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국 단장 "언제까지나 관객들과 소통하는 '무대' 서고파"
이원국 단장 "언제까지나 관객들과 소통하는 '무대' 서고파"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9.24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국발레단, 발레 대중화 위한 대학로 공연 1년 반 동안 꾸준히 이어와

20년여 년 동안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며 주연을 독차지하던 발레리노가 돌연 국립발레단을 떠났다.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며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수많은 상을 받았고, “국내 남성발레는 이원국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세간의 평가처럼 발레의 수준을 높이고 대중화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많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더 자주 만나 발레를 알리고 싶었다”는 그는 현재 이원국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이원국 단장(42)이다.
2004년 그가 발레단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러시아 유학파 발레리노 전슬기와 국립발레단 김대원, 발레리나 박은혜 등과 함께 불혹의 나이에도 노련한 기량으로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브라보’를 들으며 여전히 무대를 지키고 있다. 수천 명이 관람하는 대형 무대에서만 공연하던 그가 지금은 작은 실수도 훤히 보이고 거친 숨소리가 전달되는 작은 소극장 공연에 흠뻑 취해 있다.
지난 5월부터는 국립극장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의 리허설을 담당하는 초빙 트레이너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숙명여대 일반교양 과목을 통해 발레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상주예술단으로 선정돼 지역에도 둥지를 틀게 됐다. 발레를 보여주는 무대라면 언제 어디든지 설 준비가 된 이원국 단장. ‘그의 인생과 발레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발레의 대중화를 표방하며 소극장 공연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 같다. 무대도 작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계속하고 있는 그 근간은 무엇인가.

소극장 발레공연을 하면 할수록 계속했으면 좋겠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반을 해오면서 발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았다. 대중들이 발레를 다른 시각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태, 일종의 장르를 파격하는 작품으로 공연하고 싶다.

공연하면서 개발해야 할 새로운 소재나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른다. 우리 현대의 이야기를 클래식 형태의 발레를 빌려서 소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공연을 개발하거나 2~3개의 레파토리를 만들어서 번갈아가며 계속 공연하는 등 좀 더 다양한 형태로의 발전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이원국발레단이 최근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상주예술단으로 선정됐다.

우리를 안아주고 우리가 안길 수 있는 내 집이 생긴 거 같아서 너무 기쁘다. 소속감을 느낀다. 보다시피 굉장히 들떠 있다. 그동안 해왔던 공연과 함께 다양한 시도로 발레를 통해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자존심을 높이고, 구민들이 문화구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적어도 노원구민은 발레에 굶주리고 있다는 말 안 듣고, 다른 구민들이 발레 공연을 많이 하는 노원으로 이사 가자고 할 날을 꿈꿔본다.

지난번 ‘사랑의 세레나데’ 공연에서 ‘조르바’ 작품이 인상 깊었다. 조르바는 그렇게 대중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 올리고 있는 작품과 함께 소개해달라.

‘조르바’는 4년 전에 처음 만들어서 초연했던 작품이다. 그리스의 영웅 ‘조르바’. 그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는 나 자신의 모델이기도 해서 좋아한다. 40분짜리를 만들었는데 그것만 보기에는 대중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작품이라 주요 부분을 앵콜 공연으로 많이 하고 있다.

‘사랑의 세레나데’ 작품으로는 창작발레 ‘돈키호테’, 국악과 발레의 만남 ‘옹헤야’, 탱고 음악에 맞춰 발레하는 ‘탱고’, 고난도 기교와 풍부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해적’, 너무 유명한 클래식 발레의 정석 ‘로미오와 줄리엣’ 등으로, 발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설도 하고 있다.

작품에서 어린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공연도 보인다.

어릴 때부터 무대를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하게 됐다. 어린 친구들이 나오니까 호응도 좋고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받아들인다. 1년이든 2년이든 발레를 좋아하는 직장인, 주부, 학생 등 아마추어들도 배우면서 무대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함께 공연했었다. 하지만 다치기도 하고 상황이 안 돼서 지금은 못 하고 있다. 일반인 아마추어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열려 있으니 문 두드려달라.

지젤의 알브레히트 역으로 최고의 무용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자기가 가진 기량도 중요하지만 어떤 선생의 노하우를 어떻게 배웠나가 중요하다고 본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최고예술감독 유리그리가로 비치,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 크리스토퍼 마이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을 창단한 발레의 거장 보리스 에이프만, 우리나라에서는 임성남 선생님과 같은 많은 대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이분들의 경험과 많은 무대 경험 덕분인 것 같다.

루돌프 누레예프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전세계적으로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특히 남성 무용수들에게는 독보적인 존재다. 당시만 해도 남자 무용수들은 여자 무용수 뒤에서 받쳐주는 보조적인 역할 정도로만 취급받았다. 하지만 누레예프가 남성 무용수의 가치를 높이고 대접받게 했다. 뒤에 있던 남성 무용수를 한 발짝 앞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그는 인생 자체가 예술이다. 예술가 최초로 망명했고 20살 연상의 마고트 폰테인과 파트너가 돼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나 비디오 매체가 발달돼 있지 않아서 그의 작품은 몇 개 안 남아 있지만 최초로 나온 발레영화에도 출연했다.

우리나라 남자 발레는 이원국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기자가 인터뷰 자리에서 우연히 말한 것 같다. 멋지다 생각했지만 내가 과연 이런 말 들을 자격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지고 미안했다. 중간에 서서 늘 배고파하고 ‘세계적인 발레와 비교해서 우린 뒤처졌다’, ‘새로운 것을 해서 빨리 넘어서야 한다’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깊이 생각할 틈 없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부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발레는 스스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나의 인생 같기도 하고 가족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나이기도하다. 연습실, 공연장, 무대는 내 영혼이 쉴 수 있는 내 집과 같은 공간이다. 소극장 공연도 발레의 대중화보다 스스로 우선 무대에 서고 싶어서 공연하는 것이다. 국립발레단에 있을 당시만 해도 발레공연은 1년에 정기공연 3번뿐이었다. 그리고 발레단도 국립극장뿐이라 공연한다고 하면 2천 석을 다 채우고 보조의자 놓는 등 발디딜 틈도 없고 난리가 났었다. 지금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공연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발레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대 위에 섰을 때 관객과의 호흡이다. 내가 가진 기량과 예술성 등으로 관객들에게 발레가 가지고 있는 묘미와 발레의 매력을 보여주고 관객과 만나는 것이 너무 좋다. 내가 발레를 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그 마음을 전달받아 내 기쁨은 배가 된다. 단원들도 작은 무대를 통해 자신을 시험하고, 관객들과 호흡하며 관객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발레리노, 발레리나가 되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가.

비주얼적이다 보니 신체적으로 긴 라인의 소유자가 훨씬 유리하고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길기만 하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자신만의 신체조건과 감성으로 예술성과 조형미를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발레를 놓지 않겠다는 끈기와 열정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발레 이외의 인문학적 지식과 태도도 요구된다. 사람들은 발레학교 하면 발레만 배우는 줄 알지만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예의, 인성교육, 지식 등을 어릴 때부터 몸에 습득되도록 가르치는 곳이다. 그 모든 것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극장이다 보니 관객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 몸이 모두 드러나는 발레 의상의 특성상 민망할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말씀들 많이 하신다. 가끔 옷을 잘 못 입거나 조명이 비쳐서 좀 부각돼 보일 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무용수들은 연습할 때도 그렇게 입고 하니까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몸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길 바란다.

이원국 발레단 약력

이원국
1967 부산 출생, 중앙대 현대무용과
1993~1996 유니버셜 발레단 단원
1997~2004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겸 지도위원
2005~현재 이원국 발레단 대표
2009 국립발레단 초빙 트레이너

주요경력
1995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지젤’ 객원 주역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무용 콩쿠르 초청무용수
1999 루마니아 국립 클루즈 오페라 발레 ‘백조의 호수’와 ‘지젤’ 객원 주역
2000 문화부 주최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출연

주요수상경력
1999 평론가가 뽑은 무용예술상 무용가상 수상
2001 모스크바 국제발레 콩쿠르 베스트 파트너상

이원국 발레단 주요활동
2005 그리스 음악과의 만남 ‘춤추는 조르바’, ‘아테네’
      가을분수대 뜨락 축제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광장 개막공연
2006 ‘지젤’ 전막공연(경기문화재단 지원공연)
      ‘호두까기 인형’ 전막공연 
2007 부산국제영화제 초청공연 ‘조르바’
2008 ‘지젤’ 예술의 전당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방부 주최 군부대 10개처 순회공연 ‘사랑의 세레나데’
      매주 월요일 대학로 창조콘서트홀 ‘사랑의 세레나데’ 상설공연

인터뷰-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및 사진-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