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김미선(창무회)의‘춤 수다’와 국은미의 춤‘OFF’
[이근수의 무용평론] 김미선(창무회)의‘춤 수다’와 국은미의 춤‘OFF’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1.18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7080콘서트는 방송에서 사라졌지만 7080 무용가를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이 많아졌다. 국수호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9월(무위)과 12월(춤 시 오디세이), 연속해서 무대에 오르고 김매자는 11월 서울무용제 개막공연 ‘무념무상(舞念舞想)’에서 솔로 춤(光-Shining LIght)을 춘 데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창무회 창립 42주년 기념공연’에서다.

지난 달 무념무상 같은 무대에서 ‘초혼(招魂)’으로 관객들을 울렸던 80대 육완순의 다음 무대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최지연의 춤(몸 4개의 강 일야구도하)과 함께 창무회 2018 정기공연(12,27, 마포아트센터)을 구성한 김미선의 ‘춤 수다’는 춤으로 인연이 된 세여인(김매자, 윤수미, 김미선)이 춤꾼으로 돌고 도는 삶의 길 가운데서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여인들 수다처럼 몸으로 펼쳐낸 작업이다. 막 뒤에서 여인들의 거침없는 수다가 들려온다. 

막이 오르면 무대 앞 쪽에 마련된 좁은 공간에 세 여인이 모여 앉아 있다. 김매자는 긴 머리를 삭둑 잘라내고 단발머리 소녀로 돌아갔다. 아래 위 검정 옷의 김매자, 검정 상의에 흰색 치마의 윤수미, 김미선은 반대로 흰 상의에 검정 치마를 입었다. 오른 쪽 깊숙한 곳에 조명이 비치면 피아노(양선용)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여인들이 천천히 일어선다. 윤수미가 먼저 무대 중앙에서 화려한 춤을 펼치고 김미선의 진중한 솔로가 이어진다. 창무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 여인들은 춤에 대해, 그리고 창무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많은 말들을 두 여인의 춤만으로 풀어내기엔 부족한 듯 김매자가 가세한다. 평소의 오만해 보이는 눈매를 내리 깔고 마음을 비워낸 듯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춤이 함께 어울리면 세여인 만으로 무대는 꽉 찬 느낌이다. 

그들의 춤엔 막춤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제목 그대로 춤으로 보여주는 여인들의 수다다. 한명옥, 김선미, 최지연 등 기라성 같은 창무회 안무가 중에서도 김미선의 안무는 독특한 존재감을 보여 왔다. 창무회의 정형적인 안무스타일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안무는 ‘호모 루덴스’(2015)에서 보여준 것 같이 이 번 작품에서도 빛이 난다.

‘춤 수다’에 출연하며 김매자가 긴 머리를 잘라내었듯이 창무회가 오랜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2세대 안무가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창작 춤의 길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무용단의 색깔과 전통이 신선한 정신들에 의해서 깨어지고 혁신될 때 한국 춤과 창무회가 같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김미선의 창의적 감각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훈훈했던 2018년 세모의 공연이었다.  

‘춤 수다’를 본 이틀 후, 2018년 마지막 공연으로 국은미의 ‘OFF'(12,29~30, SAC 아트홀)를 보았다. 소마틱스(Somatics, 몸학)란 낯선 이름으로 꾸준히 몸을 수련하고 몸에 대한 수련을 바탕으로 자신의 춤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국은미의 2017년 ’OFF'의 진화된 버전이다. 

두뇌의 지시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임을 시작하고 이렇게 시작된 움직임이 주변의 소리와 환경의 변화에 감응하는 마음과 결합될 때 자연스럽게 춤이 된다는 것이 그녀의 춤 철학이다. 즉흥 춤과 구별되고 기(氣) 춤과도 다른 국은미의 ‘OFF'(65분)는 안무가 국은미가 ’숨 무브먼트’의 고정 멤버인 김동현∙신상미와 함께 3인무를 구성한다.

제1막은 소마틱스의 몸 수련법을 보여준다. 후드가 달린 회색 상의와 오렌지색 헐렁한 바지로 의상은 통일되었지만 무대 위의 세 사람은 각각 독립적이다. 하나의 무대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 만의 무대를 소유한 듯, 서로 간의 인터액션 없이 팔과 다리, 몸통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무브먼트가 30분간 지속된다. 

1막과 2막 사이를 연결하는 영상에서 우주선을 타고 이륙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정신이 육체를 이탈하는 느낌이라 할까, 우주선 속 그들의 표정은 환하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간편한 팬티차림이 된 그들의 중력실험이 2막(15분)을 구성한다. 공중에 떠 있듯 그들의 몸은 바닥에 부착된 채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연체동물처럼 얽히고설킨다. 

3막은 피날레다. 번뜩이는 은색바지로 갈아입은 그들의 춤이 활달해지고 음악도 종달새처럼 경쾌하게 흐른다. 몸이 주체가 되어 마음을 불러내고 몸과 마음이 합체된 자유로운 몸이 탄생했다. 

단절(Cut OFF)과 시작(Take OFF)의 뜻을 함께 갖는 국은미의 독특한 춤 세계가 새해에는 더 높이 비상할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