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출판·인쇄전문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최초의 출판·인쇄전문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 최정길 인턴기자
  • 승인 2009.09.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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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책의 탑… 출판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가장 소실되기 쉬운 출판과 인쇄문화 유산을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 북한산 자락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삼성출판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1990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사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수많은 출판·인쇄 유물을 소장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런 박물관도 있었나?’라고 느낄 정도로 생소한 박물관. 이곳에서 우리나라 출판·인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출판·인쇄전문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나라 출판·인쇄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고, 이와 관련한 사회교육활동을 펼치자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삼성출판사 설립자 김종규 관장
‘문화계 대부’ 설립자 김종규 관장

삼성출판박물관은 설립자인 김종규 관장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업적이 고스란히 묻어져 나오는 곳이다. 김 관장은 별명이 많다. 문화계 궂은 일에 기꺼이 나서 돕기를 즐겨해 ‘문화계의 대부’라고도 하며, 출판·학술·문화제·공연 등 문화계 일에 관계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어 ‘문화계의 마당발’로도 불린다.

마당발이라는 별명답게 현재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외에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김 관장은 1939년 전남 무안 출생으로 목포상고, 동국대 경제학과를 거쳐 1964년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을 역임하면서 출판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삼성출판사 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그는 부산지사장 시절부터 출판박물관 설립을 염두에 두고 전시(戰時)에 주인을 잃은 귀중 고서를 찾기 위해 헌책방을 있는 대로 뒤졌다.

월급이 고스란히 고서 구입비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1990년에 그의 염원대로 대한민국 최초의 출판박물관이 설립됐다.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은 전적류 17,000점, 출판·인쇄 도구 45,000점, 근현대도서 16만 점, 고문서 1만 점, 서화 9천 점 등 총 약 40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거대한 ‘책의 탑(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유물들로 가득한 제 1전시실

삼성출판사는 상설전시장으로 운영되는 제1전시실, 특별기획전시장으로 운영되는 제2전시실, 그리고 세미나실과 강의실로 꾸며졌다.

▲국보 제265호 '초조 대방광불화엄경(初雕 大方廣佛華嚴經)'

제1전시실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출판·인쇄 전문 박물관답게 수많은 유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국보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을 비롯해 보물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월인석보(月印釋譜)’, ‘제왕운기(帝王韻記)’ 등 국가지정문화재 10여 점을 포함, 총 약 10만 점의 출판·인쇄 문화 유산을 전시하고 있으며, 각종 종이제품과 고활자, 인쇄기기 외에도 문방사우 등의 제조과정까지 실물로 보여주고 있어 조상들의 지혜와 당시 생활모습도 함께 엿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국보 제265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은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한 주본 화엄경 80권 가운데 권 제13으로, 초조 대장경본에 속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 판에 14자씩 22줄 또는 23줄을 새겨 지질이 우수한 닥종이에 인출한 다음 차례로 이어 붙였는데, 판각술이 정교하고 인출 솜씨가 뛰어나 9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글자획과 먹색이 또렷하다.

여러 차례 전화를 겪는 사이에 고려시대에 간행된 대장경류는 거의 모두 소실되고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판식·도각·먹색·인쇄·지질 등이 모두 이처럼 뛰어난 초조 대장경은 극히 드물어 사료적 가치가 아주 높으며, 현재 박물관은 보안상의 이유로 영인본(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책)을 공개하고 있다.

▲보물 제745-7,8호로 지정된 '월인석보'
또 보물 제745-7호, 보물 제745-8호로 지정된 ‘월인석보(月印釋譜)’ 권22, 23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祥節)’을 2년 여에 걸쳐서 수정 증보하여 한데 묶어 펴낸 것이다.

새김이 자못 정교하고, 판하본(板下本; 새길 목판에 붙이기 위하여 쓴 글씨)을 쓴 김수온(1409~1481)과 성임(1421~1484)의 뛰어난 필체를 엿볼 수 있다. 인출에 공을 들였으며 먹이 진하여 인쇄지면이 매우 선명하다. 현재까지 유일본으로 여겨지는 이 책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최초로 편찬된 불서언해본임으로 해서 불교학과 국어학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제 2전시실

▲유족의 기증을 통해 구성된 오발탄을 쓰신 '학촌 이범선'의 서실
제2전시실에서는 ‘우리가 배운 7080 교과서’, ‘국악팜플렛전’에 이어 ‘책을 건네다:저자서명본전’이 열려 총 100권의 책을 전시하고 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고은·김지하 시인, 소설가 김주영·김훈·박범신·신경숙, 연기자 최불암·김혜자, 도올 김용옥·고 중광스님· 박재등 만화가 등 우리 시대가 손꼽는 문화계 인사들의 친필 서명본이 수두룩하다.

저자 서명은 다양하고 흥미롭다. 간결하게 서명만 해서 보낸 저자, 한지에 서명한 뒤 속표지에 붙여 보낸 저자, 그림을 그려 보낸 저자, 근황을 적어 보낸 이도 있다.

연기자 최불암 씨는 1991년 자전 에세이를 김종규 관장에게 전하면서 ‘늘 고마운 김종규 사장님, 부끄러운 최불암 올림’이라는 글귀를 남기며 겸손함을 나타냈다. 김 관장은 “저자들은 책을 받은 상대방의 이름 뒤에 ‘받아 간직해주십시오’란 뜻을 지닌 ‘혜존(惠存)’을 적는 등 자신을 낮추곤 한다. 좋은 인간관계란 바로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각박해진 현대사회에서 이런 마음가짐을 조금이라도 본받고자 이번 기획전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출판박물관은 전시 외에도 동국대학교 사학과 김상현 교수의 ‘의상대사의 화엄사상’, ‘신라의 풍류정신’과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의 ‘한국과 이슬람 세계의 만남’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역사·철학·미술·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열고 있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윤리학과 정병조 교수의 ‘현대생활과 금강경의 지혜’가 진행돼 금강경을 통한 일상생활의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전시실 모습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은 “한 나라의 문화는 근본이 있어야 하는데, 그 근본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결코 고리타분한 곳이 아니라 과거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키우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또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출판·인쇄 문화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은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에게 공개되고, 관람료는 일반 3,000원, 학생 2,000원이고 단체는 1,000원이 할인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삼성출판박물관 홈페이지(http://ssmop.org)나 전화(02-394-6544)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최정길 인턴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