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탐독’의 저자 박병성님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뮤지컬 탐독’의 저자 박병성님께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2.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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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참 잘 쓴’ 책입니다. 내용은 충실하고, 읽기는 쉽더군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진 몰라도,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납니다. 나처럼 한자어와 한문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필자를 반성케 합니다. 외국어와 최신 개념을 등장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저자들에게, ‘쉬운’ 단어로 ‘깊은’ 내용을 엮는 기술을 배우게 해줄 책입니다. 

‘뮤지컬 탐독’에서 키워드를 딱 하나 찾는다면 ‘관점’입니다. “비평의 완성은 관점의 통일이다” 이 짧은 문장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를 포함한 여러 평론가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반성하게 되더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시각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관점이 있습니다. 내일보다는 오늘, 다수보다는 소수, 대본보다는 음악, 부자보다는 빈자, 외향보다는 내면, 익숙함보다는 생경함입니다. 이건 책에서 다룬 뮤지컬 자체도 그렇지만, 당신의 접근 태도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당신의 ‘관점’이 그런 거지요. 

하지만, ‘뮤지컬 탐독’이란 책의 프롤로그에서 강조한 ‘관점’이 사실 책을 읽어가면서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말 듯 하더군요. 그건 나와 같은 독자의 탓일 수 있으나, 저자인 당시도 좀 더 ‘관점’에 대해 깊고 정확하게 들어갔으면 합니다.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하나의 관점을 잡아 접근”했다는 저자의 말은 ‘절반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탐독’을 안경에 비유한다면, ‘다초점렌즈’입니다. 분명 초점이 있긴 하는데, 그 초점이 옮겨 다닌다고나 할까요? 하나의 뮤지컬에는 여러 소제목이 있습니다. 그 소제목 안에서의 내용은 충실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소제목의 글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런 방식은 다초점의 매력이자 미덕일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초점으로 확실하게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울러 관점 혹은 초점이 기존과는 ‘좀 달랐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점바꾸기(reframing)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라이온킹’을 모두 ‘신화’로 연결할 때, 박병성만은 ‘현실’ 등 다른 키워드를 등장시켜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겁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새삼 놀랐어요! 박병성은 ‘참 음악적인’ 사람이더군요. 영화가 영상이라면, 뮤지컬은 음악이란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심지어 당신은 ‘미스 사이공’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하면서도, ‘노래를 듣고 나면 빠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마무리합니다.

뮤지컬은 결국 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해독’하고 ‘탐독’해야 한다는 걸, 많은 뮤지컬계 사람들에게 알려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이 책을 크게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손드하임에 대한 접근이 충실한 점입니다. 손드하임이 말했듯 ‘작곡가는 노래로 쓰는 작가’이고, 그가 그런 역할에 충실했다면, ‘뮤지컬탐독’의 박병성을 가리켜서 ‘평론가는 노래를 읽는 작가”라는 상찬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보다는 좀 더 높은 단계에 이르게 되면 말이죠. 당신은 그런 소양이 충분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서 느끼는 기쁨의 하나는, 뮤지컬을 통해서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을 더 넓힌다는 점이죠.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의 뮤지컬을 제대로 탐독하기 위해선, 다른 장르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죠.

오페라 라보엠과 나비부인을 다시 보게 만들고, ’거지 오페라‘의 가치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떠올리게 하고, 고전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다시 보고 싶게 합니다.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이 뮤지컬탐독의 한 문장에 등장할 줄 몰랐습니다. 브루노 베텔하임 (Bruno Bettelheim)에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박병성이 지은 ‘뮤지컬 탐독’에서의 추천사는 김일송이 썼습니다. 그걸 두 번 이상 읽게 되더군요. 김일송과 박병성은 대한민국뮤지컬의 성장의 동력으로서 큰 역할을 했죠. ‘글’을 통해서 뮤지컬을 기록하면서 기억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김일송의 글을 읽으면서, 박병성과 뮤지컬의 애정을 더욱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백아와 종자기와 같다는 생각에 이르더군요. 김일송은 너무도 박명성과 ‘뮤지컬탐독’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추천사는 ‘절반’은 ‘맞는’ 얘기고, ‘절반’은 ‘저자가 앞으로 더 그래 주길 바라는 조언’으로 읽힙니다. 박병성님, 동의하시나요? 

당신이 뮤지컬기자가 된지 올해로 18년이더군요. 이제 곧 20년인데, 그 때는 당신의 창작뮤지컬의 ‘관점’을 알 수 있는 책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뮤지컬 탐독’이, 외국에서 한국으로 관점을 이동해주어도 좋을 겁니다.

뮤지컬에 관한 자료가 적지 않은 서구의 뮤지컬을 통해서, 거의 ‘보도자료’ 수준인 창작뮤지컬을 좀 더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평하는 글을 보고 싶습니다. 한국창작뮤지컬의 성장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박병성의 관점으로 쓴 ‘한국뮤지컬탐독’을 기대해 봅니다. 

당신의 글 속에 등장하는 롯데월드 예술극장의 ‘가스펠’을 아쉽게도 나는 못 봤습니다. 만약 그것이 새로운 뮤지컬시장의 출발점이 된다면, 거기서부터 대한민국 뮤지컬은 어떻게 성장, 발전했는지 궁금합니다. 늘 ‘현장’을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잘 보아왔던 당신의 ‘관점’으로 본 대한민국 뮤지컬 ‘성장기’가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떠오른 키워드는 ‘성장’입니다. 나만 그런가요? ‘뮤지컬탐독’은 뮤지컬을 통해 세상을 알고자 하는 ‘박병성의 성장기’였습니다. 한 편의 뮤지컬을 통해 그저 즐기며 만족하기를 넘어서서, 그 안에 내재한 다양한 문화적 기호와 표상을 찾아내고 밝혀내고자 하는, 그간의 당신의 노력과 의지가 그대로 전달됩니다. 

하나의 뮤지컬을 깊게 보면서 얻게 된 시각은, 또 다른 뮤지컬을 보는 시각으로 옮겨집니다. 
이게 일반적이겠죠? 그런데 당신은 또 다른 뮤지컬을 대하면서, 또 다른 ‘관점’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참다운 ‘탐구심’이 읽힙니다. ‘뮤지컬 탐독’이란 책의 제목과 저자의 자세가 일치하는 기쁨과 믿음으로 이 책을 잘 읽었습니다.

‘뮤지컬 탐독’은 뮤지컬키즈 박병성의 또 다른 ‘성장드라마’였습니다. 뮤지컬에 관한 책이니, ‘성장뮤지컬’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책상 위의 위대한 판타지’라는 부제를 붙인 ‘뮤지컬 탐독’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에너지’를 주는 ‘훌륭한 참고서’입니다. 책 쓰느라고, 애쓰셨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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