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이야기] 도심광장과 조명
[백지혜의 조명이야기] 도심광장과 조명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9.01.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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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영국의 건축가 폴 자카는 광장을 3가지 공간적 특징으로 정의했다. 주변의 건축물의 배열, 넓은 바닥 그리고 둥근 하늘. 이는 좌석으로 둘러싸인 원형극장과 구별되며 차가 달리는 넓은 차로와도 다르다, 또한 주변의 건축물에 의해 경계지어진 둥근 하늘은 무한히 열린 공허와는 다른 개념인 것이다. 

현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도시광장들- 예를 들어, 런던의 트라팔가광장, 파리의 방돔광장,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광장 등- 은 이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이다. 그 생겨남과 쓰임새가 이전과 달라서 일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를 비운다는 개념이 부정형으로 일어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근대서울의 광장은 근대도시의 상징적 요소로서 받아들여져 현재 경운궁 부지 자리의 경성부청앞 광장과 현재 한국은행 전면 부지, 조선은행앞 광장이 만들어졌는데 경성부청앞 광장은 여러 지역과 통하는 사통팔달의 장소여서 그리고 조선은행앞 광장은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면서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위치에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 현대도시 서울의 대표광장인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과는 다른 생김새와 쓰임새로 만들어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도시에서 광장은 도시가 물리적으로, 기능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팽창할수록 그 가치가 더욱 강조되어 왔다. 도시의 가장 큰 축제가 열리거나 광장을 중심으로 그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또 어떤 도시는 광장의 이름이, 그 광장의 기능이 그 도시의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도시가 밀집될수록 빈 공간, 광장을 유지하는 것은 또 하나의 경제적인 풍요를 의미하기도 하고 광장에서 누리는 정서적 넉넉함이 그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설명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광장의 주인은 이용자인 것이다.

도시 조명적 측면에서 광장이나 공원은 오픈스페이스로 분류하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시간에 상관없이 이용 가능하기에 공공디자인이 적용된다. 이곳에서 장치나 시설물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으면 그것은 곧 공공의 배상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화문 광장이 어두워 범죄율이 높아지면 그 책임은 어둡게 공원을 계획한 주최 측에 그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KS기준에도 공원이나 광장에 대한 적정조도가 마련되어 있고 주거지 내의 커뮤니티 광장을 계획할 시에 그 기준은 매우 중요한 밝기의 지표가 된다. 

물론 시각적 장애물이 없는 오픈스페이스에 대하여는 수목이 우거지거나 건물로 둘러싸인 오픈 스페이스와는 다른 기법의 조명방식도 허용하지만 여전히 이용자가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조명환경을 제공한다.

CPTED(범죄예방환경설계)의 지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연스러운 감시 (NATURAL SURVEILLANCE)’ 이며 이를 위하여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없애는 것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감시가 가능한 ‘밝기’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다.

연말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 지인과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가 왠지 익숙하다면서 주변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매스컴을 통해 그는 ‘촛불집회의 장’으로 이 공간을 보아왔던 것이었고 그 공간에 서서 매우 놀라워했다.

그는 서울의 광장은 - 특히 광화문광장이 그런 듯하다.- 늘 무언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배경 속에 있었고 늘 ‘어둠’을 배경으로 한 촛불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은 앞서 언급했던 광장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듯하다. 건축적인 형상 -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차가 다니지 않는 빈 공간 -은 같으나 그 쓰임새가 모두가 쉽게 모이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우선, 위치도 두 광장 모두 서울 거리를 걷다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광장은 아니다. 4차선이상의 대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 진입을 해야 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광장은 더더욱 아닌 듯싶다.

해가 지면 이 두 광장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낮 동안 그렇게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차들의 통행도 점점 뜸해지고 광장은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듯하다. 저항의 촛불이 다시 켜지기 전까지는.

도시의 모든 구석이 샅샅이 밝아져야 할 필요는 없다. 생태전문가들, 인공조명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볼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도시의 빛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많은 빛이 어디에서 오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서울도심의 명소로서 고즈넉이 비워진 광장의 모습 대신 불 꺼진 고층 건물 위의 전광판이 서울의 야경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가로수의 생장을 방해하고 밤하늘 별빛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밝음’의 주체가 어떤 ‘빛’인지 정확히 알아야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좋은빛’과 ‘해가 되는 빛’을 가려낼 수 있는 눈이 많아져야한다.  

서울광장이, 광화문광장이 촛불을 들지 않은 시민들, 주변 건물들에서 늦게까지 근무하다가 커피 한잔하러 나온 직장인들 그리고 낮과는 다른 도심의 모습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편하게갈 수 있도록 변화를 위한 조명 계획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재능기부를 할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