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젊은이들이 안타깝다
[김승국의 국악담론]젊은이들이 안타깝다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 승인 2018.12.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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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봄철만 되면 온 국민이 중국 발 황사로 고통을 받았는데, 요즘은 계절과 관계없이 미세먼지까지 가세하여 그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세먼지는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어 사망률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미세먼지 입자들은 폐와 혈중으로 바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공기도 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5,60대 기성세대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지냈지만 어찌 보면 참 좋은 시절을 살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웰빙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무공해 유기농 채소를 먹고 살았고, 체육 수업이 끝나면 수돗가로 달려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음껏 물을 들여 마실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방과 후가 되면 마을 가까이에 있는 시냇가나 물웅덩이로 달려가 마음껏 물놀이를 하고, 물고기도 잡으며 놀았다. 요즘 같으면 될 법한 일인가?

기성세대가 살았던 시절은 자연 환경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청춘 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 뛰는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그리워하며 몇 년이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만나자마자 하루에 사랑의 모든 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쓰다가 만 편지’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온 마음을 편지에 담아 상대방에게 보내고 답장을 목 놓아 기다리는 낭만이 있었다. 요즘은 이메일로 사랑 고백의 마음을 전송하는 것은 양반이고, 한 줄의 문자 메시지나 이모티콘 원 클릭으로 마음 전송을 끝낸다. 한마디로 낭만이 사라진 시대다.

고도성장의 시대 청춘을 보낸 기성세대에겐 기회가 많았다. 공부를 태만히 하고 세월을 보내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고 달려 들으면 학교 성적의 역전이 가능하였다. 삼류 중학교에 다니다가도 마음을 모질게 먹고 공부하면 일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삼류 고등학교에 다니다가도 모질게 마음먹고 공부에 매달리면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흔히 지켜보며 자랐다. 요즘엔 전설 같은 이야기이며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이젠 초등학교에서 일단 학력이 떨어지면, 중학교에서 반전이 안 되고, 그것이 고등학교로 그대로 연장되며 대학으로 이어진다.

사람팔자도 예전엔 신분 수직 상승이 많았다. 변두리 대학을 다니다가도 모질게 마음먹고 고시준비를 하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수직 신분 상승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요즘은 천신만고 노력하여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에 합격이 되도 검사나 판사로 임용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고, 변호사가 되어도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5,60대 기성세대들이 자라던 시절은 고도성장의 시대라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바로 취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취업을 한다 해도 바로 정규직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보다 계약직이나 인턴 직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다.

얼마 전 전통예술 관련 모 국립기관에서 주관하는 신진 국악단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여 젊은이들과 토론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들은 공모를 통하여 선발된 명문 대학의 국악과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역력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서양음악 전공자의 경우는 더하다. 그들은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유럽 등 해외로 유학을 떠나 6년 정도 죽어라 공부하고 돌아와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도 어려워 택배 일이나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서글픈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아마 사실일거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한없이 안쓰럽게 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자랐지만 결코 기성세대들보다도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삭막한 시대에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그저 어리고 한심스럽게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그들의 생존 환경을 개선해주기 위하여 어떠한 역할과 조력을 할 수 있을지 꼼꼼히 따져보고,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 그것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