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낭만주의자, 대학로에서 책방을 내다
무모한 낭만주의자, 대학로에서 책방을 내다
  • 이은영기자, 박솔빈 인턴기자
  • 승인 2009.09.24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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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이음 책방ㆍ갤러리 한상준 사장 인터뷰

 

혜화역 1번 출구를 나와 20미터 쯤 걸었을까. 얼마 전 책방을 찾아 온 대학로를 뒤지고 다니다 발견한 이음아트 책방. 술집과 밥집이 즐비한 골목의 한 구석, 그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책방 간판을 발견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책냄새 가득 찬 공간이 드러났다. 대형서점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좁게 느껴질 수도 있는 크기지만 책방을 비롯, 갤러리, 심지어 카페까지 있었다. 갤러리에서는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감상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높게 쌓인 책들을 등지고 앉은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영락없는 ‘책방 주인 같은’, 한상준 사장님을 만나 대학로에 서점을 열게 된 까닭(?)을 들어보았다.

요즘 책방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중에서도 책방 찾기 어려운 곳으로 손꼽히는 대학로에 문을 여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엔 단순히 책이 좋아 시작했어요. 원래 살고 있던 동네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사람 많은 곳에서 하고 싶어져서…. 2005년 제가 문을 열 때만 해도 대학로에는 책방이 없었어요. 그때 이미 책방이 없어지는 추세였죠.

사실 헌책방을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새 책을 놓게 됐어요. 좋은 헌책을 구하기 어려웠거든요. 점점 헌책 수는 줄어들고 결국 새 책만 남아 ‘새 책방’이 됐어요. (웃음)

아무래도 대학로의 특성상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데요. 책은 얼마나 보유하고 계신지요? 

보유하고 있는 책은 만 권 정도예요. 말씀대로 대학로라는 지역 특성상 출판하시는 분, 연극하시는 분 등 문화예술 관련 분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그 쪽 책들이 많아요. 요즘엔 연극 관련 책들을 비치하려 하고 있어요.

책방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같은데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이 아껴주셔서 3년 정도 되니까 자리를 잡았어요.아직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을 정도라서 어떤 분은 절 무모한 낭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2007년에는 문을 닫고 싶은 갈등에 휩싸였던 적도 있어요. ‘내가 정말 이 일을 해야 하나’하고, 아직도 고민하고 있지만 주변(손님들)에서 힘을 줘서 버티고 있는 셈이죠.

책방 속에 갤러리가 있는데 갤러리는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갤러리 오픈 한 건 한 달 쯤 전이구요. 원래 저 자리가 중고서적이 있던 자린데 좋은 책을 찾기가 어려워서 전시, 행사 등을 하는 다목적공간으로 바꿨어요.

책방을 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일반 회사에 다녔어요. 관리직, 유통직, 마지막으로 그만둔 회사는 총무부서에서 일했어요. 책을 좋아하고 문예창작과 출신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책 관련 일은 한번도 안 해봤어요.

책 디스플레이가 특이해 보입니다. 디스플레이는 어떤 기준으로 하시는 건가요?

처음에는 제 관심사에 치중했는데 지금은 손님들에게 맞추고 있어요.

90년대 후반 조·중·동 신문 뒤를 보면 사설이 굉장히 많아요. 거기에 나온 책들을 찾아 목록을 작성해요. 그 무수히 많은 책 중 좋은 책-보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들을 찾아야 돼요.

광고나 대형 출판사의 물량공세와는 거리가 먼 책들 중 좋은 책을 골라내고 있어요. 작은 책방에서는 마케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책들이 누워 있는 건… 일부러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 때문에 가지런히 놓을 수가 없어요. (웃음)

얼마 전 이음책방에서 박민규 작가의 독자와의 대화 행사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초기에는 책방을 알리는 행사였는데 이젠 거의 손님들의 행사가 됐고 저는 장소 제공만 하고 있어요. 책방이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보니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주세요.

매주 수요일 7시 ‘책방 친구들’이란 모임이 있는데 주로 책방을 활성화시키는 일,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지금은 이 모임을 확대해서 일반 손님들도 참여하고 있어요.

본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요.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이런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작가로서의 삶을 생각하게 된거죠. 또 장준하의 ‘돌베개’. 세계사 선생님의 권유로 읽었던 책이예요.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도요. 그 책에서 애벌레들이 목적도 없이 다들 어딘가로 기어올라가잖아요.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아무것도 없어 다시 내려오는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죠. ‘꽃은 무엇이고 나비는 무엇인가’

사장님께 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책은 좋은 친구. 가리켜주는 나침반, 방향을 가리켜주는 친구죠. 어렸을 때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때 문학책, 전공을 문예창작과로 결정한 일까지… 책은 습관화 된 생활의 일부예요.

인터뷰 이은영 기자 young@sctoday.co.kr
인터뷰 정리/사진 박솔빈 인턴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