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이응로미술관의 진로와 선택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이응로미술관의 진로와 선택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1.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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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 미술평론가

작년 12월 초에 캐나다 퀘벡에 있는 Le Lieu의 초청으로 ''퍼포먼스의 국제적 만남(Rencontre Internationale D'art Performance)''을 주제로 한 [행위예술 1998-2018(Art Action 1998-2018)]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이 행사는 지난 1998 년에 1958년부터 1998년까지 40년에 이르는 세계 퍼포먼스의 전체 역사를 정리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집을 발행하여 주목을 끌었다. 피에르 레스타니를 비롯하여 장자끄 레베끄, 로베르 필리유 등 기라성같은 평론가들이 참여한 기념비적인 행사로 국제 미술계에서 회자된다. 

이번에 열린 세미나는 그 후속타인 셈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 행사의 총감독이 리차드 마르셀이라는 올해 70세된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행위예술가인 동시에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한 그는 20년 전의 첫 행사를 직접 지휘하여 이런 놀라운 성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그는 시립기관인 Le Lieu에 40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몸담으면서 수없이 많은 전시와 퍼포먼스 실연회, 잡지발간, 세미나 개최 등을 주도했다. 

놀라운 것은 평생동안 한 우물만 판 그도 그지만, 그의 역량을 믿고 40년이란 긴 기간을 밀어준 퀘벡시민들의 혜안과 안목이다. 그 도시, 아니 캐나다 전역에 Le Lieu의 관장 자리를 탐한 사람이 어찌 없었을까만 전문가를 대접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문화적 소양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연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서구의 문화적 전통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오늘날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을 세계 최고의 미술관 반열에 올려놓은 알프레드 바는 약관 29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관장에 취임한 이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오직 모마를 위해 헌신했다. 이 역시 그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그를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이사진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몇년 전에 퇴임한 영국 테이트모던의 총괄관장 니콜라스 세로타 경은 42세에 관장으로 부임한 이래 26년간이나 미술관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1999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했던 그는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연간 오백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인 성가를 올린 이유로 큐레이터제의 확립을 꼽았다. 한 마디로 말해 전문가를 중용하고 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페이스북을 검색하다가 대전 이응로미술관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대전의 다수 미술인들이 몇가지 이유를 들어 이지호 현 관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는 앞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외국의 사례들이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전문성에서 현 관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하는 궁금증이 더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관장이 지금까지 한 뛰어난 기획전들을 보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대전을 찾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 앵포르멜 운동의 기수인 피에르 술라쥬와 자우키를 이응로와 함께 묶어 조명한 전시는 이응로 화백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로 끌어올리기 위한 치밀한 전략적 기획이었다.

나의 비평적 관점으로 볼때 이응로 화백은 백남준, 이우환과 함께 세계적인 작가의 수준에 도달한 웅대한 세계를 지닌 거장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세계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조명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지휘자의 중요성이다. 일은 시스템도 할 수 있지만 시스템으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남다른 사명감과 소명의식, 경험, 인맥, 언어능력, 친화력 등 고른 자격과 역량을 갖춘 인재가 오랜 세월 공을 들일 때 비로소 미래에 그 과실을 따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응로 화백의 미망인인 박인경 여사가 기증한 이응로 화백의 작품 1300점을 기반으로 2007년에 문을 연 이응노미술관은 2012년 이래 프랑스, 스위스, 독일 등 유럽 앵포르멜 및 추상과의 비교를 통해 이응노의 추상미술을 세계미술사에 편입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퐁피두센터와 파리시립세루뉘시미술관의 개인전을 통해 파리에서 이응노의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이응로 화백의 조명작업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난항을 겪게 됐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선 당장 코앞에 놓인 2019년 모마(MoMA)와의 이응노 워크숍 추진, 바카레스의 이응노 토템 조각 연구 등등 국제적인 프로젝트들은 과연 누가 추진할 것인가. 

인맥에 의한 신뢰에 의존하는 것이 국제적 미술관 사업의 관례임을 잘 아는 나로선 대전에 불고 있는 이 바람이 아무래도 불안해 보여 남의 일같지 않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