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우리에게도 빙등축제(氷燈祝祭)가 있었다
[김승국의 국악담론] 우리에게도 빙등축제(氷燈祝祭)가 있었다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 승인 2019.02.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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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얼마 전 음력 섣달 그믐날을 보내고 정월 초하루 우리의 설날을 맞이하였다. 음력 12월을 섣달이라고도 부르고, 그 마지막 날을 섣달 그믐날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섣달 그믐날을 제석(除夕), 제야(除夜)라고도 하였다. 

요즘은 매년 양력 12월 31일 밤 자정이 되면 종로 보신각에서 한 해가 끝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 타종 행사가 열린다. 어릴 때 어른들이 요즘도 섣달 그믐날 밤에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셔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눈을 부비며 버티다 잠이 들어버려 아침에 깨면 어른들이 분가루나 밀가루를 눈썹에 발라 놓은 것도 모르고 눈이 하얗게 세어버렸다고 울상을 짓던 추억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조선조 문신 홍석모(洪錫謨)의 저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를 살펴보면 섣달 그믐날이 되면 초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거리에 등불을 줄지어 켜 놓고 궐내에서는 제야에 역질(疫疾) 귀신(鬼神)을 쫓는 행사로 징과 북을 울리며 대포를 쏘아대는데 이것을 ‘연종포(年終砲)’라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일반 민가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등잔불을 켜 놓고 흰 사기 접시에 실로 심지를 만들어 그곳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서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대낮 같이 밝게 하고 화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서 밤을 지새우며 새해 아침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풍속을 ‘수세(守歲)’라고 하였다. 

아마도 새해의 복이 집안 구석구석까지 찾아 들라는 뜻이었을 게다. 부녀자들도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낼 새 찬(饌) 준비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새 찬은 가족은 물론 세배하러 오는 손님 대접용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이웃의 노인과 가난한 이웃 사람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 조상님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중시하셨으며 지혜가 담긴 미풍양속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지난 2월 5일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수도 하얼빈에서 열렸던 ‘2019 하얼빈 빙등제(哈爾濱 氷燈祭)’가 성황리에 끝났다. 올해로 34회를 맞는 ‘하얼빈 빙등제’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입장객에 입장료 수입만 한 해 5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지역 최대 행사로 유명하다.

‘하얼빈 빙등제’는 매년 1월 5일부터 2월 5일까지 개최되는데 이제는 ‘퀘벡 윈터 카니발’, ‘삿포로 눈축제’와 함께 세계 3대 겨울축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개최 기간에는 전 세계의 유명 얼음조각가들이 모여들어 영하 20℃ 이하의 추운 날씨에서 얼어붙은 쑹화강(松花江)의 단단하고 하얀 얼음을 이용하여 세계의 유명 건축물이나 동물·여신상·미술품 등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한다.

오후 4시 이후에는 얼음 조각 안의 오색등을 밝혀 신비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건축·조각·회화·춤·음악 등이 고루 어우러진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얼음에 불 밝히는 빙등제(氷燈祭)는 중국 하얼빈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평안도, 함경도의 풍속 중 하나였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섣달 그믐날이면 함경도에서는 빙등(氷燈)을 설치하는데 그 모양은 마치 둥그런 기둥 안에 기름심지를 박은 것 같다고 했다.

악귀를 쫓고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는 뜻에서 빙등의 심지에 불을 켜놓고 밤을 세워가며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나팔을 불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추며 고을 관아의 안이며 고을을 두루 돌며 노는 나희(儺戲)를 행했다고 한다. 이 놀이를 청단(靑壇)이라고도 했다.

또 평안도 풍속에서도 빙등을 설치하며 그밖에 도(道)와 주읍(州邑)에서도 각기 그 고을 풍속대로 연말의 놀이 행사를 했다고 한다.

지난 1월 27일 ‘2019 화천산천어축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다. ‘화천산천어축제’는 강원도 화천군이 북한강 상류에 있는 화천군의 청정 환경을 산천어와 연결하여 빙판으로 변한 화천천(川)에서 체험행사와 볼거리로 펼쳐지는 겨울철 이색 테마 체험축제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빙판이 된 화천천에서 얼음을 깬 구멍으로 견지낚싯대나 소형 릴낚싯대로 초보자도 쉽게 산천어를 잡을 수 있고, ‘눈썰매 타기’, ‘얼음썰매타기’, ‘눈던지기 경기’, ‘빙판 인간새총’, ‘빙판골프’, ‘빙판골넣기’, ‘인간컬링’, ‘눈사람만들기대회’, ‘사진 콘테스트’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펼쳐져 가족 관람객에게도 인기가 있어 이제는 한국의 대표 겨울축제로 성장하였다. 

물론 이러한 자연환경을 활용한 겨울 체험축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축제이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놀이와 미풍양속을 활용한 겨울축제로서 빙등축제(氷燈祝祭)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