한 우리나라는 포항에 온 지진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리고 포항 지자체는 인구 52만 명 중 5%(2만 6천 여 명)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이 재난의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7)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영상에서는 공영방송 등에 비해 한국농아방송(DBN)이 예산이 부족하여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느리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야기, 포항 사람들이 지진을 피해 머물렀던 대피소인 흥해 체육관조차 장애인이 있을 곳이 없었다는 이야기 등이 나온다.

과연 재난 상황에서의 대피에 대한 정보가 ‘방송국의 자본량’에 따라 다르게 송출되어도 되는 것일까? 포항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누구를 위한 매뉴얼일까? 목숨이 오고가는 재난에 대한 정보조차 수신자에 따라 접근이 달라서 정보의 불균형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옳은 사회인걸까? 리슨투더시티는 이러한 상황을 관찰하였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장애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심경이었는지 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재난 대비 워크숍을 진행했다.

박은선: 재난은 굉장히 불공평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이동할 수단이 없는 사람은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사회적 약자 층이 재난 약자 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에서는 ‘멀쩡한 사람들도 도망을 못 가는데, 장애인까지 챙겨야 하냐’는 의견이 많다. 재난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탈출할 방법이 없고, 죽으라는 이야기와 같다. 과연 그것이 맞는가? 단순하지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희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냥 단지 동작이 느리고 생각이 조금 느릴 수도 있어요. 순간적인 판단이 잘 안될 수도 있어요. 근데 그게 굳이 비장애인 장애인 구별해도 될까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이다. 그들은 재난 상황 속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있다는 느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위험한 상황만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심리적 재난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페미니즘도 언어도 없었는데 점차 구축되고 복잡해지는 것처럼, 주변부에 있는 소수자의 언어들을 우리가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박은선 작가의 말과 같이 리슨투더시티는 이렇게 주변부의 것들에 대해 가시화하고 언어화 해나가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자신의 책 『선망국의 시간』에서 “원래 새로운 가능성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벌이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전환을 촉발한다.”8)라고 언급하였다. 이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리슨투더시티는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직시하며, 스스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도시와 국가를 살려내고 사회적 사고 시스템의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몫이 없는 자들에게 몫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감성이나 인식 같은 것들의 위치를 옮겨줘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벽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사회에 조금씩 균열을 내며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이는 이들이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실명될 듯 밝았던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을이 질 때 어디엔가 숨어있던 도시의 목소리를 리슨투더시티는 오늘도 주목하고 있다.

[각주]
1)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참조, http://www.listentothecity.org/About
2)신현준, 이기웅 편,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푸른숲, 2016, p. 74.
3)도화지, 『기억의 조각』, 큰글사랑, 2016, p.228.
4)이미혜, 「습지생태 보고서<1>」, 『ALLURE』, http://bitly.kr/eWa4 (2018. 11. 15 최종 접근)
5)강정평화기행단, 『안녕, 강정』, 리슨투더시티, 2017, p. 8.
6)평창올림픽반대연대, 『올림픽 재해는 필요없다』, 2017, pp. 46-48.
7)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http://www.listentothecity.org/No-One-Left-Behind-1
8)조한혜정, 『선망국의 시간』, 사이행성, 2018, p. 15.


■글쓴이· 박주원(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했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부터 노트폴리오 매거진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썼다. 2017년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수원 대안공간 눈 <취향은 존재의 집> 공동 전시에서 '글로 배우는 연애' 전시를 기획했다.

*이 지면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비평가 지원 프로그램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박주원 작가가 각각 선정돼 4회에 걸쳐 4명의 작가론이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