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이야기]도시야경, 다르게 바라보기
[백지혜의 조명이야기]도시야경, 다르게 바라보기
  • 백지혜
  • 승인 2018.12.31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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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도시의 모습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삶의 공간과 사회적인 사용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형식과 기능이 같아도 다른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 어떤 규칙이나 명령에 의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특히 서울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기에 서울의 경관적 특징을 이야기할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귀납적” 경관이다.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딱히 설명할 틀이 없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들어선 빽빽한 경관요소는 그 나름대로 질서를 만들고 혼란속의 조화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봄 코펜하겐을 여행하면서 북유럽 도시들이 갖는 알지모를 삭막함을 제대로 경험했다. 3월인데도 눈이 내리고 봄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싸늘한 공기는 도시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강 뒤편으로 엽서의 사진에서 나온듯한 빨갛고 노란 벽의 건물은 아름다웠지만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음이 아쉬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을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하는건 Olafur Elison의 작품 Your Rainbow Panorama를 통해 도시를 바라본 독특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덴마크 태생 설치미술가 Olafur Eliason은 ARoS Aarhus Kuntsmuseum의 Roof top에 폭 3m, 길이 150m의 거대한 유리통로를 설치하고 무지개색 필름을 부착한 작품 Your Rainbow Panorama에서 유리통로를 걸으며 관람자가 작품의 일부가 되고 관람자가 필름을 통해  바라보는 도시의 이미지가 작품이 되는 , 작품의 안과 밖이 모호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는 도시를 이미지화하는 색다른 방법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 유리통로를 걸으며 나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물든 도시의 이미지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그 모습이, 특히 대부분 흐렸던 코펜하겐의 하늘이 붉게 물들거나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도시 전체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같이 단기의 코펜하겐을 경험한 여행자가 아닌 코펜하겐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바는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익숙한 코펜하겐의 모습과 유리통로에 들어서 걸음을 옮겨가며 필름을 통하여 색을 입은 코펜하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익숙하지만 생소한, 낯선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은 색 입혀진 코펜하겐을 잉크가 흘러 넘치는 인쇄기에서 인쇄된 엽서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펜하겐의 건물들이 각기 다른 원색으로 채색되어도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회색빛 하늘이 한 몫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유리통로를 걷다가 붉게 물든 코펜하겐의 하늘과 건물을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리옹의 Fete des Lumiere를 다녀온 후 사람들로부터 어떠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뭇거리게 된다. 리옹은 유네스코 국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바로크 건축물이 가득한 구시가지와 미래도시의 모습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로 현대건물들이 즐비한 La Confluence 신시가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빛은 그것 자체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대상물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나는 것으로 도시의 야간경관 역시 주간에 보여지는 도시의 경관적 특성을 극대화하기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어왔던 나로서는 영상의 향연이 중세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이용할 뿐 주간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리옹의 빛축제를 떠올릴 때마다 불편했다.

조명기술의 발달은 더욱 다양한 기법으로 풍부한 콘텐츠를 연출하고 그 결과 주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야간만의 이미지를 재창조 해낸다. 리옹의 빛축제가 매년 그 질이나 양적인 면에서 풍부해지고 있고, 다른 나라의 빛축제 관계자뿐 만 아니라 관광객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관계자들로부터 듣고, 또 나의 눈으로 확인하고 와서도 과연 이것이 올바른 빛축제의 방향인가하는 의문을 여전히 갖고 있어 대답은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리옹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 열리는 시드니나 싱가폴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의 도시인데 빛축제의 내용이나 방향은 동일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밤이 길어진 겨울, 연말이 되면서 서울 시내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시청앞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혔고, 청계천의 크리스마스 페스티벌은 장장 1.5km구간에 걸쳐 조명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도 리옹과 다를 바 없이 점점 모든 경관요소가 영상을 띄우기 위한 스크린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고건축 지붕의 치미가, 처마 밑 단청이 빛을 받아 그 아름다운 선이 강조되고 색의 화려함이 드러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지붕이 허물어지고 단청의 색이 푸르게 덧입혀지는 영상을 입게 될지 모를 일이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자로 재어야 한다는데 나의 이런 생각이 고리타분한,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닥다리 일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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