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국악명인 심상건 따님과의 조우
[성기숙의 문화읽기] 국악명인 심상건 따님과의 조우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12.1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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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잠 못 이루는 밤이 두 달째다. 지난 10월부터 중고제 국악명인 심상건(沈相健 1889~1965) 일가에 대한 미국 현지조사 준비로 바쁜 일상을 보냈다. 심상건 따님들의 연세가 89세, 98세 등 고령에 가까워 더욱 조바심이 났다. 미국행 출국날짜가 다가올수록 조바심은 날로 심해졌다. 

우선 철저한 준비가 급선무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설파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심상건 일가의 미국 현지조사에서 곱씹어야할 화두로 다가왔다. 심상건의 따님들이 초고령이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한 사전조사는 필수적이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심상건과 그의 딸 심태진이 1948년 조택원무용단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간 이후 현지에서의  활동상이 담긴 자료를 찾아 모았다.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발간된 『국민보』에 기록되어 있는 조택원무용단 혹은 심상건·심태진 관련 기사를 수집했다. 꽤 구체적인 내용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어 큰 도움을 줬다.

신무용가 조택원의 평전 『가사호접』(1973)에 수록된 미국활동 내용도 되짚었다. 연낙재 소장 조택원의 미국활동 공연자료를 확인하는 작업도 병행되었다. 이 모든 자료를 토대로 심상건 일가의 미국행적을 연보로 작성했다. 미국 현지조사에서 정확한 질문을 통한 효율적인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지난 10월 31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펜서콜라를 비롯 애리조나주의 피닉스, 캘리포니아주의 LA 등 4개 도시를 경유하는 10여 일간의 강행군이 시작됐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애틀란타를 거쳐 마이애미에 이르기까지 무려 18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갇혀 지냈다. 심신의 피로감을 떠안은 채 숨 가쁜 여정을 이어갔다. 

11월 1일, 마이애미에 위치한 심태임 댁을 방문했다. 89세의 심태임은 쾌활하고 낙천적이며 활력이 넘쳤다. 인터뷰 내내 유쾌함을 선사했다. 한국무용사에서 공백기로 남아있는 이른바 해방공간(1945~1950) 시기 무용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증언을 쏟아냈다. 의외의 소득에 전율을 느꼈다.

여기서 심태임은 누구인가? 그는 심상건의 9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모의 사랑은 물론이요, 형제자매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전한다. 피아노학원에 다니라고 준 월사금을 발레학원비로 충당했다며 화통하게 웃는 모습에서 막내 특유의 당돌함이 스쳐지나간다. 

심태임의 발레 스승은 일본유학파 정지수다. 훤칠한 키에 미남자였던 정지수는 당시 한국발레를 짊어질 유망주로 손꼽혔다. 해방직후 좌우익의 이념대립과 그로인한 사회적 혼란은 예술계로 확산되었고 무용계 역시 이러한 시대적 광풍(狂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시절 정지수는 서울 광화문에 무용연구소를 열고 창작활동과 후진양성을 병행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러나 미래가 촉망되던 정지수는 월북하였고 이후 북한무용 토대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고제 국악명인 심상건의 막내딸 심태임이 발레무용가 정지수의 제자라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심태임은 정지수발레연구소 1기생으로 입소하여 1946년 부민관에서 개최된 신작무용발표회에 출연한 경력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공연에 출연할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부민관에서 공연이 있던 날, 회식연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던 아쉬움을 털어놨다. 부모를 속이고 몰래 출연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여 대문을 들어섰으나 대청마루에 지키고 앉아 있던 모친에게 발각되어 혼났다는 얘기를 거침없이 토해낸다.

연구소 자축연을 위해 집에서 녹두며 팥을 퍼갔던 일, 서울 무교동 집 근처 태평로를 누볐던 옛 이야기를 실감나게 쏟아내는 모습이 실로 정겹다.

심태임은 그토록 소망하던 발레리나의 꿈을 스승 정지수의 월북으로 접어야 했다. 그후 파병미군과 결혼, 1950년대 중반 도미(渡美)하여 현재 89세의 나이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남편 더그 머독은 백인으로 엘리트 출신 군인이자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아내와 아내 가족을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심상건은 1960년대 중반 도미하여 그곳에서 작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배경으로 미국에 갔는지, 미국에서의 말년 모습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번 미국 현지조사에서 이 모든 의문이 풀렸다.

부친 심상건을 미국으로 초청한 것은 바로 막내딸 심태임이었다. 1965년 병 치료를 위해 부친을 미국에 초청했으나 그해 12월 작고하였고 애니조나주 피닉스 그린우드묘지에 안장했다고 한다.

남편 더그 머독이 미군 소속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의 초청이 가능했다고 전한다. 비록 부친이 이국땅에 묻혔지만 일평생 가야금의 명인으로 헌신한 업적을 감안하여 유족들이 묘비석에 가야금을 새겨 넣었다는 사연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심태임은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몸소 발레의 기본동작인 아라베스크를 비롯 주떼, 셰떼 등 다양한 동작을 구사해 보였다. 균형 잡힌 몸매와 정확한 포즈에서 미처 꽃피우지 못한 감춰진 재능이 감지되었다. 구순 가까운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활력이 넘쳐났다.  

그러나 아쉬움도 토해냈다. 그녀는 인터뷰 사이 사이 담배를 피어물고 거실과 정원을 오고갔다. 날개 접힌 발레리나 꿈의 아쉬움이 담배연기로 산화되어 공중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발레를 지속했다면 분명히 성공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서는 회한이 가득 묻어났다. 안타까웠다. 소망하는 꿈을 접은 것이 어찌 개인의 탓이랴.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심태임 개인의 삶이 뒤엉켜 드라마틱한 여정을 빚어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공간과 6·25를 거치며 파병미군과의 결혼, 그리고 미국이주 등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적 삶의 노정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듯 싶다.

심신의 피로에서 비롯된 잠 못 이루는 밤은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온몸으로 살아낸 국악명인 심상건 막내 따님의 예사롭지 않은 삶의 여정을 반추하면서 더욱 누적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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