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속으로] 김치, 김장문화, 과연 누구의 문화인가.
[이수경의 일본속으로] 김치, 김장문화, 과연 누구의 문화인가.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8.12.31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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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정체성을 태연히 잃어가는 한국사회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참으로 힘든 연말 연시를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33년간의 일본 생활의 힘든 과정을 버티게 만들어 주신 어머니가 12월에 돌아가셨고, 대학원 개편 등의 학교 업무가 태산처럼 쌓이며 인간 이수경의 개인 감정보다 사회적 수퍼우먼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도피하고픈 심경으로 가득했다. 

위독한 상황이 반복되며 한일 노선을 급왕래한 12월, 솔직히 넋나갈 여유조차 없었기에 어머님을 보낸 뒤 도쿄로 돌아가면 쉬고 싶었지만 도착해서는 업무 재촉에 쫓기느라 힘들게 버텨야 했다. 처음엔 음식을 만들 기력조차 없었기에 학교 근처의 식당들을 다니며 외식으로 떼웠으나 그것도 지겨워 집 냉장고를 열었다. 

한국식품점을 통해 김치맛이 나는 J회사의 김치를 종종 구입해 왔는데, 냉장고에는 김치가 떨어진 상태였고, 하필 연말이라 식품점 통신 판매 조차 정월 휴무에 들어갔었다. 

위장병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왔지만 피로 탓인지, 아니면 오랜 일본 생활에서 가장 결핍되었던 한국음식인 탓인지 내 몸은 지쳤을 때 항상 김치를 요구했었다. 그랬기에 텅 빈 냉장고를 보다 못해 김치를 먹고 싶은 강한 욕구에 결국 근처 대형 슈퍼마켓 몇 군데를 들러서 수입 김치 혹은 재일동포 기업이 만든 몇 종류의 김치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랜만의 집밥을 즐기려고 김치를 열어서 먹은 순간…. 발효식품으로 새콤하고 아삭거리는 김치 본래의 맛은 커녕 다시마 국물에 걸죽하게 깔린 배추가 배추가 제 멋대로 놀고 있는 듯한 맛들이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예전에는 미처 못 느꼈지만 최근 한국을 자주 다녔고, 특히 남도 지역의 순천 낙안읍성, 영암 등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김장철 어머니들의 제대로 만든 김치들을 먹고 다닌 탓에, 하나라도 김치다운 김치를 먹고 싶어서 구입해 온 각종 회사의 김치통을  열어서 맛을 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짜고 묘한 냄새가 나는 걸쭉한 김치에 점점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김치야? 이게 무슨 발효식품이란거지? 이 미끌거리는 식감을 일본 사람들은 김치라고 먹는건가? 김치 종류가 200가지가 된다지만 무엇보다 새큼 깔끔하고 정갈한 뒷 맛이 일품이라야 김치가 아닌가? 이건 배추에다 고춧가루와 다시마로 비벼서 젤라틴이라도 부어 놓은건가??? 도대체 왜 이러나, 한민족!!!' 

▲ 일본의 슈퍼에서 파는 '걸죽 미끌거리는' 김치

급기야 그 김치들을 만든 회사는 물론, 김치맛 하나도 제대로 못 내면서 수출까지 하여 미끌거리는 변형된 김치맛을 보급시키는 비즈니스에 속까지 상했다. 김치 문화를 향유해 온 민족으로서 이런 맛을 판매하다니 어쩜 이렇게 민족 전통문화를 속이고 장사를 하는걸까???   

도대체 내가 무슨 음식을 먹는거지???

그런 생각이 드니 더더욱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요리는 모든게 정성스러웠고, 맛깔스러웠다. 무엇보다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는 고집스러우셨다. 

특히 김치는 어머니 특유의 종류별 젓갈과 야채로 양념을 만들어 김장철에는 배추 150포기 200포기씩 해서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고, 이웃이나 친인척도 모이는 김치 커뮤니티 역할도 하셨다. 각종 기본 양념에 생선이나 배, 굴, 게, 소고기 육회 등을 듬뿍 넣어 만든 김치는 지금 생각하면 환상적인 맛이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왕소금으로 절였던 산같이 쌓인 배추를 겹겹이 정성들여 양념을 하면서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그 분들의 옆에서 어린 우리 남매들은 마냥 즐거워 했고, 겉절이에 싱싱한 굴을 넣은 김치를 주시면 자극적인 매운 맛 보다 부드러운 김치 맛에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몇 단지를 담고 나서 기력이 없으신 어머니의 김장 고생을 다독거리며 어깨를 만지시던 아버지의 애정 표현이 보기 좋았고, 우리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으로 겨울을 따스히 보냈었다.

그런 두 분을 이 지구촌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지금, 더더욱 가슴 시리도록 그립고 보고싶은 이유는 우리에게 소박한 최상의 행복을 주셨던 어린 시절의 그 겨울철 김장 김치가 너무나도 먹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 구조를 세계가 인정하였기에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인이 인정받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건만 지금 유네스코 김장문화는 과연 한국인의 문화가 되어 있는건가??? 과연 우리의 전통 문화로 보전 유지되고 있는걸까? 

필자는 학회 발표나 연구 조사를 위해 세계를 많이 돌아다닌 셈이다. 
 
젊었을 때는 냄새 탓에 김치가 나오는 한식 보다는 양식과 중식, 일식을 즐겼고, 그런 것을 먹을 기회가 많기도 했다. 하지만 중년 이후 세상을 돌다보니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것은 그 어느 세계의 음식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각종 스파이스가 하나로 조화되어 승화시킨 김치의 맛이었다.

지인들은 내 몸의 피가 김치국물로 되어 있을거라며 놀릴 정도로 김치는 내게 각별한 음식이었고, 세상을 돌아다녀도 국내서 먹었던 그런 김치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터득하면서 더더욱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안식년 때 요리를 잘하는 친구와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다 서양음식에 이골이 나서 김치컵밥 세계화로 아예 김치맛과 김치냄새를 전세계인이 공유하도록 하자며 우스개 제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역사학 교수로 널리 알려진 그녀는 손 맛이 특히 좋아 필자의 케임브리지 생활 때 그 귀한 한국음식으로 필자를 행복하게 해 준 친구였다. 

그런 필자의 김치 집착은 오랜 시간 일본에서 제대로 된 김치를 먹지 못 했던 이유가 배경에 있고, 일본의 수분 많고 단 배추나 무우로는 김치맛이 금방 변해버린다는 단점 때문에 몇 번 만들다 실패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강연 혹은 발표 요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김치나 한국음식을 즐기기 위해 학교를 빠져 나가는 획책까지 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변한 탓인지 한국의 유명 맛집, 음식점에서 나오는 고급 요리에 곁들여진 김치 조차 이미 내가 아는 김치맛과는 동떨어졌고, 필자가 맛있게 김치를 먹은 곳을 말하라고 하면 국내에서 손 꼽을 정도로 대한민국 김치 사정의 변화에 대해 큰 실망을 한 적이 많다.

그런 필자를 아는 친구들이 최근 광주나 순천 낙안읍성, 영암 등을 돌 기회를 줬고, 각지서 만나는 김치맛에 기뻐서 김치를 몇 접시나 더 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인 김치가 요거트 보다 유산균이 180배가 많고, 다양한 영양소로 수퍼 푸드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런 김치의 중요성과 보전은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 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계승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식품외식경제]지에 따르면 2017년의 국산 김치 총 수출량이2만4311t이고, 김치 총 수입량이 27만5631t으로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한다(식품외식경제, 2018년3월12일자 4-5면 참조). 게다가 그 수입량의 99%가 중국제이고, 조선어 마저 잃어가고 있는 조선족 동포 문화에 일임한 김치 문화, 과연 대한민국 김치는 안녕하십니까??? 

수 많은 건강 식재와 양념이 어우러져 최고의 하모니를 이루는 김치의 맛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 혹시 한국인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한국의 음식문화 중에서도 최고의 과학적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김치의 맛. 그리고 인류가 계승해 가야하는 김장 문화의 종주국. 

하지만 한국은 아쉽게도 김장문화, 김치맛을 잃어가고 있고, 김치 문화가 퇴색되어 일본의 마켓에서 보는 것은 온통 배추가 다시마 양념물에 미끌어져 숨이 죽은 듯하다.

일본인 내 제자는 김치여왕이라 불리며 전통적 김치맛을 보다 다양한 형태로 보급하기 위해 한국에 공부하러 다니는데, 정작 김치를 지켜야 할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김치맛을 전수받지 못한 수입품 김치로 물들어지고 있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구차스런 변명은 말자. 자신들의 맛을 잃어가는 대한민국을 지키며 우리 맛 보전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정부나 자치체의 역할이 아닐까? 이것은 한국인, 아니 한민족이 공유해 온 자산이자 자존심 문제가 아닐까?

일본 땅에서도 쉽게 한국의 김치맛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제나 올까? 급변하는 글로벌 사회 속에서 자문화를 잃고 난 뒤 후회말고, 우직하게 우리 맛을 지켜 나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이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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