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백남준과 나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백남준과 나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2.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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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 미술평론가

얼마 전에 국회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백남준 학술 세미나에 다녀왔다. 오랫만에 많은 지인들을 만나서 담소도 나누고 즐거운 식사 시간도 가졌다. 행복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으니 마냥 즐겁고 그냥 얼굴만 봐도 기쁘다.

유난히 지인들의 부음이 잦은 요즈음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삶인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 영화배우 신성일, 미술평론가 박용숙 선생 등등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고 해서 우리와 인연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 범인이 아닌 그들은 어떤 기회를 맞아 다시 소환돼서 그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학술적 업적이 반추되고 재음미되며, 재맥락화될 것이다. 

내가 백남준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미술대학에 다니던 70년대 중반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에 관한 정보는 그리 흔치 않았다. 당시 유일한 예술종합지인 공간에서도 그에 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백남준 선생의 이름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시점은 1984년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계기가 돼 KBS TV가 마련한 장시간의 인터뷰 이후다. 그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 ''예술은 사기다''는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이 되었다. 

퍼포먼스의 입장에서 보면 백남준이란 존재는 무당이다. 그것도 큰 무당이다. 따라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미 세상을 떠난 조지 오웰, 마샬 맥루헌, 아인쉬타인,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 비트겐쉬타인, 요셉 보이스, 이상 김해경 그리고 멀게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혼이 그의 머리속에서 혼효된 일종의 공수다.

번뜩이는 그의 예지와 통찰력은 미래를 예견한 큰 무당의 공수로 세상에 번졌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백남준은 마르셀 뒤샹이 이미 다 해 먹어서 남은 게 별로 없다는 식의 투정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비디오 아트는 따라서 미술사의 좁은 호리병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 삼국지에 정통한 그는 그것을 위한 전략에 고심했고, 드디어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세계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날로그 우편과 이메일의 경계선상에 서 있었던 그는 정보초고속도로의 개념을 통해 오늘날의 SNS를 예견하긴 했지만, 페이스북facebook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으로 대변되는 SNS 매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의 비디오 아트는 아날로그의 세계관에 머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마르셀 뒤샹은 1968년, 백남준은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뒤샹은 팩스가 상용화된 1980년대 중반보다 20년 전에, 백남준은 페이스북이 실용화되기 불과 몇년 전에 작고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던 백남준의 말을 떠올리며, 2009년에 나는 ''새로운 창조는 손끝에서 나온다(New creation comes out of the fingertips)''라고 SNS ART를 다룬 한 논문에서 밝히고 이를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그런 얼마 후에 페이스북이 나의 이 말을 어록으로 공지해서 크게 고무됐던 기억이 있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른 사건은 무당의 세계에서 보면 신내림, 즉 세습무의 승계이다. 나는 이 사건에 주목하고 언젠가 그를 만나면 그의 넥타이를 자르리라고 다짐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1995년 그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을 때 힐튼호텔 지하 복도에서 딱 마주쳤던 것.

그런데 아뿔싸! 그의 목에는 넥타이가 없지 않은가. 기회를 놓쳐  못내 아쉬웠던 나는 훗날 행위예술가인 문정규와 홍오봉에게 당신들이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꼭 백남준의 넥타이를 자르시오 하고 당부했는데, 그들은 실현하지 못했다.

그뒤 나는 오노 요코가 백남준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위안을 받았지만 그것은 세습무의 전통과는 맥락이 다른 것이다. 

여담이지만 수년 전에 나는 대장의 미술사라는 개념을 구상하고 이를 간단한 도상과 함께 발표한 적이 있다. 서구의 미술사가 입에서 위장까지 이르는 식도의 쭉 뻗은 선형적 구조를 지닌것이라면 미래의 세계미술사는 꾸불꾸불한 대장의 구조처럼 리좀적 내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서구의 미술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북아메리카의 미술이 다 함께 존중되고 공존하는 미술사, 그래야 문자 그대로 진정한 세계미술사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초국가적 존재로서 유목민적 삶을 살았던 진정한 자유인 백남준의 생애와 예술이 오늘에 와서 재음미되며 재평가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