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임영순의 평양검무’와 국수호의 ‘춤 詩 오딧세이’
[이근수의 무용평론] ‘임영순의 평양검무’와 국수호의 ‘춤 詩 오딧세이’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8.12.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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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사람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춤은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수건을 잡으면 살풀이가 되고 소리를 만나면 가무가 된다. 북채를 잡으면 북춤이고 장삼을 입으면 승무가 된다. 무용수의 두 팔이 칼을 잡고 추는 춤이 검무(劍舞) 혹은 검기무(劍器舞)다.

민간에서 가면을 쓴 채 추던 춤이 궁중 정재(呈才)로 바뀌면서 가면을 벗고 짧아진 칼을 무구(巫具)처럼 돌리는 춤으로 변모했다. 무무(武舞)전통에 따라 남색, 빨강, 노랑 등 화려한 전복에 전대를 차고 전립을 쓰고 피리와 장구, 타령장단을 사용하는 검무는 춤사위가 빠르고 동적이다. 각 지방에 설치된 권번(券番)에 따라 진주검무, 경기검무, 평양검무, 통영검무 등으로 차별화되고 이 네 가지가 각각 지방문화재로 선정되어 있다. 

‘임영순의 화∙향∙미∙색(華∙香∙美∙色)’이란 제목으로 공연된 평양검무(12,13~16)를 보았다. 포이동 M극장이 2014년, 국수호로부터 시작해 매년 기획해온 명인명무전의 7번 째 무대로 진주검무나 호남검무 등 다른 검무에 비해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춤이다. 북한 춤을 희화화(戱畵化)하면서 2018 국제공연예술제(SPAF,10,7~11.14)에 소개된 안은미의 어설픈 북한 춤 흉내 내기에  실망했던 차에 북한 춤의 원형을 진지하게 살려낸 평양검무를 발견한 것이 반가웠다.

화향미색 네 파트로 나누어진 첫 순서인 화(華)에선 7명 영재반 어린이들과 함께 임영순이 홀 춤으로 검무를 선보인다. 평양검무의 칼은 한 자 정도 길이에 칼 목이 접히고 칼등과 날에 나비 모양의 장식을 여러 개 단 귀여운 모습이다. 손목 스냅을 많이 쓰고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가 좌우로 교차시켜 넓게 벌리고 발에서 머리 위 까지 칼을 높이 들어 올리는 움직임이 역동적이다.

두 번 째 향(香)에선 김유미와 정미심이 추는 쌍대무(雙對舞)가 보여 지고 임영순이 추는 평양살풀이가 뒤를 잇는다. 쌍대무의 절반은 손춤이고 나머지 반은 칼춤이다. 평양살풀이는 흰색 수건을 손에 들고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었다. 검정 치마 속에 받쳐 입은 노란색 치마 단이 겉치마보다 길게 내려와 있다. 버꾸춤, 진도북춤, 진쇠춤으로 구성된 미(美) 공연 후 완판평양검무로 90분 공연의 막을 내린다.

2인무인 쌍대무(13분)와 두 개의 쌍대무를 묶은 4인무(14분)가 연속된 27분간의 춤이었다. 무릎으로 앉아 칼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나 뒤꿈치로 땅을 먼저 딛고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춤사위가 독특하고 여기들의 요염함을 뽐내면서도 힘을 느낄 수 있는 춤사위가 북한 춤의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준다. 평양검무 제1호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임영순과 평양검무 이수자 및 전수자로 구성된 출연진의 춤기량이 고르고 모두의 춤은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2001년 이북5도 문화재위원회에서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평양검무가 검무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와 함께 남과 북을 대표하는 검무로서 오래도록 전승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가의 창작욕은 무한대다. 불과 3개월 전 ‘무위(無爲)’공연을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했던 국수호가 ‘춤 詩 오딧세이’(12,12~13, SAC아트홀)를 가지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중국, 일본, 인도와 한반도 상의 가야, 고구려, 백제 등을 넘나들며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춤의 역사를 한 무대에 담고자 한 의욕적인 춤이다. 국수호와 김진아가 차례로 출연하여 중국의 고전시인 도연명 시의 고란조(孤鸞操)와 별학조(別鶴操)를 춤추면서 선비의 청빈함과 여인의 사모곡을 노래한 것이 시작이다.

2장에서 다섯 명 남성군무로 보여준 가산무악(駕山舞樂)은 가야를 통한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를 상기시켜주고 네 번째 춤 ‘학탄신’(신동엽)과 다섯 번째 춤 ‘비천’(류석훈)은 한 마리 학의 비상을 통해 한반도의 기상과 비애를 표현한다. ‘금시조’(최태헌)는 인도와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교역로를 통해 전해진 전설의 새 금시조(金翅鳥)를 살려낸 춤이다.

조문주의 낭송으로 홍정윤이 춤춘 ‘월광’은 백제가요 정읍사를 텍스트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정을 살갑게 그려낸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철새 제비의 행로를 양국의 문화적 교류에 빗대면서 판소리 흥보가의 한 대목을 5명 여인군무로 보여준 것이 마지막 춤 ‘제비노정기’다.

한국 춤의 원형을 찾기 위해 동양의 문예를 섭렵하고자 한 국수호의 의욕에 비해 기획이 성급했던 탓일까. 단순한 조명, 조절되지 않는 음향 등 극장시설의 열악함과 맞물려 공연진행엔 지루함이 있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회심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 보이기엔 연출의 묘와 함께 예술 경영적 배려가 아쉽게 느껴진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