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창작과 교육에 열정을 바친 무용가 -진수방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창작과 교육에 열정을 바친 무용가 -진수방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9.02.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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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한국근현대 발레역사에 있어 진수방(陳壽芳,1921-1995)은 매우 두드러지는 존재다. 창작에 열정을 다했던 진수방은 창조정신이 투철했던 조택원의 제자였다. 조택원의 순회공연에 진수방은 14세 나이로 함께 하며 일찍부터 무대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한동인이 한국 최초의 발레단, 서울발레단을 창단한 것이 1946년이다. 이어 1947년에는 <조택원 도미고별공연>, <정인방 무용회>, <진수방 창작공연>등 개인공연이 열렸다. 진수방의 창작 작품 <물 긷는 아가씨>도 초연되었다. 

현대무용의 조택원, 전통문화를 계승한 정인방과 달리 진수방은 발레를 기반으로 창작을 했다. 조택원과 전통춤 명인 한성준에게도 배우고 일본에 가서 고전발레를 배우는 동시에 배구자가 활동했던 종합연예공연단체인 덴카쓰 예술단에서도 잠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또한 조택원의 권유로 상해에서 발레와 캐릭터 댄스인 스페인무용을 익히고 돌아왔다. 

진수방은 1940년 무용연구소를 열어 아동무용과와 예술무용과를 나누어 가르치며 무용저변확대와 후배 양성이라는 목표에 매진했다. 문하에서 송범, 주리, 진수인이 배출되었다. 일제협력의 태도로 비판받고 한동안 칩거하며 공연이 뜸했던 조택원은 1946년 조선무용예술협회가 창설되었을 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공연을 재개했다. 

이 공연에서 진수방은 <아리랑 회상곡>을 무대에 올렸다. 이 때 정지수는 수석위원이었고 조익환, 한동인과 함께 진수방은 발레부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진수방, 정지수, 한동인은 국제극장에서 이틀에 걸쳐 합동으로 신춘무용회를 열어 발레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상해에서 스페인무용의 권위자인 크리아스노바에게 배운 진수방은 1950년 귀국 무용발표회에서 <카르멘> <마드리드의 무희> <플라멩코> 등을 선보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의상디자이너 노라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수방이 노라노의 의상을 입고 출연한 당시를 회상했다. <카르멘>에서 프릴이 달린 치마를 들어 올리며 캐스터넷츠를 들고 박자에 맞춰 춤추던 순간의 감흥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 무용계에서 최승희와 진수방이라는 두 천재가 일찍 사라진 것에 큰 아쉬움을 표했다. 

진수방은 1956년 한국무용가협회장이 되었고 1959년 한국무용협회를 발족하여 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립발레단 창설을 역설하였다. 1961년 <그랜드코리언발레>를 창작. 초연하며 지영희, 조병학 편곡의 음악을 사용하였다. 1962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국립무용단이 창설되었으나 내부 갈등으로 무용단 임원직을 사퇴하였다. 

1963년에는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도미하여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 기본을 깊이 연구하며 개인발레단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발레 유망주 지도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고국과의 인연은 더 이어지지 못했고 말년을 뉴욕에서 보냈다.
 
진수방을 만나게 된 것은 전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였던 진수인 덕분이었다. 진수인은 진수방의 조카이자 수제자이다. 1980년대 초 황량했던 역삼동에 위치한 진수인 무용학원에서 예쁜 색깔의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선생님을 만났다. 발레 클래스를 지도했던 그 분이 바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진수방 선생님이었다. 

키는 크지 않아도 이목구비와 신체 비율 등이 서구적이어서 기존 발레무용가들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화려함과 자유로움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는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던 나를 보더니 “That's' it”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시절, 외모만큼 그녀의 이름도 멋지다 느꼈는데 시간이 흐른 후 나름대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15년 즈음 모스크바에 있는 전설적 러시아 발레리나 갈리나 울라노바(1910-1998)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에 갔을 때, 울라노바와 중국의 유명 경극배우 매란방(梅蘭芳1894-1961)이 친밀하게 교유했던 사실을 알고 놀랐다. 발레리나 울라노바가 경극배우인 매란방을 예술가로서 무척 흠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란방은 춤과 노래, 지식 등 다방면으로 출중하며 진정한 예술가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10여 차례의 해외공연을 통해 그 이름을 널리 떨쳤으며 천시받던 경극배우의 지위를 격상시키는데 기여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일체 공연에 나서지 않는 애국주의 성향도 지녀 대중들이 더욱 열광하였다.

한국 전통춤의 대가 이매방(李梅芳,1927-2015)선생도 본명인 이규태를 버리고 자신을 매료시킨 매란방의 이름을 따서 이매방이라 이름 지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당대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매란방의 예술혼을 따르고자 한 이들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통춤의 명인 한성준을 사사한 정인방은 1949년 고전에 바탕을 둔 무용극 <한궁태자> <팔담몽>을 발표하였다. 이 때 정인방의 무용공연 광고 포스터 맨 위에는 “조선의 매란방, 정인방” 이란 타이틀이 보인다. 특별 찬조출연에 발레 이석예의 이름도 보인다. 그  당시 무용가 중에는 양선방이라는 이름도 눈에 띄인다. 진수방의 이름도 아마 그런 연유로 당시 최고의 무용배우를 염두에 두고 이름 지어진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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