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후, 100년 후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0년 후, 100년 후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12.2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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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르셀 뒤샹> 전

1917년 하나의 작품이 논란이 됐다. 평범한 화장실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한 것이다. 이 전시는 뉴욕의 현대미술을 위해 예술가가 운영하는 포럼인 '독립예술가협회'가 주최하는 전시였다. 하지만 소변기를 전시한 작품을 두고 협회는 투표를 통해 전시를 불허한다.

그 작품을 전시한 작가는 협회가 민주주의와 수용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를 시험하려 했다. 그리고 협회가 전시를 불허하자 그는 이에 항의하며 사임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은 평범한 기성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를 예술적 맥락으로 살펴보는 '레디메이드' 개념으로 이어지게 된다.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이 지금 우리 곁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전을 통해 말이다. 올 초 국립현대미술관 라인업 발표 당시 몇몇 기자들이 '마르셀 뒤샹이다'라고 귀엣말을 한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 정도로 관심을 모았던 전시가 이 전시다.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Louise and Walter Arensberg Collection 1950

이 전시는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의 공동 주최로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린 회고전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해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핵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다수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는 마르셀 뒤샹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미남자'였던 뒤샹은 당시 프랑스의 화풍은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을 받아들이며 그림과 드로잉을 통해 습작을 시작했다. 그는 조금씩 눈이 아닌 '정신'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큰 유리>로 대표되는 레디메이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정신적인 추상의 세계를 담아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비롯해 기념비적인 구조물로 불리는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레디메이드의 첫 작품에 해당되는 <자전거 바퀴>,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표작 <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뒤샹의 질문에 대한 자답이다. 

▲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磁器)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125th Anniversary Acquisition. Gift (by exchange) of Mrs. Herbert Cameron Morris 1998

그는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완성'이라고 보지 않았다.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완성은 자신의 작품이 공개되고 그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호불호를 평가하고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까지 다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바라보는 관객은 현 시대의 관객이 아니다. "나는 50년 후, 100년 후의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이런 면에서 뒤샹의 작품은 '여전히 제작 중'인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생각해보는 키워드가 있다. '체스'와 '누드'. 그는 체스에 빠진 나머지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고 체스 활동과 함께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물론이고 뒤샹의 <샘>은 누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남성 소변기를 통해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누드화를 제시한 것이 뒤샹이다. 단순히 여체를 그리는 것에서 몇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현대미술은 어떻게 보면 관객을 향한 끊임없는 제안이다. 그 초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마르셀 뒤샹이었고 그렇기에 그를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여기는 지도 모른다.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함께 이야기하는 단계까지 이어가야 비로소 뒤샹의 전시를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번 전시를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현대미술, 나아가 현 시대의 미술이 시작된 모습을 뒤샹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시 전경, 뒤샹의 <자전거 바퀴>가 보인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에탕 도네>를 통해 자신이 해왔던 작업의 통일성을 지켜왔다. 약간은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뒤샹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뒤샹다운 최후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우리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리고 후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뒤샹의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이 될 것이다. 작품을 보며 뒤샹의 작품을 완성해보자. 이게 이 전시를 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마르셀 뒤샹> 전은 2019년 4월 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